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맥주는 유럽의 다른 나라 맥주보다 강한 편이다. 이 나라만큼 독한 맥주를 스스럼없이 마시는 곳도 없다. 알코올 도수 5%의 일반적인 맥주도 벨기에에선 가장 약한 맥주에 속한다. 보통 7∼8%가 대부분이고, 10∼11%도 드물지 않다. 이 때문에 주로 용량이 작은 글라스에 제공된다. 그러나 벨기에 바깥에서 벨기에 맥주를 접하기란 쉽지 않다.
벨기에 맥주 대부분은 ‘병 속 숙성맥주(Bottle-Conditioned Beer)’다. 말 그대로 병 속에서 계속 발효가 진행되는 것으로, 자연 탄산의 생성과 함께 보다 깊은 맛과 향을 갖는다. 이런 과정은 병 속에 남아 있는 ‘살아있는 이스트(Living Yeast)’에 의해 진행된다. 병에 담기 전 살균을 위한 열처리와 여과를 거치면서 이스트를 죽이고, 걸러낸 후 이산화탄소를 인위적으로 맥주에 녹이는 보통 일반적인 맥주의 경우와 다르다. 그래서 병 속 숙성맥주는 이스트에 의한 침전물(Sediment)이 생긴다. 와인처럼 묵히면 묵힐수록 맛이 좋은 맥주가 바로 벨기에 맥주다. 벨기에의 많은 맥주 가운데 ‘랑비크(Lambics)’계열은 아주 독특하다. 랑비크를 만드는 자연 발효방법은 그 기원이 7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나 인더스 문명의 사람들이 곡식을 발효할 때 사용했던 방법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갓 만든 맥아즙(Wort)을 냉각조 속에 담아놓고 밤새 공기가 자유롭게 통하는 곳에 놓아두면 공기 중의 야생 이스트가 그 안에 내려앉는다. 야생 이스트와 함께 온갖 종류의 미생물들 역시 이 과정에 참여한다. 냉각이 끝난 후 발효조로 옮기면 랑비크 양조업자는 원재료를 고르는 일, 맥주의 산도를 바꾸는 일, 발효온도를 조정하는 일 등 3가지 일을 빼고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긴다. 랑비크는 대부분 드라프트(Draught)로 양조장 소유의 작은 카페에서나 맛볼 수 있다. 신맛이 강하지만 숙성 정도에 따라 와인처럼 그 풍미가 다르다. 보통은 3년 된 것을 마신다. 랑비크가 독특하긴 하지만 벨기에 맥주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건 에일(Ale)이다. 에일의 전통이 강한 것으로 따지면 영국과 아일랜드도 빠지진 않겠지만 벨기에와 비교해보면 약간 다르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에일은 낮은 강도의 드라프트 에일이 주종이라면, 벨기에는 알코올 함량이 높은 것을 중심으로 그 범위가 넓고 병맥주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맥주 스타일 면에서 영국 쪽은 크게 마일드(Mild)나 브라운(Brown ale), 비터(Bitter)나 페일에일(Pale ale), 포터(Porter)나 스타우트(Stout)의 3가지가 전부인 반면 벨기에는 수많은 독특한 스타일을 선사한다. 덧붙이면 마시는 방식도 다르다. 영국과 아일랜드 사람들이 맥주를 큰잔에 찰랑찰랑할 정도로 가득 담아서 단숨에 들이킨다면, 벨기에 사람들은 맥주에 맞는 잔을 잘 챙기고 맛을 음미하는 편이다.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만들고 즐기는 벨기에지만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처럼 맥주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건 순한 라거다. 그래서 맥주 한잔 달라고 하면 웨이터들은 군말 없이 라거를 들고 온다. 벨기에에선 자신이 원하는 맥주를 주문할 때 분명히 상표(Brand)를 말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맥주가 있고 그 종류에는 무슨 상표가 유명한지 알아두면 편리하다.
레페 Leffe
남부 벨기에에 건립된 레페 수도원은 1240년 그 지역에서 가장 신선한 재료를 엄선해 수도원 맥주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레페다. 중세 벨기에의 수도사들이 직접 손으로 빚어 맥주를 만들었던 양조기술과 전통이 그대로 살아있는 정통 유럽맥주. 깨끗하고 부드러운 레페 브론드와 맥아를 구워 쌉쌀한 맛이 나는 레페 브라운(흑맥주)이 있다. 브론드는 알코올 도수 6.6%, 브라운은 6.5%. 인베브(InBev)
호가든 Hoegaarden
1445년 비가르덴 지방의 수도원 문화가 최상의 밀을 생산하는 호가든 마을로 전파되면서 시작된 맥주다. 오렌지 껍질의 강렬한 신맛이 뚜렷하게 느껴지며, 매력적인 향신료를 떠올리게 한다. 끝맛은 씁쓸하면서 시고, 약간의 과일 향도 난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바(Bar)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알코올 도수 4.8%. 인베브(Inb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