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절도사가 즐겨 마신 ‘병영소주’ ‘병영설성사또’ 복원돼 인기

영원한 청년 병영양조 金涀植 대표

병마절도사가 즐겨 마신 ‘병영소주’ ‘병영설성사또’ 복원돼 인기

병영양조, 대통령표창 등 200번 넘는 수상, 세계 대회서도 수상

 

김현식 대표는 자식만큼이나 술을 사랑한다. 늘 술의 상태를 점검하고 돌봐준다. 그래야만 맛좋은 술을 빚어낼 수 있다고 했다.

여행지로 호남지방만한 곳도 드물다. 조선조에 남도(南道)라 함은 ‘왕성이 있는 경기이남’을 의미하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호남지방(湖南地方)을 남도로 부를 때도 많다. 왜일까? 기자의 얕은 생각으론 그 곳에 가면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한가한 관광길이 아니고 취재길이지만 남도로 길을 떠날 때는 가슴이 설렌다. 마치 머~언 소풍 길을 떠나는 학생 때처럼 말이다. 게다가 양조장을 찾아가는 길이 아닌가.

서울 하늘은 미세먼지로 정말 뿌옇다. 서울에서 5시간여를 달려서 만난 남도의 하늘은 서울 하늘과는 천연지차(天淵之差)다. 강진군 병영면의 공기는 시원하고 달았다.

“그러다 본께 술 맹드는 것만은 자신 있어요”

우리나라 양조장은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양조장이 대부분인데 조금 특이하게도 병영양조장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생겨난 양조장이다. 당시 김 대표의 친척형님이 누룩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가 1946년 이 곳에 병영양조장을 설립했다고 한다.

김 대표의 사무실과 강의실에는 200여점이 넘는 상패와 상장이 걸려 있다. 김 대표가 그 동안 걸어온 흔적이 고스란히 상장 속에 녹아 있다.

처음 김 대표를 대했을 때(사전에 82세란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생각보단 훨씬 젊어 보여 놀랐다. 82세란 나이는 결코 적지 않은 연세인데도 불구하고 몇 시간 함께 보내면서 느낀 생각은 중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신체적인 것도 그랬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청년의 생각이었다.

1957년, 장흥이 고향인 김견식 대표는 가난한 살림에 호구지책으로 18세의 나이에 친척형님이 운영하던 병영양조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군대갔다온 것을 빼고는 외곬으로 술만 빚기를 6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 본께 술 맹드는 것만은 자신 있어요”

술 빚기를 한 평생 해온 김 대표는 술에 대해선 도사일 것 같고, 술도 잘 마실 것 같아 주량을 물었다.

“술은 못합니다.” 헐! 양조장 대표가 술을 못하다니….

“술을 마시는 모임에 가면 ‘술도 못하는 사람이 빚는 술이 맛이 있겠느냐’는 놀림을 당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우리 술만 마십니다. 그래서 ‘왜 우리 술만 마시느냐’고 물으면 병영 술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 대표가 술을 못 마시는 이유는 이런 이유에서다. 술을 빚을 때는 항상 옆에 붙어서 술 익는 상태를 살펴봐야 하는데 술 마시며 시간을 빼앗기다 보면 그렇게 할 수 없어 좋은 술을 뽑아낼 수도 없어서 그렇고, 몸에서 술을 잘 받지 못하는데도 이유가 있다고 했다.

뒤 늦게 받은 명인인증이지만 자부심 느껴

김견식 대표는 언젠가 TV인터뷰에서 “명인(인증)을 받기 전에는 내가 죽은 이후라도 명인이라고 들을 정도로 정성들여서 술을 만들어야겠다”면서 술 빚는 일에 더욱 정진하겠다고 했다.

김견식 명인(우)과 그의 장남이자 전수자인 김영희 씨가 보리 고두밥을 식히고 있는 장면을 방송국에서 촬영하고 있다.

술이 인생의 전부였던 김견식 대표는 드디어 2014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식품명인지정서(61호)’를 받았다. 명인 전수자로 그의 장남 김영희씨가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도 벌써 아버지 밑에서 술을 빚은 지 28년이 되어간다.

기자에게 김 명인은 “아들이 나보다 더 술을 잘 빚는다”면서 “지금 당장 (내가)손을 떼도 명주를 빚는 데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1960년대 1공장에 세워진 굴뚝. 지금은 병영의 상징물이 되고 있다.
병영양조는 1공장에서는 소주와 일본 수출품을, 2공장에서는 막걸리를 생산한다. 사진은 2공장 전경.

