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의 술 이야기 10
<어느 날 여고시절(終)>
‘술’ 이란 정체불명의 액체에 제 몸을 저당 잡히긴 했어도 저의 의식만은 그날, 바다를 엎어 놓은 듯 투명하고, 푸른 밤하늘에 총총히 박혀 반짝거리던 별빛처럼 명징하였다는 것이 결코 과장이나 거짓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소주에 잠겨 어른대는 눈으로 바라보았던 그날 밤 생활관의 아름다운 풍경을, 저는 고스란히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얀 외등 불빛이 열두 폭 치마처럼 곱게 펼쳐진 뜰에는 잔디가 촉촉한 이슬을 덮은 채 나부죽 엎드려 잠들어 있었고, 그 외등 불빛을 사모한 날벌레들은 제 몸을 던지고는, 긴 꼬리 같은 불빛을 드리우고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쳐 타다 남은 날개를 퍼덕이며 숨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또, 생활관을 빙 둘러 울타리처럼 서 있던 잣나무와 밤나무 그리고 상수리나무, 나무, 나무는, 처음 마셔 보는 술 탓인지 몸도 마음도 제 설움에 겨워 젖어 가는 열여덟 살 계집아이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어린 누이를 보살펴 주는 키 큰 오빠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우뚝우뚝 서 있었습니다.
너무나 맛이 없어 마치 싸움하듯 마시던 술도 다 떨어지고 뱃속은 뜨거운 주전자를 품고 앉은 것 마냥 후끈후끈 좌충우돌 부대꼈으므로, 저는 무엇이든 아주 시원한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몇 번인가 “들어가 자라”는 제 말을 “괜찮아요….”라는 작지만 완강한 말로 자르며
끝내 가지 않고 옆에 있던 그 후배에게 수영장엘 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흙과 돌로 대충대충 만들어진 비탈길 계단을 둘이 부여잡고 기다시피 내려가서는, 수영장을 채운 차디찬 계곡물에 다리를 내려뜨리고 걸터앉아, 그 낯선 후배가 아주 어른스럽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詩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묵묵히 들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저는 그 아이의 목소리와 수영장을 채운 물이 밤바람에 약간씩 몸을 뒤채는 소리, 그리고 간단없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잠깐잠깐 혼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저를 눈치 챘는지 그 후배는 저를 일으켰고, 저는 그 아이에게 의지해 방으로 돌아와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알코올로 난자당한 쓰라린 속을 부여안고 잠에서 깨었을 때, 지난 밤 제가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곤 기가 막혀 그만 돌아가실 지경이었습니다.
정작 큰일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다 기억이 나는데, 오로지 그 후배의 얼굴만이 지우개로 지운 듯 하얀 백지로 남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배를 얼른 찾아내, 제가 술 마신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해야 할 터인데, 도대체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으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깨질 것만 같은 머리를 가까스로 받쳐 들고 식당으로 가서 면면을 살펴보았지만, 어느 얼굴에서도 지난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저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어쩌지, 개학만 하면… 편집반장이 수련회 가서 밤새 술 마셨단 소문이 짜하고 나겠구나…가벼워야 무기정학이겠지….”
3박4일 내내 수학선생님의 시선이 미치는 사정거리를 피해 다니는 것만도 버거워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게다가 술 사건까지 겹친 바람에 저는 그만 초죽음이 되어 수련회에서 돌아왔습니다.
시름에 잠겨 보낸 방학. 그리고 개학.
저는 수학선생님을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아주 난감한 한편 무엇보다도 술 마신 소문이 날까봐 친구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였습니다.
“도대체 어쩌자고 술 마실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고 후회스러워서, 저는 제 발등이라도 찧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렇게 더 깊은 사연까지 알 리 없는 친구는, 고민하는 저를 진심으로 위로하며 무조건 수학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말라고 우정 어린 충고를 해주었는데, 당장은 술 소문에 집착한 나머지 수학선생님은 잠시 열외가 되어버렸을 정도로 제 마음고생은 극심했습니다.
그러나 한 주, 두 주가 지나도 술 이야기는 전혀 없었고,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사려 깊고, 무거운 입을 가진 그 후배가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술 소문에 대한 걱정이 차츰 잦아들면서, 수학선생님과 저 사이의 보이지 않는 첨예한 신경전은 다시금 제 의식에서 표면화되었는데, 단순히 장난이었음을 고백하고 사과까지 했건만, 여전히 마음을 풀지 못하고, 저를 외면하는 그가 정말 밉고 졸렬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개학한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아 다소 시끄러운 선생님들 간의 알력을 우리도 눈치 챌 때쯤 수학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시게 되었고, 저는 아주 손쉽고 간단하게 고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뒤에 찾아온 허탈함….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렴풋이 느낀 남자들의 속성(?)
