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사랑하는 당신과의 거리
육정균 (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시인/부동산학박사)
“사랑하는 당신, 요샌 사랑이 식은 거 같아, 당신 싫다는 날 당신 없으면 못 사는 사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천리 먼 길 거리가 느껴져, 함께 있어도 너무나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것 같아 눈물만 나와….” 사랑하는, 아니 사랑했던 연인이라도 같이 있다면 함께 있는 ‘실거리’는 0m이다. 내 젊은 친구 중 요새 말로 흙수저이나 된 사람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고주망태 인생과 삶에서 오직 아는 것,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 아니 오직 사랑하는 것은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그놈의 술』이었다. 밥이 술이었던 그의 부친은 술병으로 그에게 숱한 회한과 빚만 주고, 병든 어머니, 뒷바라지가 필요한 네 동생들까지 남긴 채 소쩍새의 친구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자신도 직업을 가진 채 석사과정까지 하면서 동생들을 다 대학 공부를 시키고, 먼저 결혼시켰다. 이제 자신이 결혼하여 잘 사나 보다 했더니, 독일로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근까지 여러 해를 유럽과 한국의 먼 거리를 오가며, 어머니만을 지극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보냈다. 그의 사랑에 버금가는 내 젊은 날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울먹이며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시를 먼저 소개한다.
어머니
예비군 야간 훈련을 마지고 땀에 축 쳐져 들어왔을 때다. 어머니 맨발로 뛰어나와 내 흐르는 땀을 닦아 주셨다. 이제 어머니 텅 빈 집안만 남기고 떠나셨다. 어린 그 날처럼 어머니 쑥이며, 씀바귀, 봄나물 캐던 풀밭으로 길을 떠나셨을까? 주일날 교회당에 가서 즐겨 찬송가를 부르던 그 풍금이 있는 자리에 앉아 계시는 것일까, 밤바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불효의 후회로 갈증이 겹겹이 밀려온다. – 중략 – 육정균 시집 <아름다운 귀향> ‘어머니’ 에서
부동산학박사로서 어쩌다「부동산전문가」라고 이야기하다가 아내에게 사람이 좀 겸손해지라고 면박을 당하지만, 부동산이론을 조금 설명 드리고 싶다. 부동산에는 각 양태의 ‘거리개념’이 있다. ‘실거리’, ‘시간거리’, ‘의식거리’가 그것이다. ‘실거리’는 물리적인 거리 개념이다. “강남역에서 위성항측으로 실제거리가 100m이다”라고 이야기 할 때처럼 지점간 실측한 물리적인 거리이다. ‘시간거리’는 교통수단의 개입 등을 전제로 한다. 소위 “강남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 “강남역에서 승용차, 버스로 5분 거리”,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 까지 1시간거리”, “GTX 용인역에서 수서역까지 9분 거리” 등이 그것이다. 교통계획이나 토지이용계획을 전제로 하는 도시계획이나 부동산학에서는 물론, 부동산 실무나 매물 광고에서도 가장 많이 쓰이는 부동산학적 개념이다. ‘의식거리’는 사람의 감정이나 느낌 등 인식과 관련된 거리개념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의 교통체증은 ‘실거리’나 ‘시간거리’를 왜곡시키는 돌발변수로 개입을 막을 수도 없을 뿐더러 조정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는 서울에 사니까, 나는 수도권에 사니까” 그런 의식 속에서 사는 거지 원칙도 교통혼잡에는 속수무책이다.
이러한 ‘의식거리’는 참으로 기가 막힌다. ‘실거리’가 지구 반대편의 먼 거리로 비행기를 타고 가도, 이틀씩 걸리는 유럽을 가더라도 한시도 떨어지기 싫은 불꽃같은 사랑을 하는 연인 사이거나 위의 사연처럼 독일의 아들과 한국의 어머니 사이에서는 먼 항로가 너무나 아쉽게 가까운 1초, 아니 몇 분처럼 짧을 수밖에 없다. 즐거움과 쾌락, 그리고 절대 사랑을 수반한다면 ‘실거리’와 ‘시간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눈 깜짝할 그 사이도 사랑에 빠지기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AI자율자동차나 로봇, 사물인터넷 등이 발달하고, 인간의 감성이나 지성, 그리고 인간적인 인식의 세계를 넘나드는 세상이 오면 인간이 해 오던 수많은 일들은 인간이 만든 ‘인간형 기계’나 복제인간 등 ‘대체인간’이 대신하고 사람들은 하루 1시간, 아니 30분만 일 하고도 인생을, 삶과 술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하는 맛집을 지구촌 곳곳마다 날아다니며 먹고 즐기며, 쾌락에 젖어들고 사는 시간으로 갈 것이다. 그런 시대가 오면, 지구촌에서 세계최고의 맛집이라면 지구촌 어디서라도 찾아오고, 세계 최고의 즐거움과 쾌락, 행복을 준다면 한 달이 걸려서도 30분을 걸어온 것처럼 달려올 것이다. 반면에 싫은 사람과의 어쩔 수 없는 동행은 5분의 거리도 죽을 만치의 긴 영겁의 시간일 것이다. “내가 누구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인가? 불행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인가?” 깊이 통찰해야 할 대목이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도 짧디 짧은 인생길에서, 태어날 때 그랬듯이 죽어가면서도 저승길에 한 푼 짊어지고 갈 수 없는 재물욕심 때문에 사랑하는 형제자매와 척을 지고 원수처럼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불행 속에 빠뜨리고 본인 스스로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남에게도 스트레스의 원인제공자인 사람들이 더러 있다. 몇 천억의 자산가가 인생의 마지막 정리시기인 팔순 나이에도 더 많은 재물 욕에 빠져 사업체를 벌리고, 남을 등쳐서 남의 소중한 사업체를 약탈하고, 자신의 아들딸에게도 야박해서 생전에 상속재산 분할 소송까지 벌이며 추악하게 늙어가는 이도 있다. 허나 사는 의미는 무엇일까? 먼 길도 함께라면 가장 맛있고 즐겁고 ‘행복한 라면’처럼, 다들 맛있고 품격 있는 행복 바이러스로서 멀고도 먼 길도 너무나 사랑하는 당신과의 거리처럼 안타까움에 가까운 길이 되는 그런 삶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인생이란 삶의 긴 거리도 광활한 우주, 영겁의 세월 속에서는 1/75초의 찰나(刹那)일 것이니….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