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컵 별자리 신화(上)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 컵 별자리 신화(上)

 

봄철의 남쪽하늘은 어두운 ‘바다뱀자리(Hydra)’가 길게 누워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뚜렷하게 눈에 띄는 별들이 거의 없다. ‘바다뱀자리’의 별들도 4등성 이하의 별들이 대부분이어서 북쪽의 밝은 별들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이곳에는 새순처럼 눈에 띄는 사다리꼴의 작은 별무리가 유일하게 시선을 끌고 있다. 다른 곳에 있었다면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는 별들이겠지만, 어두운 별들만이 있는 이곳에서는 매우 잘 알아볼 수 있는 별무리이기에 눈길을 끈다. 이들이 만드는 별자리는 그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까마귀자리’이다. 새봄에 까마귀라니 아무래도 어색하다. 봄철 밝은 별이 없는 남쪽하늘에 물뱀자리, 컵자리와 더불어 하늘을 지키고 있는 까마귀자리 이야기이다. 매우 어두운 별자리인데다가 모양도 딱히 까마귀를 떠올릴만한 모습이 아니기에 찾기도 쉽지가 않다.

까마귀자리는 컵자리 또는 술잔자리와 나란히 바다뱀자리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별자리이다. 4개의 3등급별이 약간 일그러진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서쪽(우측)의 8개 별로 구성된 컵자리보다 더 눈에 잘 띄는 별자리이다. 이 까마귀자리를 동양권에서는 <돛을 단 별(designtimesp)>로도 부르고 있는데, 영국에서도 이 4개의 별을 ‘범선(帆船)의 돛’으로 보고 ‘돛을 단 별자리(Spica’s Spanker)’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서 ‘스파카’라는 말은 처녀자리의 스피카를 뜻하는데, 실제로 감마(γ)성에서부터 델타(δ)성을 연결하여 그대로 연장해 나가면 스피카로 이른다. ‘스팽커(Spanker)’라는 말은 큰 범선의 가장 뒤에 있는 ‘종범(縱帆)’을 뜻한다. 망망대해에서 항해하던 옛 영국의 선원들 사이에 이 말이 전파되어 있었다. 언뜻 보면 까마귀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α성이 까마귀 주둥이 이다.

까마귀자리는 감마(γ), 델타(δ)성이 까마귀의 날개를 이루고 있고 알파(α)성이 주둥이라는 구상이다. 이 별은 ‘봄의 대삼각형(designtimesp)’ 중의 한 별로 처녀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인 스피카에서부터 남서쪽으로 약간만 내려가면 곧 까마귀자리에 도달한다.

그것에 자신이 없으면 다시 그 별자리의 우측에 8개의 별로 이루어진 ‘물컵 모양의 컵자리’가 있음을 확인하면 된다. 또 다른 방법은 처녀자리를 스피카 중심으로 찾아보면 그 처녀자리 바로 남쪽에 일그러진 사각형의 작은 별자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까마귀자리’이다. 그 바로 밑으로는 ‘바다뱀자리’가 길게 동서로 뻗어 있을 것이다.

 

까마귀라는 새는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않는다. 신화에서 거짓말을 매우 잘 하는 새로 등장한다. 그 옛날, 이 까마귀는 태양의 신(神)인 아폴론의 시중을 들던 새였다. 즉 아폴론의 신조(神鳥)였다. 그런데 거짓말로 이어진 일련의 사태로 그의 주인인 아폴론의 저주를 받게 된다. 이 신조는 사람의 말을 자연스럽게 하고 황금색의 날개를 갖고 있었다.