명인이 되기 전 김 대표는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왔다. 그의 사무실과 강의실에는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서 2012년에는 ‘우리 술 품평회’에서 ‘병영설성사또’로 대상을 받는 등 크고 작은 상을 수없이 받았다. 상장과 상패가 수도 없이 많아서 몇 번이나 수상했느냐는 질문에 “자세히 세워 보지는 않았지만 한 200여 번은 넘을 것 같다”고 했다.

상은 떡 놀라주듯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타의 모범이 되고 우수성이 인정되어야만 한다. 이는 다시 말해서 병영양조장이 빚어내는 술이 그 만큼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특히 우수 전통주 생산과 전수(傳授)에 힘써오고 있는 김견식 대표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6농업인의 날’ 대통령상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좋은 술은 좋은 재료와 정성에서 나온다

술은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여기에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있는 효모들과 마음을 나눠 온 세월의 결정체다. 이른바 술의 삼위일체인 물, 누룩, 쌀이 장인의 손길을 걸치면서 맛있는 술이 태어난다.

상압식과 감압식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소주 내리는 증류기.
오크통에서 1년 이상 숙성되고 있는 병영설성사또주.

전라병영성 근처에 사또(병마절도사)들만 사용하는 사또샘 또는 어사샘이 있다. 병영성 내에는 9개의 우물이 있었는데 사또샘은 물맛이 좋아 평소 자물쇠를 잠가놓고 사또들만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 물의 원천인 수인산 자락의 물을 사용하는 병영양조장은 지하 120m에서 끌어 올려 사용한다. 수인산(562m) 자락이어서 물맛이 좋고, 강진일대에서 생산하는 햅쌀 유기농과 일반미를 사용한다. 술의 첫째 조건인 물맛이 좋지만 몇 단계로 휠터링을 거쳐 사용한다고 한다.

김견식 대표가 2001년 야심차게 개발한 첫 전통주가 ‘청세주(靑世酒)’다. ‘세상을 푸르게 하는 술’이란 뜻으로, 전통방식으로 쌀을 발효시켜 만들어낸 병영양조만의 약주이다. 보통 약주는 알코올 함량이 12~13%인데 비해 청세주는 18%다. 이는 특별한 기술과 숙련도가 있어야만 가능한 술이다. 청세주는 국내산 햅쌀을 전통방식으로 발효시켜 여과와 살균처리 과정을 거쳐 오랜 시간 숙성시켰으며 산수유, 더덕, 오디를 첨가해 옅은 녹차 빛을 띠면서도 향이 은은하고 숙취부담이 없다. 1년 이상 두어도 변하지 않을 정도로 유통기한도 길다. 기존 소주의 맛과 차이가 거의 없으면서 우리 쌀로 만들어낸 전통주라는 인식이 퍼져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병영양조의 또 다른 인기브랜드는 ‘병영소주’와 ‘병영설성사또’이다. 조선시대 병마절도사(사또)들이 즐겨 마셨다는 ‘병영소주’는 보리를 주원료로 하여 빚은 증류식 소주이며, ‘병영설성사또’는 쌀을 주원료로 하여 빚은 일반증류주로 숙성과정 중 오디와 복분자를 침출하여 천연의 향과 자연의 색을 갖춘 명주이다. 이 술들은 장기간의 숙성과정을 거친 완숙주로 향기가 은은하고 알코올 도수가 40도이지만 목넘김이 부드럽고 뒷날 숙취가 없는 병영양조만의 기술로 만들어진 고급주이다.

현재 병영양조는 18도 27도 30도 40도 증류식 소주면허를 가지고 있지만 40도 소주만 생산한다. 막걸리는 병영설성生쌀막걸리, 설성동동주, 설성만월(국내 첫 유기농쌀 막걸리)를 출하하고 있는데 인기가 높아 한번 마셔본 사람들의 택배주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인기 높은 병영 生막걸리
일본 수출용 막걸리 한사발
청세주

“여러 양조장에서 일본으로 막걸리를 수출하고 있지만 거의가 살균 막걸리입니다. 우리 병영막걸리도 처음에는 살균해서 수출을 했는데 일본 소비자들이 한국에서 마셔본 생막걸리가 아니라고 불평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연구를 거듭한 끝에 수출 시 효모와 유산균이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2008년부터 살균을 하지 않은 생술(生酒)을 최초로 일본에 수출했습니다”

