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담 술을 거르다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 마다/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아마 주당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가 있다면 박목월의 <나그네>가 아닌가 여겨진다.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 놀’이란 구절만 들어도 마음은 이미 어느 목로주점에 가 있지 않을까.
하물며 정성껏 빚은 술을 거르는데 참석할 수 있다면 주당으로서 불원천리 마다하겠는가. 지난 5월 초하룻날, 본지에 ‘미담아줌마의 전통주 입문기’를 연재하고 있는 조미담 대표가 석탄주를 비롯해서 몇 가지 술을 거르려고 하는데 참석이 가능한가를 물어왔다.
무조건 “OK”
새벽부터 여행채비를 하고 홍천행 버스에 오른다. 조미담 대표의 술도가는 홍천경찰서 사격장 인근에 있었다. 여느 술도가처럼 그럴싸한 건물은 아니지만 지형적으로 봐선 명당자리처럼 보였다.
기자보다 부지런을 떤 조미담 대표의 문하생들이 몇 명 와있었다. 서울, 천안 등지에서 전통주가 좋아 새벽길을 재촉한 사람들이란다. 좀 있으려니 이방인들도 당도 했다. 9년 전 호주에서 한국의 전통주가 좋아서 방한했다가 그 대로 눌러 사는 쥴리아 멜로와 다니엘이었다. 이들은 전통주 행사엔 거의 빠지지 않는 전통주 마니아들이다.
숙성 실에서 4개월에서 6개월 동안 익어가던 석탄주며 송화주, 연엽주를 개봉하여 술을 거른다.
술을 거르는 사람들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즐겁다. 술독에서 잘 익은 걸쭉한 원주를 퍼서 베자루에 넣고 거른다. 술향이 진동한다. 마시지 않아도 취기가 돌 정도다.
이날 석탄주, 송화주, 연엽주 각 여섯 항아리씩 모두 18개 항아리의 술을 걸렀는데 색깔은 제각각이다. 석탄주는 우윳빛 같고, 송화주는 연 노란 색이며 연엽주는 갓 빻은 보리쌀 색깔이다.
색깔이야 어떻든 간에 막 거른 술 한 잔을 한 모금 먹는다. 코끝으로 들어오는 향부터가 다르다. 청주를 떠내지 않은 원주의 도수는 평균 17~18도. 조미담 대표가 권 하는 몇 잔의 술이 목줄기를 타고 넘으니 온 세상이 내 것만 같아진다. 참!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우리의 술이 주는 매력이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