아폴론은 텟사리아의 코로니스(Coronis) 왕녀를 아내로 삼았지만, 매일 분주하여 같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까마귀는 매일 아폴론과 코로니스 사이를 왕복하며 그날그날 일어났던 일을 보고하기로 하였다. 코로니스는 라피테스족의 왕 플레귀아스(Phlegyas)의 공주이다. 그 의미가 ‘까마귀’라는 뜻이다. 절세의 미인으로 아폴론의 사랑을 받았으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그 이유는 하루는 까마귀가 다른 일로 늦게 코로니스한테 도달했는데, 어떤 남자하고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것만 보고 까마귀는 아폴론한테 그 사연을 일러 바쳤다. 사실 그 남자는 코로니스의 오빠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폴론은 질투심에 못이겨 집을 향해 달려갔다. 집 앞에 인기척이 있어서 활로 쏴버렸는데, 그 사람이 바로 코로니스였다. 그녀는 “나는 죽어도 괜찮지만 뱃속의 애는 살려줘요”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공주의 장례식에서 아폴론은 뒤늦게 공주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뒤늦게 아폴론은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고, 자신에게 공주의 거짓 소식을 알려준 까마귀에게 화풀이로 까마귀의 아름다운 은빛 날개를 새까맣게 타버리게 하였다. 원래 흰색이었던 까마귀는 이 때 아폴론의 화풀이를 당해서 검은색이 되었다. 거짓을 알린 까마귀는 황금색 날개가 변색하여 검게 되고 울음소리도 ‘까아까아’하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아폴론은 죽은 공주의 몸에서 아기를 꺼내고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켄타우로스 종족인 케이론(Chiron)에게 대신 키우게 하였다. 케이론은 아폴론의 아이에게 의술을 가르쳤는데, 이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esculapius)’가 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코로니스가 아폴론의 사랑을 받기 전에 이미 아르카디아의 왕자인 이스키스와 약혼한 사이였다. 처녀의 몸으로 아폴론의 아기를 잉태한 코로니스는 이를 밝히지 못하고 이스키스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코로니스는 광명과 음악의 신인 아폴론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아폴론은 신이었기 때문에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지만, 자신은 인간이기 때문에 늙어 죽을 수 있어서, 아폴론이 나중에 그녀를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까마귀는 이 사실을 아폴론에게 알리자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인간과 결혼한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껴 누이 동생인 사냥의 신 아르테미스(Artemis)를 시켜 활로 그녀를 쏘아 죽이도록 하였다. 한편 히아데스 일곱 자매가운데 하나의 이름도 코로니스이고 Dionysos를 길러 준 유모의 이름도 이와 같다.

세 발 까마귀라면 평북 은산의 천왕 지신총에 벽화로 남아있는 고구려의 삼족오(三足烏), 평남 용강의 ‘쌍영총(雙楹塚)’에 벽화로 남아있는 그 삼족오이다. 고구려의 삼족오가 태양을 상징하는 새였다. 신라 사람들도 까마귀를 일신(日神), 혹은 태양신조(太陽神鳥)로 섬겼다는 기록이 있다. <시경>에도 까마귀 이야기가 나온다. 천제(天帝)가 보낸 현조(玄鳥)가 그것인데, 이 현조는 바로 태양신을 상징하는 까마귀, 즉 양조(陽鳥), 금오(金烏), 삼족오(三足烏)이다. 삼족은 아마도 ‘천‧지‧인’을 상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컵자리’ 여러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그럴 듯한 것은 ‘까마귀자리(Corvus)’와 관련된 것이다. 까마귀자리의 신화를 읽어보면 아폴로 신이 까마귀, 물뱀과 같이 ‘물컵’을 하늘로 던져버린 이야기가 나온다. 컵이 물뱀자리와 까마귀자리 옆에 있어서 그런지 이 이야기가 컵자리에 얽힌 가장 널리 알려진 신화가 되었다.

신화의 다른 이야기는 까마귀가 하늘의 별자리가 된 것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아폴로 신이 멀리 있는 샘물을 마시기 위해 자신이 키우던 까마귀를 물심부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까마귀는 도중에 탐스러운 열매가 달리기 시작한 무화과나무를 발견하고 아폴로 신의 명령도 잊은 채, 그 열매가 익을 때까지 무화과나무의 그늘진 잎 속에서 기다렸다. 얼마 후 잘 익은 무화과나무를 먹어 치운 까마귀는 아폴로 신의 명령을 기억하고 변명할 방법을 궁리하였다.

남태우 교수
:중앙대학교(교수)▸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헌정보학과 박사▸2011.07~2013.07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2009.07 한국도서관협회 부회장▸2007.06~2009.06 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2004.01~2006.12 한국정보관리학회 회장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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