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린 속 부여잡고 출근은 했지만…

술! 그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대한 단상(斷想)

쓰린 속 부여잡고 출근은 했지만…

육정균 (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詩人/부동산학박사)
세상 인류의 시초부터 술이 있어왔다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다양한 술이 있고, 다양한 술문화가 있으며, 애주(愛酒), 반주(飯酒), 폭주(暴酒), 절주(節酒), 밀주(密酒), 금주(禁酒) 등 술에 대한 용어도 다양하듯 사람들의 술에 대한 기호와 가치도 사뭇 다르다.
우리 민족은 풍류, 풍물, 한잔 술에 흥이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는 신명의 민족이듯,  어릴 적 술에 대한 단상은 이렇다. 지금은 서해안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거의 수도권에 해당하는 중부 서해안 도시 충청도 당진이 고향인 나는 꼬마시절부터 시골 농악, 풍물패를 따라다니며 자랐다. 인생은 온통 꿈에 부푼 풍선처럼 아름다울 거야! 어릴 적은 그랬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며 인생이란, 삶이란 결국 99%의 고난과 1%의 즐거움, 쾌락으로 채워진 오묘한 물건이란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요즘은 겨우 설과 추석 명절, 그리고 대보름 정도만 세시풍습으로 인정하고 그 의미를 살리는 분위기이지만, 어릴 적 시골, 농촌에서는 설과 추석은 물론, 정월 대보름, 한식, 청명, 7월7석, 동지 등 세시풍습이 가족들의 생일처럼 지켜진 듯하다. 각 가정은 물론 마을 단위로 음식을 차리고, 풍물패를 구성해서 꽹과리, 장구, 북, 징을 두드리고, 상모를 돌리며, 마을의 정자에서 출발해서 온 마을을 집집마다 돌며, 술과 떡과 고기를 나누어 먹으며, 어른 아이 온통 잔치 분위기에 온 마음이 행복에 취했었다.
허나, 마을잔치에서 어린 나와 형은 그저 긴 상모를 돌리는 풍물패를 따라다니며 즐거워만 했지, 동네 어른들처럼 술과 음식은 뒷전이었다. 문제는 집에 온 후에 일어났다. 풍물패를 따라다니다 지친 형을 따라서 집으로 돌아온 것까지는 기억나는 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형과 둘이서 아버지께 몹시 혼나고 있었다. 지금에야 술이 흔하고, 좋은 술도 넘치지만 내 어릴 적은 쌀도 귀했지만 술도 귀했을 뿐 아니라, 지금처럼 집에서 약주를 담그거나 쌀로 동동주를 담는 것까지 금지되어 가끔은 시골 집집마다 몰래 담가서 농사지을 때 막걸리로 쓰거나, 막걸리를 거르기 전에 뜬 동동주, 즉 맑은 술(정종)을 떠서 제사용으로 쓰기 위해 밀주(密酒)를 담았다. 종가 집에 큰집인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형제는 어머니가 애지중지 담가 조상들 제사 때에 쓸 정종이 가득 우러난 술독을 열고, 뒤웅박에 술을 나누어 먹고 필름이 끊긴 것이었다. 물론 이때는 내 몸이 알코올을 잘 분해해서 쉽게 해독하는 체질이 아닌지도 몰랐었다.
그런 후 술에 대한 가장 강력한 추억의 사건은 대학에 낙방하고, 그 시절 학구열이 높았던 젊은이들이 흔히 하던 사법고시를 공부하다가 군대를 가기 전 불안한 마음에 어쩌다 본 국가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만 19세에 당시 건설부 공무원으로 입사 직후 벌어졌다. 회식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선배들의 주량이 대단했다. 소위 박스로 먹는 수준이었다. 저녁을 먹다가 정신을 차리니 하숙집에 누워있었고, 선배 둘이 같이 자고 먼저 일어나서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니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아랫도리를 벗기고 고추? 검사까지 하였다는 것이다. 정말 쪽팔리고, 창피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오후까지 이어졌다. 속은 쓰리고,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머리가 아파서 일을 하기가 힘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엄청난 고통이자 스트레스였다. 그 이후에도 직장의 회식 때마다 개인적으로는 밥을 먹으며 먹는 반주(飯酒)마저도 힘들었다.
