은척양조장 임주원 대표
막걸리 빚어 번 돈으로 교회세워 선교활동 벌리다
좋은 막걸리 빚도록 매주월요일 기업예배드리기도
三白의 고장 상주, 막걸리 추가로 四白의 고장
경북 상주는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삼백(三白)’이란 쌀·누에고치·곶감을 일컫는 말로 이 물산들은 오랫동안 상주를 대표해 왔으며, 그 명성 그대로 상주 쌀은 전국 최고급으로 인정받고 있다.
곶감 역시 당분함량이 높고 육질이 쫄깃거려 전국 각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비단의 원료인 누에고치도 상주에선 빼 놓을 수 없는 특산품이다.
특히 상주는 소백산맥 남동사면에 위치한 서고동저형의 지형으로 낙동강 본류가 동부지방을 관통하여 산과 물,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경상북도 서북부 내륙지방으로,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먹고 살기에 부족함을 모르고 지낸 고장이다.
때문에 상주에는 옛 사람들에게는 구경조차 힘들었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고, 엄복동 선수와 함께 상주출신 박상헌 선수도 이름깨나 날리기도 했다. 지금 상주에 자전거 박물관이 세워진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이런 삼백의 고장 상주에 은자골탁배기를 추가해 사백(四白)의 고장으로 불릴 만큼 상주의 은자골막걸리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100여년의 역사 지닌 은자골막걸리
전국에는 수많은 막걸리들이 빚어지고 있지만 오랜 세월 전통을 이어 빚어진 막걸리들이 많지 않다. 어느 날 나타났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는데 반해 상주시 은척면 봉중리 성주봉(해발 606m)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은척(銀尺)의 ‘은자골탁배기’는 백여 년의 역사를 지닌 토박이 막걸리인데 경상북도는 물론 전국 E마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막걸리다.
은척(銀尺)이란 말 그대로 은으로 만든 자란 뜻이다. 그래서 은자 골이 되는데 이곳 지명이 ‘은척’이 된 것은 옥황상제께서 사람의 수명을 결정하실 때 사용한다는 자가 바로 은척이고, 죽어가는 사람도 갖다 대기만 하면 사람도 살린다는 은척이 이곳에 묻혀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란다.
어쨌거나 ‘은척양조장(대표 임주원, 59세)’이 위치한 경북 상주시 은척면은 산이 깊고 물이 좋은 곳으로 막걸리를 빚기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름을 날린 정치가, 의약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많다.
은자골 막걸리는 1940년 고 李東寧 씨(1994년 작고, 현 임주원 대표의 시아버지)가 시작하여 100여년의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상주에서 생산된 햅쌀로만 빚는 5% 막걸리
막걸리 시장이 시들한데도 은자골 막걸리가 승승장구 발전하고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간단했다. 막걸리를 양심껏 빚고 막걸리를 빚어서 발생하는 이윤은 직원들에게는 물론 사회에 환원하는 정신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신은 강한 믿음(종교적)이 뒷받쳐주고 있다는 것을 취재과정에서 엿 볼 수 있었다.
은자골탁배기는 철저하게 상주에서 생산된 햅쌀인 삼백 쌀만 사용한다. 밀가루 역시 최상품만 고집한다. 그런 면에서 여타 막걸리에 비해 원자재 가격이 두 배 정도는 들어간다. 누룩은 직접 빚어서 깨끗한 환경에서 발효시켜 사용한다.
쌀과 밀가루의 배합은 100% 쌀로만 빚기도 하지만 쌀 70%에 밀가루 30%, 아니면 밀가루를 40%로 썩어서 술을 빚는다. 좋은 원자재에 지하 102m에서 끌어 올린 물은 막걸리를 빚기에 최상급이다.
술은 물맛이란 말이 있다. 술을 빚는 물 한잔을 마셔보니 진짜로 맛이 있다. 그러니 은자골탁배기가 이름을 날릴 만하다.
은자골탁백기는 밑술인 주모와 초단을 만들어 7일 후 여기에 고두밥과 누룩을 넣어 다시 7일이 경과 한 후 술을 거른다. 이쯤 되면 14.8%의 원주가 생산되고 후수를 더해 5%의 막걸리를 생산한다.
임주원 대표는 “은자골탁배기를 처음 먹어본 분들은 약간은 싱겁다고 합니다. 다른 막걸리에 비해 도수가 낮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도수가 낮은 막걸리를 내놓는 이유는 술로 인한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선교에 앞장서고 있는 은척막걸리
모르긴 해도 막걸리를 팔아서 선교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기업은 은척양조장이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임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들은 말이 은척양조장의 기업정신은 ▴선교하는 기업▴구제하는 기업 ▴정직한 기업을 모토로 건강한 술을 빚어 생산 하는 가족기업이라고 했고, 이윤은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이라고 했다.
실제로 은척양조장은 12명 전 직원 자녀에게 매달 장학금을 지급한다. 초등학생 자녀에게는 10만씩, 중학생은 20만원, 고등학생에게는 30만원씩 지급한다. 따지고 보면 적지 않은 돈이다.
선교하는 기업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1995년 양조장 부지에 은척성결교회를 건축했다. 막걸리와 교회헌납은 어딘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막걸리를 판매한 돈으로 교회를 건축하고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은척양조장이 고집스레 5%의 막걸리를 생산하는 이유는 막걸리는 전통발효식품으로 그 가치가 크고 이를 대중화시키고자 함에서란다.
임주원 대표는 현재 은척교회의 권사다. “선교란 것이 별거 있겠어요, 신앙생활하면서 성경말씀대로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을 실천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은척양조장은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기업예배(비신자는 참석 안함)를 드립니다.”
