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산업과 정책이야기(40)
이스라엘의 음주문화와 알코올정책(1)
조성기(아우르연구소 대표/경제학박사)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던 2020년 초 미국사회는 유태인사회와 이탈리아 이주민 가족에서 확진 율이 매우 높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의 가족적 유대와 삶의 방식이 감염률을 높인 것이다. 모여 살기를 좋아하고 종교적 의례를 할 때 술을 마셨고, 음주 친화적인 서구문화와의 꾸준히 접촉했고, 과음 국가로 부터의 이민이 많아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을 충분히 갖춘 곳이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이 낳은 가장 위대한 성인 예수님도 술을 잘 드셨다는 책도 있으니 이스라엘의 최근 변화는 이상한 일은 아니다.
술과 종교와의 관련성 연구나 과음을 막기 위한 문화적 메커니즘을 찾아내고자 할 때 이스라엘은 아주 적절한 방문국일 수 있다. 바이러스로 인해 해외여행이 막혀 있는 이 때 이스라엘로 술 여행을「삶과 술」을 통해서나마 떠나보자.
잘 알려졌듯이 가톨릭 성당은 음주에 대해 대체로 허용 적이다. 한편 기독교 교회는 대부분 음주를 금하고 있다. 그 차이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독교 경전을 자세히 읽다 보면 그러한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된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도 일제강점기나 6.25전쟁 등의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의 디아스포라 경험 이상의 힘든 역사를 경험했다. 힘든 삶은 술을 권했고 문제가 발생하자 삶에 경건한 규율을 세우고자 노기독교 목사들의 노력한 방편이 금주였다. 그렇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계율이 하나일 텐데 뿌리가 하나로 알려진 종교의 지파들이 술에 대해 입장을 달리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또 하나의 뿌리인 이슬람의 경우는 아주 강력한 금주령으로 유명하니 더 신기한 일이다.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하나님 신앙의 원조인 이스라엘로 조사여행을 가자. 과연 이스라엘들의 술에 대한 상황이나 그들의 입장은 어떠할까?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경건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시지 않거나 술 문제와는 무관할까? 그것을 알고 싶다.
답변을 찾기 위한 첫 관문이 이스라엘 언론에서 언급한 청소년음주다. 기사가 너무 원색적이다. 기사를 찾아보면 알코올이 이스라엘을 죽이고 있다(Alcohol is killing Israel)는 제목이 눈에 확 띈다. 특히 청소년 음주가 늘고 있어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최근 20년간 이스라엘의 음주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큰 문제는 최초음주연령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고, 학교에서나 집에서 술 마시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쇼킹한 보도인 것이다. 집에서도 그렇지만 학교에서 술을 마신다는 기사는 사실여부에 대해서도 큰 의문을 갖게 한다.
물론 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음주총량은 선진국들과 비교할 정도가 아니다. 적다. 그러니 상대적인 문제는 아니다. 문제를 상대적인 음주량 비교 보다 절대적 수준의 음주량이 늘고 있거나 음주의 상황과 결과 등 질적인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유럽지역의 15세 이상 인구 평균음주량이 2010년에 11.2ℓ이고 2016년에 9.8ℓ이지만 이스라엘은 각각 2.9ℓ와 3.8ℓ이므로 절대량이 많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음주량 수준은 세계 최대 음주국인 러시아와 비교해보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런 비교는 무의미 하지만 극명한 상황비교를 통해 현황을 보는데 도움이 된다. 러시아인들은 연간 평균 40병의 큰병 보드카를 마신다. 여성을 빼고 러시아 남성들 위주로만 측정하면 연간 보드카 주량이 평균 70병으로 무진장 늘어난다.
이에 비하면 이스라엘의 음주량은 아주 적은 수준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술이 문제인 이유는 대체로 인식문제다. 경건한 나라가 언젠가 통째로 변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술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이스라엘의 법원에서는 청소년에게 술을 사주는 어른에게 3개월 금고형을 내리고 있다. 실형이다. “이스라엘에서 그런 일이?” 하고 의아해들 하겠지만 그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의 15세 이상 알코올 음주량이 3.8ℓ 정도인 것은 성인들의 음주문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숫자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인들의 평가다. 이스라엘 사람들로서는 적지 않은 양이다. 게다가 성인들이 청소년들을 술 마시게 하는 일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원천봉쇄 해야 한다는 의견일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해가 안가는 또 하나의 숫자는 ‘알코올의존자 비중’이다.
유럽 국가들의 2016년 평균알코올의존자 비중이 3.7%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3.3%나 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술은 덜 마시는데도 의존자 비중에 아주 큰 차이가 없다니 이상한 일이다. 음주량이 과소 측정되고 있을 수 있거나 잣대가 달라 문제가 과다 측정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의 정보는 동일한 잣대를 기준으로 측정하니 의혹이 가고 해석이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의존 자가 많다는 사실이고, 심각하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역시 청소년 음주문제다. 청소년 술 소비가 늘고 있어 이스라엘 청소년들에게 대마초인 해시시보다 술이 치명적 약물이라는 입장은 분명하다. 언론은 그 내용을 대서특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청소년음주가 어른이 되었을 때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다.