그러나, 어느 날 보통 사람들이 반주(飯酒) 정도로 먹은 술도 힘들어하며 열심히 일하는 내게 선배들이 우연히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육정균 저 친구는 품성도 좋고, 일도 열심히 잘 하는 데, 사내 녀석이 술을 못해서 큰일이야. 자고로 술도 잘 먹는 놈이 일도 잘하는 데 말야….” 술을 잘 먹지 못하는 것도 단점이 되었던 1970년도 후반에 난 결심하였다. “나도 술도 열심히 먹고, 일도 열심히 하겠다고…” 그래서 난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아니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 생리적 문제는 상관없이 억지로 술자리를 같이하고, 혼자서는 여전히 힘들어했다. 이러한 모습은 필자가 2004년 출간한 개인시집『아름다운 귀향』에 실린「평지풍파 속수무책(平地風波 束手無策)」이란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어젯밤엔 못 하는 술 직장 동료들끼리 어울릴 줄 모른다는 험담 듣지 않으려고, 아니 술 못 하는 것도 약점 잡는 세상에 약점 잡히지 않으려고 어울린 술자리에서 제일 싫어하는 폭탄주까지 몇 잔 얻어맞고 넘어져 다리까지 다쳤다.
쓰린 속 부여잡고 출근은 했지만, 내가 출근했는지 술이 출근했는지 멀쩡한 나는 없고 술이 되어 버린 내가 흐느적거리며 온통 화생방 경보를 울리면서 다니니 보는 사람마다 “어제 술 많이 드신 모양…”이라고 한 마디 하건만 입에서 뱉지 않은 너무 많은 것 확실하고, “글쎄 어쩌다 보니 술이 되어 버렸네요” 계면쩍은 대답으로 얼버무리고 돌아서는 순간 부사장님 호출하시어 “주 상무! 그거 있잖아, 사장님 결재 받아 시행했나?” 많고 많은 일 중에… “그거라니요?” “아니 이 사람아 그거 말야” 그 때 아랫배가 쌀쌀 아프고 임산부 아이 휘몰이 하듯 후벼 파는 통증이 오니 자동으로 감도 못 잡는 일에 대한 대답이 “아아 유” “응 그거……” 저는 지금 어제 술 먹고 설사 낳으려고 아픈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갑니다요. 지금 그 어떤 말도 어떤 일도 시키지 마세요 제발….
정신없이 화장실로 뛰어들어 자동 기관단총으로 똥포를 하향발사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똥포를 발사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똥포를 주르륵 발사하고, 다시 항문과 아랫배 사이에 께름칙한 긴장된 정적이 흐르는 사이 잠시 정신을 차려 부사장이 말한 그거 있잖아를 생각해보니…. 이런, 오늘까지 막을 어음 100억 결재 건이네. 당장 사장님 결재 맡아 이리저리 거래은행에 구걸하여 갚고 부도 막아야 하는 판에 술이 되어 버리다니…. 허둥지둥 일어나려다 다시 멀건 물똥을 조금 서비스로 싸고 휴지걸이를 보니 아뿔싸 휴지가 하나도 없네.
이거 어렸을 적 강가에서 미역을 감다가 당한 일이라면 당장 모래펄에서 적당히 구워진 예쁜 자갈로 닦거나, 강 조금 아래 다른 아이들이라도 놀라치면 일부러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물속에 실례를 하고 슬그머니 강가로 나와 이내 아우성치는 아이들의 고함 소리를 즐기던 죄를 이제 뒤늦게 뒤집어쓰나 이거 어디 닦을 데가 있나 남이 일 보고 버린 휴지를 담은 휴지통도 없는 양변기에서 아래는 온통 똥포의 광란장이요 항문도 전쟁에서 피 흘린 똥 범벅이 찐득한데, 손으로 닦아도 양 손으로 닦아야 하고 그냥 올리자니 당장 어기적거리고 사장실로 달려가야 하는 데…. 내 몸이 온통 술일지 몰라도 순간 내가 살려달라고 달려오고 있었지만 지화자 나도 정말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다.
