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록담의 재현주스토리텔링 62번째 이야기
맛과 향기의 여름철 술 빚는 법
‘하숭사시절주(夏崇四時節酒) · 하숭사절주(河崇四節酒)’
<諺書酒饌方>은 필자가 최근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고서(古書)로,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서적이다. 책의 제목은 한문으로 <諺書酒饌方>이라고 하여 “언문글씨(한글)로 된 술과 음식방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諺書酒饌方>에는 39종의 주품명과 누룩류 6종, 식초류 3종, 음식(안주)류 40여종이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주품 가운데 하나가 ‘하숭의 사시절주’이다.
술을 빚는 사람이라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우리나라의 고온다습한 여름철이 술 빚기 어려운 계절이라는 것을 실감할 것이고, 어떻게 하면 계절변화에 맞추어 좋은 술을 빚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한 가지 사실은 “하숭의”는 ‘여름철에 좋은’을 뜻하고, “사시절주”는 ‘사계절 빚는 맛이 뛰어난 술’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하숭의 사시절주”라는 주품명에서 이른바 ‘모순(矛盾)을 찾아 볼 수 있다. 여름철에는 맛이나 향기가 좋은 술을 빚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떻든 <諺書酒饌方>에 수록된 ‘하숭의 사시절주’의 재현작업을 통해서 그 맛과 향기, 그리고 술 빚는 법을 찾게 되었다. <諺書酒饌方>의 ‘하숭의 사시절주’는 두 가지 방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먼저 ‘하숭의 사시절주’와 유사한 이름의 술로 <山家要錄>의 ‘하숭사절주’가 있다. <諺書酒饌方>의 ‘하숭의 사시절주’와 <山家要錄>의 ‘하숭사절주’는 매우 유사한 주방문을 보여주고 있어, 동일한 주품으로 분류하고자 하였으나, ‘하절주’와 ‘하절삼일주’처럼 주방문이 같으면서도 주품명이 다른 경우, 그 분류 기준을 주품명에 두었으므로, <山家要錄>의 ‘하숭사절주’는 ‘사절주’와는 다른 ‘여름철 사절주’로 분류하였고, <諺書酒饌方>의 ‘하숭의 사시절주’는 ‘절주’와는 다른 ‘여름철의 절주’로 분류하게 되었음을 밝혀둔다. 특히 ‘하숭의 사시절주 또 한법’은 <諺書酒饌方>의 ‘하일절주’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절주’의 한 가지 또는 ‘이법(理法)’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어떻든 <諺書酒饌方>의 ‘하숭의 사시절주’는 <山家要錄>의 ‘하숭사절주’와는 밑술 빚는 방법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山家要錄>의 ‘하숭사절주’는 밑술을 빚는 방법에서 “멥쌀 1말을 세말하여 무리떡을 찌고, 물 2병을 끓여서 차게 식힌다. 무리떡이 익었으면 퍼서 식혀 둔 물과 합하고 차게 식힌다.”고 하여 백설기를 끓여 식힌 물과 섞어 죽상태로 만들어 사용하는 반면, <諺書酒饌方>의 ‘하숭의 사시절주’는 “멥쌀 1말을 백세 작말하여 백설기떡을 찌고, 팔팔 끓는 물 3병을 백설기떡에 섞고, 고루 풀어서 덩어리진 것이 없는 죽처럼 만들어 식기를 기다린다.”고 하여 백설기와 끓는 물을 섞는다는 점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諺書酒饌方>의 ‘하숭의 사시절주’는 밑술의 쌀 양보다 덧술의 쌀 양이 적다는 것을 특징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덧술의 쌀은 그 양이 밑술의 30%에 그치고, 고두밥을 쪄서 사용하는 것으로 미루어 약간의 부드러운 감칠맛과 청주를 얻기 위한 방법에 그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숭의 사시절주’는 그 특징이 밑술 빚는 법에 있다고 하겠는데, 밑술 빚는 방법에서 끓는 물과 갓 쪄 낸 무리떡(백설기)를 합하고 덩어리가 일절 남지 않도록 풀어놓아야 한다. 물이 뜨거우므로 떡이 잘 풀어지기는 하지만, 떡덩어리가 풀리지 않은 멍우리 상태로 식게 되면 잘 삭지도 않고 독 밑에 침전되면서 골마지가 끼고 산(酸)이 올라오는 현상을 초래한다.
