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길을 알고, 사람은 법을 안다
박정근
(문학박사, 황야문학 주간, 작가, 솔아문학예술연구소 대표, 시인)

요즘은 유머가 필요한 시대다. 웃지 않으면 숨이 막히고, 웃자니 세상이 너무 노골적으로 물질만능주의로 가득하다. 그래서 술자리는 그저 가십거리가 즐기는 수준이다. 하지만 진정한 유머와 해학이 없는 술자리는 허전하다. 술자리가 늘어날수록 정작 진정한 웃음은 줄어들었다.
갈수록 술자리는 화려해지고 값비싼 술은 넘치지만, 참석자들이 배꼽이 빠지게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유머의 샘은 말라붙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왁자지껄 떠들면서 각자 잔은 비우지만,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는 이야기꾼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유머와 해학이 넘쳤던 인물로 김삿갓을 거론해보자. 그가 살던 시대에도 술자리는 있었다. 다만 김삿갓은 술자리를 반드시 웃음으로 시작했으며 삭막한 분위기를 해학으로 웃음판을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그의 술자리는 웃음이 없으면 술도 없었다.
어느 고을에 김삿갓이 머물렀을 때,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친구와 술자리를 마련할 참이었다. 이때 사또가 김삿갓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급히 불러들였다.
“동네에 골치가 아픈 큰 분쟁이 벌어졌소. 이 문제를 해결해주면 거나하게 술을 사겠소이다.”
이건 기가 막힌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호주머니 사정도 시원치 않은데 기지만 발휘하면 술상이 거저 들어올 수 있는 거다. 이번 건은 소의 소유권에 대한 소송이었다. 즉, 소 한 마리를 두고 두 사람이 서로 자기 것이라 우기고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땅 한 필지, 아니 개발 예정지 한 블록쯤 된다. 그 소를 차지하면 한 집안의 살림이 달라진다. 그러니 서로 집안의 재산 1호에 해당하는 소를 차지하기 위해 두 사람 간의 시비로 끝나지 않고 동헌에 제소하는 법적 분쟁으로 확산이 된 형국이다.
사실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재산분쟁을 두고 형제간의 시비가 벌어지는 양상을 보면 ‘형 먼저, 아우 먼저’를 하던 형제간의 우애는 찾아볼 수 없다. 돈 앞에는 우정이나 부모도 필요 없다는 식이다. 심지어는 보험금을 타려고 남편이나 아내를 살해하는 비 인간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그래서 돈을 움켜쥐기 위해서 얼굴은 붉어지고, 말은 칼날이 된다.
이번 경우는 서로 소가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며 나서고 있지만 그걸 증명할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기지가 부족한 사또는 위엄만 내세우며. “법대로 하겠다.”며 두 사람을 가두려 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일단 압수·구속 후 조사’다. 그러나 증거가 없는 구속 수사가 해결될 리가 만무하다. 이런 법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감삿갓의 머리를 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술을 좋아하는 김삿갓에게 술상이라는 미끼를 던진 것이다.
“사또, 저 사람들은 죄인이 아니라 욕심쟁이입니다. 가둔다고 욕심이 줄어들까요?”
사실 인간의 욕심은 감옥에서도 자란다. 요즘 세상엔 더 기가 막힌 욕심이 있다. 남의 땅을 자기 땅으로 만드는 재주, 법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국유지를 개인 재산처럼 바꾸는 기술. 이쯤 되면 소를 훔치는 게 아니라, 법을 사육하는 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유를 위해 싸우고, 소도 함께 갇혀있는 것이다.
김삿갓은 말했다.
“소를 풀어주십시오.”
사또와 백성들은 웃었다. “소가 말을 하나요?”
삿갓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보다 정직하게 말합니다.”
소는 풀려나자 곧장 걸었다. 회의도 없고, 법률 자문도 없었다. 줄곧 한 방향이었다. 그리고 소가 멈춘 곳은, 늘 먹이를 주고 외양간을 쓸어주던 그 집 앞이었다. 소는 계약서를 쓰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증명했다. 주인은 소를 차지한 사람이 아니라, 소를 아끼고 먹이를 주고 외양간에 보호해준 사람이었다.
그제야 사또는 깨달았다. 법으로도 못 푸는 문제를. 그것도 소 한 마리가 풀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날 밤 술자리가 열렸다. 그냥 술이 아니었다. 이야기가 먼저 돌았다.
“요즘 사람들보다 소가 더 법을 잘 안다.”
“사람은 서류를 만들고, 소는 길을 만든다.”
웃음이 터지자 술이 따라왔다. 소를 빼앗겼던 사람은 억울함을 풀었고, 탐욕으로 소를 훔치려 했던 사람은 얼굴을 들 곳이 없었다. 그는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또한, 김삿갓은 자신의 기지와 유머가 가득한 풍자를 즐기며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김삿갓은 술잔을 들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이 술은 소가 샀습니다. 우리는 웃음으로 갚읍시다.”
그리고 즉석에서 시 한 수를 읊었다.
소는 말이 없으되 길을 속이지 않고
사람은 말이 많으나 마음을 숨기네
법은 글자에 살고 욕심은 틈에 사는데
외양간 앞에 멈춘 발자국 하나
천 마디 변명보다 크더라
술자리가 끝날 무렵, 사람들은 깨달았다. 진짜 유머란 남을 이기는 재치가 아니라, 욕심을 내려놓게 하는 웃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김삿갓의 술자리는 언제나 그랬듯, 문제를 기지와 유머로 해결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사진 : 누렁소 블로그에 실린 ‘워낭소리가 들려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