– <평지풍파 속수무책(平地風波 束手無策)> 전문
간의 해독능력도 나쁘고, 체질적으로 술이 맞지 않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위해 억지로 술을 먹다 보니, 조금만 먹어도 살로 가는 체질이라 남 보기에 키는 작아도 당당한 풍채라는 말은 듣지만 언제나 과체중에 배 나온 볼품없는 몸매를 가져야 했고, 조금만 과해도 필름이 끊기는 일도 많았다. 그러면서 약 5년 전부터 혈압이 높게 나왔다. 고혈압 전단계로서 체중을 10kg 정도 감량하든지, 뇌졸중 예방을 위해서 혈압 약을 복용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다. 얼마를 망설이다가 혈압 약을 처방 받으러 갔고, 술에 대한 나의 상태를 듣던 의사는 체중조절과 건강을 위해서 과감히 술을 끊고 금주(禁酒)할 것을 권하였다. 허나 당장 금주까지는 망설였고, 절주(節酒)를 하려 노력했다.
그러다가 2015년부터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과정을 2년 반 동안 이수하면서 다양한 사회복지이론과 실천방법론을 공부하게 되었다. 심리학, 정신분석학, 정신병 등 의학이론도 함께 배우면서 병중에서 ‘암’이 가장 무서운 병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상에 암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병은 ‘치매’였다. ‘암’도 무서운 병이지만, 죽더라도 정신은 멀쩡하여 뚜렷한 정신으로 신변정리도 할 수 있고 가족들과 아름다운 이별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치매’는 그 정도가 깊어져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면, 자기의 아내도, 자식도 몰라보고, “아줌마 누구지?”, “아저씬 누구야?”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백만장자라도 돈이 있는지조차 모르게 됨은 물론, 그를 둘러싼 가족과 사회복지 등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치매’의 여러 요인 중에도 폭주나 잦은 음주가 뇌혈관과 뇌중추신경을 가장 많이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철저한 금주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술을 끊은 것은 어느덧 나이 들며, 버려야 할 과욕을 비우고, 무질서한 나의 흔적을 지우며, 타성에 젖은 나쁜 습성을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는 절제에 대한 나 자신의 약속 이행이지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술의 종류가 다양하듯 사람들의 특성도 다양하며, 술에 대한 문화와 삶도 다양하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화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술 문화도 폭음과 폭주(暴酒)를 미덕으로 삼던 시대에서 술을 적게 마시면서도 멋있고 품위 있게 즐기는, 절주(節酒)하더라도 술을 멋있게 사랑하는 애주(愛酒) 문화로 변모했다고 본다. 따라서 술을 못하는 사람이나 금연자(禁煙者)와 같이 술을 끊은 금주자(禁酒者)에 대하여도 바람직한 눈으로 보는 술문화, 술을 안 하는 이에게 술을 강권하지 않는 술문화를, 술을 잘 먹더라도 심한 주사(酒邪)로 주변 사람들에게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주는 동시에, ‘치매’에 가장 빨리 걸릴 개연성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과 사회를 위해서 과감하게 술 끊을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럼에도 여전히 술을 아름답게 사랑하는 이들에게 술 한 잔을 권하며 시간을 함께 하는 멋은 간직하고 싶고, 어쩌다 정다운 이들과 소주 한잔, 분위기 있는 곳에서 와인 한잔은 할 줄 아는 아내 옆에서, 경이로운 신명의 아름다운 노년으로 늙어가고 싶다.
필자 육정균
*필자 육정균 : 1960년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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