따라서 마치 죽 상태가 되면 곧바로 누룩과 밀가루를 섞지 말고, 죽상태의 떡이 차갑도록 완전히 냉각되기를 기다리고, 먼저 누룩과 밀가루를 한데 섞어 두었다가 죽과 합하여야 밀가루가 엉키는 일이 없다. 덧술의 고두밥도 마찬가지로 서늘하게 식기를 기다렸다가 사용하는데, 빚은 술은 서늘한 곳에 두고 발효시키고, 술덧이 끓으면 즉시 찬 곳으로 옮겨서 차게 식혀주어야 술이 시어지지 않는다. 덧술의 쌀 양이 적기 때문에 술덧의 발효가 빠르게, 그리고 품온의 상승이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숭의 사시절주 또 한 방법’은 ‘하숭의 사시절주’와는 전혀 다른 방법이다. 백설기를 쪄서 끓는 물과 섞어 빚는 방법의 불편함에서 수월한 방법을 택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쌀 양보다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하여 죽을 쑤어 밑술의 발효를 원활하게 끌고 가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덧술 방문은 <諺書酒饌方>의 ‘하일절주’와 <釀酒集>의 ‘하시절품주’, <양주방>의 ‘청명향’ 등에서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이와 같은 방문의 경우 자칫 산패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세심한 주의와 요령이 필요하다. 그 요령은 ‘하일절주’편에서 자세히 설명하였다.
◈ 하숭의 사시절쥬 <諺書酒饌方>
◇주 원료▴밑술:멥쌀 1말, 누룩 2되 5홉, 진말 5홉, 끓는 물 3병
▴덧술:멥쌀 또는 찹쌀 3되
◇술 빚는 법▴밑술:①멥쌀 1말을 백세 하여(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작말한다(가루로 빻는다).②쌀가루를 시루에 안쳐서 백설기떡을 찌고, 솥에 물 3병을 끓이다가, 떡이 익었으면 퍼내어 넓은 그릇에 담아 놓는다.③솥의 팔팔 끓는 물 3병을 백설기떡에 섞고, 고루 풀어서 덩어리진 것이 없게 하여 죽처럼 만들고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④식은 죽(백설기떡)에 좋은 누룩 2되 5홉과 진말 5홉을 섞고, 고루 치대어 술밑을 빚는다.⑤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봄과 가을에는 5일, 여름에는 3~4일, 겨울에는 6~7일간 발효시킨다.
▴덧술:①멥쌀 또는 찹쌀 3되를 백세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 건져서 물기를 뺀다.②솥에 물을 붓고 시루를 올려서 쌀을 안친 다음, 고두밥을 짓는다.③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내고, 고루 펼쳐서 가장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④고두밥에 밑술을 합하고, 고루 치대어 술밑을 빚는다.⑤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두터이 싸매어 7일간 발효시킨다.
* 주방문 말미에 “7일 만에 쓰면 청주는 3병이요, 탁주는 1동이니, 맛이 이화주 같으니라.”고 하였다.
◈ 하숭의 사시절쥬 또 한 법 <諺書酒饌方>
◇주원료▴밑술:멥쌀 5되, 누룩 2되, 물 (3병)
▴덧술:멥쌀 1말, (냉수 3~4동이)
◇술 빚는 법 ▴밑술:①멥쌀 5되를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작말한다. ②솥에 물 (3병)을 붓고 끓이다가, 물이 뜨거워지면 쌀가루를 풀어 넣고, 팔팔 끓여 죽을 쑨다. ③죽을 넓은 그릇에 퍼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④차게 식은 죽에 좋은 누룩 2되를 섞고, 고루 치대어 술밑을 빚는다. ⑤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봄과 가을, 겨울에는 4~5일, 여름에는 3일간 발효시킨다.
▴덧술:①멥쌀 1말을 백번 씻어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는다. ②고두밥이 익었으면 시루 째 떼어 ‘바조’ 위에 올려놓고, 찬물을 고루 많이 뿌려서 고두밥을 가장 차게 식힌다. ③고두밥의 물기가 빠지고 차가워졌으면, 밑술을 합하고 고루 치대어 술밑을 빚는다. ④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7일간 발효시킨다.
* 주방문 말미에 “누룩을 잘게 빻아 볕 쬐어 잡내 없앤 후에 쓰되, 독을 가장 닉은 것을 골라 연기(내) 쏘여 넣으라.”고 하였다. ‘바조’는 술짜는 틀(酒槽)을 가리킨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