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배우기

김 여사의 술 이야기

 

술 배우기

김 경 녀(도로교통공단 방송관리처장)

 

직장생활 20년이 넘도록 저는 술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종종 제게 술을 권하던 사람들에게 못 마신다고 하면 영~ 믿지 않는 눈초리로 내숭 떨지 말란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한잔 술로 흥겹게 잘도 어우러지는 사람들을 보며 부럽기도 했고, 만일 술과 담배를 할 줄 알았다면 내 삶이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먼저 술부터 배우기로 했는데 술친구로는 아들을 택했습니다. 왜냐면, 재수를 하던 아들도 술엔 젬병이어서, 간혹 술자리를 하고 오면 있는 대로 널브러져선 “엄마, 전 술이 저주스러워요…”라며 하소연을 하곤 했거든요.

저녁마다 모듬꼬치를 포장해 와서 설중매 한 병씩을 나눠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아들과 함께 공부(?)한 술이 10년쯤 되었네요. 술이 저주스럽다던 아들은 해병대까지 다녀오면서 완전 말술이 되었고, 전 아직 소주와 맥주는 별로지만 13~16도 사이의 술들은 한 병 정도 거뜬히 해냅니다.

 

그래서 제 삶이 더욱 다양하고 풍부해졌냐고요?

글쎄요, 음… 네, 그런 것 같아요. 어느 정도.

회식자리에도 부담 없이 낄 수 있고, 초면인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사양하다 내숭떤다는 오해를 받을 일도 없어졌으니까요.

 

얼마 전부턴 막걸리가 더 좋아져서 웬만하면 막걸리를 마십니다.

처음엔 장수막걸리가 제일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원주에 와보니 치악산막걸리가 훠~얼씬 맛나네요.

특히 홍초를 10%쯤 섞어서 와인 잔에 따라놓으면 마치 딸기쉐이크처럼 고운 분홍빛 홍초막걸리가 된답니다.

 

올해 초부턴 원주에 있는 본부로 발령 받아 홀로 사택에서 지내면서 혼 술도 종종 하는데요, 그것도 참 재미가 쏠쏠합니다.

30년 넘게 저녁 끼니 걱정과 함께 퇴근을 했었는데 반찬 고민도, 김치 담을 숙제도 없이 홀가분하게 퇴근해서, 배달시킨 생선찜에 홍초막걸리 한 사발을 야금야금 아껴가며 들이키는 여유라니~

 

참, 노란 양은 막걸리 사발도 샀어요.

막걸리는 왠지 색이 살짝 벗겨지고 약간씩 찌그러진 양은 사발이 제격이라 서요. 혼 술은 막걸리 두 사발이 딱이죠.

오늘도 그렇게 홍초막걸리 두 잔을 마시고 이 글을 씁니다. 술 배우기를 참 잘 했다 이러면서요.

이렇게 약간은 알딸딸한 기분으로 하릴없이 깊어가는 만추의 밤, 오늘은 술얘기를 해서 그런가! 어쩐지 술이 쫌 땡기는데….

저랑 한 잔 더 하실래요?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