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에게 친구가 있을 때 항상 술이 있었다
박정근 (문학박사, 소설가, 드라마작가, 윌더니스 문학 발행인)

요즘 한국 가정에서 주당파는 집에서 그리 환영을 받지 못한다. 필자의 아내도 더 바랄 것이 없는데 술을 너무 마시는 것이 문제라고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주위에 친구가 많고 만나면 의당 술을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다. 건강을 위해서 술을 끊으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리라. 하지만 건강은 신체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인간의 건강은 상당부분 정신과 관련이 되어있다.
신문지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고독사, 자살 행위는 개인과 친구, 더 나아가 사회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술을 어떻게 다스리는 것이 문제이지 술을 마시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설득하곤 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서 친구를 사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친구를 사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만 그런 삶은 고독하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스트레스와 다양한 문제들을 풀어가기 위해서 친구의 조언이나 위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친구가 좋을까. 필자는 친구로서 완벽한 사람보다는 편안한 사람이 좋다고 생각한다. 편안한 사람은 무결점의 완벽성보다 적당한 흠이 있어 다른 사람의 흠도 관대하게 봐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편안한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술잔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즐길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이나 어려움을 펼쳐놓고 친구에게 털어놓으면 그 자체가 마음을 괴롭히는 스트레스를 풀어주게 한다.
도연명은 술과 친구의 관계를 수전시상(酬丁柴桑:유시상의 증시에 감사하며)에서 시로 노래한다. 작품 속의 화자는 친구를 만나 교유하는 것을 무엇보다 즐거워한다. 즐거움의 배후에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있었으리라. 대화에는 긍정적 이야기와 부정적인 이야기가 함께 녹아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이야기조차도 듣는 친구에게 아픈 가시가 들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친구의 지적은 즐겁게 들을 수 있다. 여기에 분위기를 맞추어주는 술이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술은 화자의 마음을 더 터놓게 하고 친구에 대해 더욱 관대하게 만든다. 대화의 즐거움은 술을 거나하게 마시게 하여 얼큰하게 취하게 한다.
대화의 즐거움은 모임이 파하고 헤어진다고 멈추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는데도 친구와 나누었던 정담들이 가슴에 남아있다. 친구와 함께 마신 술기운의 여운이 정담들을 달콤하게 되새기게 한다. 도연명의 시속의 화자는 친구와의 만남을 영탄조로 마음껏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放 歡 一 遇, 일단 만나면 실컷 즐거워하고
旣 醉 還 休. 얼큰해지면 돌아가 쉬었네
實 欣 心 期, 서로 마음이 맞으면 진정으로 즐거워
方從我遊. 기꺼이 나와 교유하였네
도연명은 친구와 술에 관한 시는 답방참군(答龐參軍:방참군의 증시에 답하여)로 연결된다. 그는 덕이 많은 친구를 그리워한다. 친구가 베푸는 덕의 향기가 달콤하게 풍겨와 그리워진다고 고백한다.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술에 대한 욕망으로 발전한다.
필자도 술을 좋아하지만 혼 술은 거의 하지 않는다. 역시 술은 친구와 함께 마셔야 맛이 나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맥주가 몇 달 박혀있어도 그쪽으로 손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술은 친구와 만나 교유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버리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연명도 이런 점에서 필자와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의 시 1-4행에서 친구와 술에 대한 마음을 담백하게 노래하고 있다. 좋은 술이 있다면 어느 누구보다도 후덕한 친구와 즐기고 싶다는 것이다.
伊余懷人, 내가 그리워하는 이가 있나니
欣德孜孜. 덕행을 좋아해 부지런히 베푸네.
我有旨酒, 나에게 맛있는 술이 있으면
與汝樂之. 그대와 함께 술을 즐기리라
도연명은 친구에 대한 바람을 작품 속에 형상화한다. 친구란 서로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그가 즐기는 취향이 시작이니 시속에 사랑하는 친구를 그리고자 한다.
친구는 별도의 개별자로 떨어져 있지만 심적으로는 항상 함께 하고 싶은 분신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그런 친구 관계를 콘피당트(confidant)라고 부른다. 셰익스피어 비극〈햄릿〉에서 햄릿과 호레시오를 콘피당트라고 분류할 수 있다. 그들은 어떤 비밀도 서로 나눌 수 있는 친구이며 심지어 죽음의 길도 같이 가려고 하는 친구이다.
햄릿은 부친의 살해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고 복수의 계획을 호레시오에게 털어놓는다. 호레시오는 햄릿이 결투를 하다 칼에 묻은 독으로 죽어가자 햄릿을 따라 독을 마시고 죽으려고 한다.
하지만 햄릿은 자신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제대로 되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하며 말린다. 도연명이 노래하는 친구란 그토록 돈독한 존재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못 보면 그리워하는 것이다.
乃陳好言, 좋은 이야기를 터놓고 나누고
乃著新詩. 새로운 시를 지었나니
一日不見, 하루만 보지 못해도
如何不思. 어찌 그립지 않겠는가.
필자는 도연명이 줄기차게 쓰고 있는 음주시를 읽으면서 친구와 술은 인간에게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많은 음주시를 쓰면서 술을 함께 마시는 이웃, 친구, 동료 등을 등장시킨다. 그것은 시인이 일상적으로 친구를 만나고 그와 술을 마시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술이란 인간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수도 있고 최악의 독이 될 수도 있다. 독이 아닌 선물로서의 술을 만드는 것은 역시 인간의 능력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