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융(圓融)과 소통, 배려의 땅
권 녕 하 편집주간
수필(隨筆)이 여자 이름이라면~ 참으로 곰살궂다. 남자 이름이라 해도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그게 그거’라는 말이다. 이렇게 오지랖이 넉넉하고 편안한 문학 장르가 또 있을까.
필자는 요즘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글을 쓸 때 압운(押韻)하기가 귀찮아지고 매사 게을러졌다. 생각하기도 싫어졌다. 손가락이 하자는 대로 줄줄 끌려간다. 글 쓰는 품새가 꼭 칼질하듯 휘둘러댄다. 무인(武人)이 등장하는, 인기 있는 TV 드라마를 즐겨본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칼럼, 신문기사를 자주 써서 그런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온통 ‘육하원칙’이 꽉 차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물 흐르듯 막힘없이, 거침없이, 좋은 글 쓰겠다는 욕심은 있어서, 노트북 바탕화면에 글 제목만 가득 올려놓고 있다. 게으르고 거칠어진 원인을 스스로 알려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겠지만, 알고 싶지도 않고 알아도 소용없다.
문화(文化)는 강물과 같다. 낮은 곳을 향하여 쉼 없이 흘러간다. 제 몸 스스로 움직이며 수준(水準)을 맞추려는 듯 꿈틀거리며 움직인다. 그래서 그 행태(行態)가 꼭 생명체 같다. 그 성품은 유순하고 가정교육 반듯하게 잘 받은, 청소년처럼 활기차다. 순리를 어기거나 거슬러 오르는 법이 없다.
문화는 석간수(石間水)처럼 귀(貴)하다고 졸졸대지도 않는다. 구차하지도 않다. 넉넉하다. 그렇다고 호수처럼 고요하거나 폭포처럼 압도적이지도 않다. 마치, 새벽녘 빗소리처럼 한 낮 다듬이 방망이 소리처럼,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와 마음을 젖게 만든다. 유장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거침이 없다.
문화는 문명(文明)의 얼굴로 다가와 생활 관습(慣習) 혹은 전통(傳統)으로 정착한다. 철로(鐵路)가 산맥의 정기를 끊어놓는다고 유림(儒林)에서 결사반대하던 시절이 1백년도 안됐다. 그러나 오늘날 “기차(汽車)”는 “고향(故鄕)”과 동의어(同意語)다.
문화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희로애락을 나누며,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매개체 혹은 숙주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인간의 문화적 행적, 족적의 기록이다. 따라서 문화, 문명, 신화(神話), 전통, 역사 등 사람의 감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용어(用語)의 함축된 뜻은, 그 용례(用例)에 따라 ‘동의어’거나 이종사촌지간이다.
우리 땅에 들어 온 종교(宗敎) 또한 지극히 문화적이고 인간적이다. 불교(佛敎)가 우리 땅에 전래(傳來)된 것은, 달마가 동쪽으로 왔기 때문도 아니고, 잃어버린 짚신(샌달) 한 짝 찾으려고 달마가 방랑했던 탓도 아니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문명권에서 문화형태를 띠고 건너 왔기 때문이다. 불교는 삼국시대 이래 지배계층의 통치수단으로 적극 활용되었다. 민족 고유의 무속(巫俗)과 도교(道敎) 성향의 신선사상(神仙思想)과 원융(圓融), 융합, 소통하면서 국가와 민족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민족종교로 자리 잡았다.
유교(儒敎)는 정치 개혁을 목표로 삼은 고려 말, 신진세력의 통치수단으로 적극 활용됐다. 조선시대 5백여년에 걸쳐, 관혼상제 습속까지 완벽하게 정착시켰을 정도로 성리학적 사상과 철학, 세계관이 우리 땅에서 생활관습으로 화려하게 꽃 피웠다. 오늘날, 선비정신으로 일컫는 사대부의 정신과 사유(思惟)세계는 서양의 근대철학을 능가할 정도로 글로벌 철학이며 아름답기조차 하다. 아울러 유(儒), 불(佛), 선(仙)이 절묘하게 융합, 소통하며 민중의 마음속에 터를 잡는다.