현재 월 1회 20피트 컨테이너(60일 유통, 6천ℓ)를 이용해서 일본으로 수출을 하여 일본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어떻게 생막걸리를 수출할 수 있을까. 숙성과정에서 오랜 노하우를 터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막걸리를 흔들어서 마시면 뚜껑을 열 때 솟아오르는 현상이 심한데 이는 숙성과정이 올바르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는 병마절도사가 있던 병영성(兵營城)

병영양조가 자리 잡고 있는 병영면은 1417년 조선의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는 전라병영성이 있었던 곳이며 약 500년 동안 존속되었다. 지리적으로 병영면은 주위에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에 있어 천혜의 요새 역할을 하였다. 또한, 병영성과 함께 상권이 형성되어 전라도 일대에서 중심적인 상업지역이 되었으며 개성상인과 비교되는 남부 최대 병영상인을 형성하였다. 하지만, 조선말 상업지역의 발달로 군사 병영지의 폐단이 지적되었고 1894년 동학군에 의해 병영성이 점령되면서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1656년(효종 7년)에는 우리나라에 표류한 네덜란드 상인 하멜 일행 33명이 이곳 전라병영성에서 약 7년간 억류되어 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병영면에서는 1997년 사적 지정 이후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원 작업이 시작돼 상당 부분 복원되고 있다. 길가에는 하멜기념관이 있고 풍차도 있어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예로부터 강진은 보리가 많이 나는 지역이었다. 조선시대 병마절도사가 쌀이 귀하던 시절 보리로 빚어 마셨던 소주를 김견식 대표가 복원하여 만든 술이 ‘병영소주(증류식소주, 40도)’이다. 병영소주는 우리농산물 햇보리를 주원료로 물과 전통누룩 이외에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고 전통방식으로 빚어낸 증류식 소주로, 순수한 곡주만의 깨끗한 맛으로 맑은 소주를 좋아하는 주당들에게 인기가 많다.

벨기에 국제식품품평회에서 은상:iTQi 2Star 수상

보리소주인 ‘병영 소주’는 2013년 6월 벨기에 국제주류품평회(iTQi)에서 2star를 수상했다.

iTQi는 벨기에 브뤼셀에 설립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식음료 품질 평가기관이다. iTQi의 국제품질인증마크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받을 수 있다. 특히 iTQi의 품질 평가에는 <미슐랭 가이드 Michelin guide>, <고미요 Gault-Millau>에 소개된 셰프와 소믈리에 120명이 참여해 철저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기 때문에 iTQi는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만큼 병영소주의 수상이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든든한 후원군이 있어도 김 대표는 현장에서 활동

김견식 대표는 두 아들이 가업을 잇기 위해 열심이라고 했다. 큰 아들 김영희 씨는 생산을 작은 아들은 영업 분야를 총괄하고 있고 막내딸도 서울을 오가며 아버지를 돕는다고 한다.

이런 든든한 후원군이 있어도 김 대표는 현장에서 활동한다.

“막걸리 시장의 상승세가 꾸준하지만은 않습니다. 양조장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앞으로 술의 다양성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막걸리는 한 때 한류 붐을 타고 전성기를 누렸지만 얼마 못가서 주저앉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구개발을 등한시 한 탓이다.

막걸리 학교에서 방문

김 대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상업적인 이익보다 전통주를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을 게을리 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남들에게 우리 병영 술만 최고라고 하지 않는다”면서 열심히 술을 빚으면 소비자들이 먼저 알고 찾아온다고 했다. 전국에 매일같이 택배발송을 할 정도로 병영양조의 전통술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병영양조의 밝은 미래는 곧 고향을 지키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전하는 김 대표는 “국민들이 전통주를 많이 마시면 많은 쌀을 소비하게 되므로 이는 결국 농민들을 돕는 일이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농협창고에는 재고미가 넘쳐난다. 공산품 가운데 가장 많은 쌀이 소비되는 것이 막걸리다.

병영면에서 유독 높은 벽돌 국뚝이 솟아 있는 곳이 병영양조장이다. 1960년대 만들어진 굴뚝은 당시 방카시유 열로 증류식 소주를 내릴 때 사용하던 것인데 요즘은 병영면의 상징물이 되었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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