어쨌거나 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편집 반을 들락거렸고 철커덕거리며 돌아가는 인쇄기 소리에, 교정을 보면서도 기차를 타고 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하던 작고 초라한 인쇄소에서의 춥고 배고팠던 겨울방학.
채 마르지 않아 기름 냄새에 잉크가 묻어나는 교정지를 들여다보며 하나의 誤字를 발견해냈을 때의 기쁨은, 아마도 심마니의 그것에 못지않았을 것입니다.
조르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천신만고 끝에 우리가 주물러 터뜨린 교지가 음전한 모습으로 제 손바닥 위에 묵직한 무게와 함께 얹히던 순간의 희열은 지금도, 아니, 죽을 때까지도 잊을 수 없을 제 여고 시절의 최고봉이었습니다.
그리고 고 3. 편집반은 후배들에게 물려주었지만, 더러 한 번씩 들르곤 하였는데 어느 날 저는, 느닷없이 귀에 와 꽂히는 목소리 하나를 듣게 되었습니다.
흘깃 소리 나는 쪽을 보니 약간 가무잡잡한 안색에 짙은 눈썹 때문일까 어두운 눈빛을 한 낯선 얼굴. 얼굴은 몰라도 그 깊은 눈빛과 나지막한 음성은 분명 귀에 익은 것이어서 저도 모르는 새 기억을 더듬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명료해지는 머리. 순간적으로 제가 술 마신 밤을 함께해 주었던 후배의 목소리와 몹시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른 후배들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그 후배는 문예반에 속해 있다가 편집반으로 왔으며 시를 아주 잘 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사를 나눈 후에도 그 후배는 끝내 그날 밤의 사건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지 않았고, 그 태도 때문에 저 역시 섣불리 묻지 못했습니다.
꼭 한번은 물어보리라 다짐을 했지만, 늘 있는 듯 없는 듯한 그 아이의 모습만 쳐다보다
결국 그런 기회를 만들지 못한 채 졸업을 하고 몇 해인지 모를 시간이 흐른 후, 편집반 선생님이셨던 분에게 그 후배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S대 국어국문과에 입학했던 그 후배는 결혼 후 번역으로 생계를 잇다가, 아직 창창한 30대 초반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가슴 한 귀퉁이가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도 후배이니 언젠간 만나 웃으며 그날 밤을 이야기할 수 있을 터이고 그때가 되면, 철없는 선배를 밤새 지켜 주고, 자존심까지 감싸준 사려 깊은 그 아이에게 마음의 빚을 갚아야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그렇게 가버리다니…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깊고 어두웠던 눈빛과 적은 말수, 낮은 목소리는 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던 고뇌로 빚어진 것이었던가 봅니다.
그러나 지금도 아픔과 당당히 맞서 싸워내지 못하고, 결국 제 자신을 버리는 일로 승부를 포기해버린 그 후배가 참으로 아깝고 아깝습니다.
4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여고생들을 보면 그해 여름 ‘러브 레터’와 ‘소주’가 저절로 떠오르고, 그와 동시에 쏴아~ 하며 저 밑바닥부터 가슴이 아파 옵니다.
사실 그 후배의 입으로 직접 확인을 한 것도 아니건만, 왜 그 아이가 그날 밤을 같이 했을 거라 이처럼 믿고 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의 심증과 더불어, 아직 유치한 소녀취향으로 흐르기 잘하는 제 감정이, 그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생을 마감시켰다는 데 집착하여 신파조의 소설을 쓰는 걸까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날 밤, 깊은 눈빛과 낮으면서도 단호했던 목소리를 제가 본능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일 겁니다.
‘커다란 강산에 거미가 집을 짓는다…’
그 아이가 생전에 썼던 詩 중 20년 동안이나 제 머리 속에 잊혀지지 않고 오래 맴도는
이 한 구절, 그 아이는 자신이 지었던 시처럼…. 커다란 강산에 거미처럼 고독하게 혼자 집을 짓고 있을까요?
…………… 디 엔드~
——- Let me see
필자
김경녀 (도로교통공단 제주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