기독교(基督敎) 또한 개화기 이후, 일제 식민시대를 끝내고 해방됐지만, 좌익(左翼) 사상에 물 들은 북한의 남침으로 끝내는, 동족(同族)을 죽이고 죽이는 전쟁, “6.25 남침” 비극과 가난을 감내하고 있을 때, 서구의 문물과 과학문명이 거침없이 이 땅에 들어와 -매력적으로- 새로운 문화의 형태로 스스럼없이 자리 잡는다. 여기에서, 일제 식민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인지하는 서구사상은 ‘일제스타일’이지 필자가 말하는 ‘서구사상’이 절대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도록 작동한, 기독교 사상에 바탕을 둔 서구의 문화적 역량과 역동성에 찬탄을 보내며, 고마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자유, 민주, 인본주의 사상은 21세기 지구에서 최상의 도덕률(道德律)이다.
유(儒), 불(佛), 선(仙)이 터 잡은 우리 땅에 생소한 외래 문명, 기독교 문화예술이, 어쩌면 이렇게 순조롭게 접목될 수 있었을까. 이 땅을 지키고 살아왔던 우리의 조상, 이 땅의 원주민(原住民)들은 밸도 없이 선진 외래문화라면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던 것일까. 사실은,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적극 수용했다고 해야 옳다.
조선조 정조(22대/1752~1800) 치세에 꽃피운 실학사상(實學思想)은 서구의 과학문명에 눈 뜸 뿐만 아니라 천주교(天主敎)와의 조우(遭遇)다. 조선의 조상숭배 등 관습과의 마찰로 수많은 순교자를 양산하지만, 도도하게 강물처럼 흘러드는 문화적 역량에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젖어든다.
우리 민족은 이같이 능동적이고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반면, 씨족사회적인 배타성과 지도층의 편협함에 기인한 지역간, 계층간의 불신도 만만치 않다. 이는 한정된 국토와 열악한 생산성으로 인한 잉여물자의 부족이 불화와 배타성의 근원이 됨직한데~ ‘기마, 유목생활’에서 체득한 활달한 정신과 ‘농경생활’에서 체득한 생활방식 차이로 설명해도 무리가 없다.
이 두 가지 원천적 요소는,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육신에 접목, 융합, 소통되는 과정에서 그 결과치가 ‘다혈질적’이거나 ‘순종적’이거나 ‘홧병’을 앓거나 ‘한’스럽거나 ‘고집’스럽거나 ‘간신’기질이거나 하여, ‘충성’과 ‘반역’이 늘 충돌하고 화합하는 “운명적인 땅”에서 “숙명적인 민족성”이 생성되듯 단 한 곳도 비슷한 곳이 없는 “지역적 특성”을 잘 보존하게 된다.
지극히 다양한 것은 그럴수록 더욱 단순하게 보였는지, 역외(域外)인 들이 우리 민족에게 붙여준 호칭이 ‘단일민족’, ‘백의민족’이다. 단일, 백의 등의 용어 사용에 이론을 제기하는 연구논문도 많지만, 억지로 입었든 스스로 걸쳤든 ‘그게 그거’이고, 허탈한 마음 스스로 달래려고 ‘오지랖’이고, 이제 그만 다투라고 원융, 소통인 것이다. 오죽하면 서기 670년대부터 이미 의상대사께서 원융(圓融)을 설파했을까.
끝으로, 지구상 모든 종교가 이 땅에 들어와서 융합, 소통하고 있다. 단 하나 ‘아편’같은 사상은 우리 민족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좌, 우, 남, 북, 전라도, 경상도를 갈라놓더니, 약발이 떨어져 가는지~ 상위 1~3%와 국민 사이를 또 갈라놓기 시작했다. 정치지도자라는 것들이 우리 민족이 발전하려면, “융합, 소통”하라고 ‘가르치고 이끌고’ 해야지 나 원 참! 못 난 것들 같으니. 싸움이나 붙이고. 문화, 예술인들이 그들의 말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고 있다. 그 순간, 그들의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종속(從屬)”되는 것이다. 몹쓸 사상의 선전선동 도구로 전락(轉落)하게 되는 것이다. 얼음판에서 힘 쓰다가 미끌어져, 허~연 콧김 내뿜으며 버둥대던 소(牛)가, 기가막혀 웃고 말겠다.
이런 현상을 보이고 있는 작금의 우리나라. 강물처럼, 낮은 곳으로 스스로 흘러가는 문화의 강물, 민족의 미래를 펼쳐나갈 생명의 새 물결을 보게 될 ‘그 날’과 ‘그 이’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