누구나 잘 알듯이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오래 읽은 책이 성경이다. 과연 성경은 술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성경연구부터 해 보자. 인터넷 자료를 보면 성경 속의 음주문제는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
먼저 성경에는 ‘술 취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적혀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니 (술 취함을 포함하여)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다(갈라디아서 5:19,21)”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다(고린도전서 6:10)” 등이 그것이다.
또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다.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진 옷을 입을 것이다(잠언 23:21)”라며 술에 취함을 반대하고 있다.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다(고린도전서 5:11)”라며 취하는 자와 친구관계도 갖지 말 것을 제안하고 있다. 결국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며 술 취함을 부정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의견이 있다. “술을 절도 있게 마시는 것은 죄가 아니다. 포도주가 삶을 더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하느님의 선물이다(시편 104:14, 15; 전도서 3:13; 9:7)”라고 했고, “예수님도 땅에 계실 때 포도주를 마셨다.(마태복음 26:29; 누가복음 7:34)”라고 적고 있다.
성경 말씀은 알고 보면 이중적이다. 취함을 반대하면서 절도 있게 마시는 것은 인정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예수의 기적도 결혼 잔치 때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술을 결혼식에 참여한 이들에게 선물로 주셨다(요한복음 2:1-10). 물을 술로 바꾸셨으니 예수님은 술 제조를 하신 것이다. 술 취함을 부정하는 성경이 술 마시는 것 자체를 막지는 않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으니 신이 인간에게 그 결정권을 주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결국 성경은 술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골고루 언급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과음과 술에 취하는 일을 문제시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은 절도 있게 마셔야 합니다.디모데 전서 3:8; 디도서 2:2, 3)”고 전파하고 있다.
성경에서 과음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이유를 정리해 보자. “과음을 하면 사고력과 판단력이 흐려지고(잠언 23:29-35) 술 취한 사람은 성경의 이 명령을 따르지 못한다.” “과음을 하면 자제력과 옳은 일을 하려는 동기가 사라진다(호세아 4:11; 에베소서 5:18). 과음을 하면 가난해지고 심각한 건강 문제를 겪을 수 있다(잠언 23:21, 31, 32). 하느님께서 과음과 술에 취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긴다(잠언 23:20; 갈라디아서 5:19-21).” 등을 이유로 찾을 수 있다.
“얼마나 마시면 많이 마시는 것인가?”에 대해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면 과음을 한 것이다. 정신을 잃어야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사물을 분간하지 못하거나 똑바로 걷지 못하거나 싸우려 들거나 말이 어눌해지면 술에 취한 것이다(욥기 12:25; 시편 107:27; 잠언 23:29, 30, 33). 라고 과음을 정리하고 있고,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더라도 과음을 하면 짓눌려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누가복음 21:34, 35).”고 과음의 문제점을 추가하고 있다. 결국 마시더라도 과음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술을 전혀 마시지 말아야 할 때를 규정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다른 사람이 걸려 넘어질 경우(로마서 14:21). 술을 마시는 것이 불법인 경우(로마서 13:1). 술을 마실 때 자제하지 못하는 경우나 알코올 의존증이 있거나 그 밖의 방식으로 술을 남용하는 사람들은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마태복음 5:29, 30).”라고 적었다.
성경에서는 술, 특히 와인을 인간의 마음에 즐거움을 선사하는 물질로 칭송하면서도 과음은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성경을 찾아본 결과 우리나라의 일부 기독교 목사들의 금주 의견이 성경을 넘어 필요에 의해 설파한 것이 된다.
그런 저런 이유로 유태인들이 적당한 음주를 하는 것은 일상적인 상황이 되고 있다. 또한 사회통념상 알코올의 음용을 일정한 수준으로 제한하는 것이 일반화되게 된다. 유태인의 역사책을 들여다보면 만취는 “개인적으로도 조롱꺼리가 되고 가족이나 친지들을 부끄럽게 하는 일”로 기록된다.
그러니 유태인의 종교에 기원을 둔 문화적인 규범으로는 이스라엘인들이 분명히 ‘금주’가 아니라 ‘적정음주’를 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 맞다. 문헌연구의 결론은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도 “음주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성경의 분석과 같이 현실에서 음주에 대한 규제는 종교적 생활이나 계율의 한 부분이다. 이스라엘인의 음주는 대체로 연회의 자리에서 이루어졌고 과음에 대해서는 문화적 제재가 가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국가들과 별다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술에 관한한 특별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하나님은 적당한 음주자 편이었는데 한반도의 근엄한 목사님들이 금주를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태인들이 누구나 이탈리아나 러시아의 술꾼들처럼 술을 마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절대 아니다. 과음을 하거나 알코올 중독과 관련하여 발생한 ‘알코올문제’들에 대해서 그들은 대단히 부정적이라고 보는 게 맞다. <다음호 계속>
조성기
(趙聖基, Surnggie Cho, PhD. of Economics. MPH.)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회장
원주한살림, 이사장
살림농산, 대표이사
아우르연구소, 대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