임 대표는 직원의 복지향상 못지않게 지역사회에도 온정의 손길을 뻗히고 있다. 상주지역 장애인들이나 장학 사업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 모두가 좋은 술, 건강한 술을 만들어 술을 마시는 사람마다 화가 변해 복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은척양조장의 운명이 물맛 때문에 바뀌다
임주원 대표는 대전이 고향이다. 대전서 여고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가 85년 28살 나이에 이곳 은척양조장 큰 아들한테 시집왔다. 시 아버지인 고이동영 씨는 아들보단 며느리에게 양조장을 물려 줄 생각이 많았던 모양이다.
“어느 날 시 아버님이 막걸리 한 잔을 주시면서 먹어보고 평가를 하라고 했습니다. 전 그 때 술맛도 잘 모르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도 되느냐고 재차 물은 다음 ‘구정물 같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시 아버지는 며느리한테 눈물이 나도록 혼을 냈다고 했다. 임 대표는 “솔직히 그 때 그 술은 담김이 없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2~3년 혼자서 막걸리 빚기에 온 정성을 다했습니다” 지금의 은자골탁배기가 탄생된 배경이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막걸리가 잘 안 팔렸다. 소주와 맥주의 판매량이 늘면서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이 서서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1994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얼떨결에 양조장은 며느리인 임주원 씨가 이어받게 되었다. 막상 막걸리 공장을 운영하기란 녹녹치 않았다.
그래서 양조장을 집어 치우려던 참에 때 마침 경북대 미생물학 교수가 버섯 농가를 둘러보기 위해 은척면에 왔다가 우연히 임주원 씨 집에 들러 물 한잔을 마시게 된다.
물을 마셔본 교수가 “막걸리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물”이라며 물맛을 극찬했다. 이어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전통 발효음식이라며 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임 대표는 “아마 그 때 그 교수 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은자골탁배기는 없었을 것”이라며 “음료나 과일을 내드릴 수도 있었는데, 시원한 물을 먼저 낼 생각을 한 것은 아마도 은자골탁배기를 위한 운명적 선택 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막걸리는 전통음식…첫째도 둘째도 청결
임주원 씨는 이때부터 막걸리를 다시 보게 됐고, 은척양조장을 다시 일으켜 세울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솔직히 효모가 뭔지 누룩이 뭔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막걸리의 최대 단점인 뒤끝이 나쁘고 트림이 나는 것을 없애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저온으로 숙성 기간을 늘리면 탁주 특유의 텁텁하고 걸쭉한 맛이 적고, 청량음료처럼 톡 쏘는 느낌이 무척 세련된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이 말은 사실이다. 은자골탁배기를 먹어본 사람들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이다. 때문에 경북을 평정해 나가고, 이제는 입점하기 힘들다는 E마트에도 9년째 입점하고 있다. 이 모두는 좋은 막걸리로 평판을 얻었기 때문이다.
임주원 대표는 첫째도 둘째도 청결을 꼽는다. 막걸리는 우리의 전통음식이기 때문이란다. 이 같은 청결을 모토로 양조장을 운영 한 결과 2014년에는 ISO 22000 인증도 받았고, 지난해에는 6차산업인증도 받았다.
이는 그 동안 임주원 대표가 시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뒤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거쳐 공장시설을 현대화 한 결과다.
고두밥을 쪄서 이를 단 시간 내에 식힌다던가 병입을 현대화 시설로 바꿔 일손을 덜게 하고, 방문하는 고객들을 위해 게스트하우스까지 마련하는 등 여니 양조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들을 해내고 있다.
웬만한 콘도시설만큼 깨끗한 게스트하우스 1박 요금이 4인 기준 5만원이다. 너무 싸다. 그래도 한옥 집지기를 했다는 이재희 전무(임 대표의 장남)는 공장 앞에 새로운 게스트하우스를 지어 오시는 손님들에게 멋진 추억을 선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찾아가는 양조장’에 선정된 은척양조장
은자골 막걸리는 지난 2005년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제4회 대한민국 막걸리 축제에서 막걸리 동호인들로부터 가장 맛좋은 막걸리로 선정되는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은자골탁배기는 막걸리 특유의 털털한 맛과 잘 발효된 곡주 향이 일품이라서 애주가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이런 덕에 지난 7월 15일 은척양조장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찾아가는 양조장’에 선정되었다.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은 지난 2013년부터 지역의 양조장에 대해 환경개선과 품질관리, 체험 프로그램 개선, 홍보·마케팅 등 종합적으로 지원해 지역 명소로 조성하고 6차산업화의 거점으로 육성하고자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이미 은척에서는 게스트하우스 운영으로 견학, 체험, 숙박이 가능한 분위기가 조성된 양조장이지만 임 대표는 차제에 공장 공간을 새롭게 리모델링하여 본격적으로 ‘찾아가는 양조장’사업에 발 벗고 나서기로 했다.
상주에는 충의사, 상주박물관, 경천대, 동학교당(세계문허ㅘ유산 추진 중) 등 다양한 볼거리와 인근에 성주산자연휴양린이 있어 이를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 중에 있다고 한다.
특히 오랜 세월 가업을 이어온 결과 ‘경상북도 향토뿌리기업인증‘도 받았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다 보니 길가에 비석 하나가 서 있다. 2007년 3월 전 상주 金周東 부군수가 주측이 돼 李東寧 선생의 공덕을 기리는 공덕비가 서 있다. 은척 양조장을 하면서 얻어진 수입금으로 학교를 세우는 등 후진양성에 힘쓴 공을 기리기 위해서다.
경북도에서도 이번에 선정된 ‘찾아가는 양조장’에는 “지역의 양조장이 체험·관광이 결합된 명소로 안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개발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낙동강 칠백 리 가운데 자연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경천대(擎天臺)가 198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고, 특히 승마경기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상주에 은자골 막걸 리가 또 하나의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