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 교수의 특별기고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21)
유방을 닮은 튤립과 플루트의 잔
그녀는 24살에 굳게 닫힌 베르사유 궁전을 미모를 무기로 입성해 19년간 프랑스 루이XV세를 좌지우지 한 정부(情婦)다. 퐁파두르는 루이의 음성 높낮이에서 걸음걸이에 이르기까지 한번 척 보면 사내가 무엇에 불만이고 어떤 것에 기분이 좋아 마음이 들떠 있는지 직감했다. 천부적 정부였을까? 루이가 아무리 기분이 저조한 상태에서도 퐁파두르를 찾았다가 나갈 때는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감돌고 걸음걸이는 전장에서 대승을 거둔 장수같이 가볍다. 퐁파두르는 루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었다.
어느 날 “여보 나 왔어…!” 오늘따라 루이의 음성이 금방이라도 숨이 떨어질 듯한 음색이다. 퐁파두르는 어리광 부리는 아이를 맞듯 두 팔을 벌려 사내를 품었다. 어전 회의에서 시국에 대해 격론이 벌어졌으나 결론을 짓지 못해 마음이 찜찜했던 것이다. 그는 두 살에 부모를 여의고 증조부인 태양왕 루이 15세에 의해 5살에 보위에 올랐다. 보통 아이들 같으면 부모 앞에서 재롱을 부릴 나이다. 그러나 루이는 외견상으론 프랑스를 대표하는 왕의 역할을 해야 했다. 그는 그것이 버겁고 싫었다.
퐁파두르는 카멜레온 같은 여자이다. 나이는 루이보다 11살이나 아래지만 그녀는 사내의 마음의 행로를 처음부터 종착역까지 손금 보듯 훤히 읽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 보이면 그녀가 베란다에서 루이만을 위해 손수 재배한 양상추 샐러드에 우유 한 컵을 먹인 다음 화끈하게 섹스를 즐겨주면 왕은 기분이 풀려 콧노래를 부르며 그녀의 팔에 머리를 얹고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기분이 좋을 땐 상파뉴 포도주 한 잔에 캉탈치즈를 서둘러 먹은 다음 향연을 주도한다. 퐁파두르는 루이의 안식처다. 즐거울 때는 즐거운 대로 슬플 때는 슬픈 대로 그녀의 품에 들어가면 만사가 풀렸다.
그런데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마침 점심때다. 퐁파두르는 서둘러 음식을 대령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녀의 앞가슴이 사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늘따라 왼쪽 눈 아래 애교점이 인상적이다. 여인은 허리를 굽혀 음식을 사내 앞에 바싹 놓았다. 식탁 위에 있는 음식이 팔을 벌려 충분히 먹을 수 있는데도 여인은 사내 앞으로 바싹 놓으며 온몸에서 풍겨 나오는 장미향을 루이에게 풍겼다.
“오늘 양상추는 유독 신선하고 맛이 있소이다! 당신 음식 솜씨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야!” 루이는 간단히 점심을 먹고는 퐁파두르의 표정을 살폈다. 다음 순서로 들어가자는 신호다. 여인은 언제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커튼을 올리자 황금빛 햇살이 핑크빛 장미가 활짝 핀 무늬가 아름답게 장식된 포테이으(팔걸이 있는 의자) 한 쌍이 화사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루이는 서둘러 침상으로 갔다. “빨리 이리 오소…. 3시에 또 회의가 있소!” 퐁파두르는 무지갯빛 미소를 던지며 루이의 품에 안겼다.
“참 당신이 라틴어 공부를 했지? 이따 이 편지를 읽어 보구려…” 루이는 전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여자는 티끌만큼도 생각 않고 쫓기듯 즐기고 곯아떨어지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는데 오늘은 다른 모습이다. 피곤하다며 여인에게 주인 노릇을 하라는 것이다. 퐁파두르는 기쁘기도 하고 겁도 났다. 루이가 위에서 제멋대로 즐기고 내려오면 기분이 좋든 나쁘든 걱정이 없는데 배를 저으라고 돛대를 주니 걱정이 태산이다. 다행이 배의 주인이 쾌락을 즐겼으면 행복하고 그렇지 못하면 투정이 겁나서이다.
그러나 주어진 기회를 그냥 놓칠 퐁파두르가 아니다. “전하 그럼 오늘은 소첩이 노를 저어 보겠습니다. 항해술이 마음에 들지 않으셔도 참으셔야 합니다.” “오냐 네 마음대로 해 보렴…!” 여인은 사내를 침대에 반드시 눕혔다. 그리고 사내의 허벅지 위에 웅크리고 앉아 음경을 삽입 한 후 다리를 오므리고 허리를 휘졌듯이 둥글게 돌렸다. 여인은 허벅지를 오므렸다 폈다 하며 사내의 페니스를 조종했다. 사내는 욕망의 절정의 표정을 지으며 우울했던 분위기를 말끔히 지웠다. 여자는 계속해서 엉덩이를 좌우, 상하로 움직이면서 변화를 주자 사내는 여인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아 당겼다.
여인은 마치 꿀벌이 꽃 속의 꽃가루를 찾아 원을 그리며 샅샅이 뒤지듯이 엉덩이를 계속해서 움직였다. “전하 소첩의 노 젖는 기술이 어떠하신지요?” “이제 그만 노를 놓거라. 항구에 다 왔느니라.… 네 노 젖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네 어디서 그렇게 좋은 기술을 배웠느냐?” 사내는 서둘러 샤워를 하고 방을 빠져 나가며 “회의가 끝나는 대로 다시 올게…” 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퐁파두르는 애첩 생활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화끈하게 몸을 풀었다. 루이가 위에서 노를 저었다고 해서 즐거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뜨뜻미지근했던 황홀경을 직접 조절을 해가며 만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여인은 샤워 룸에서 따끈한 물을 머리 위에서부터 뿌리고 나와 대형 거울에 자신의 나신을 비쳐 보았다. 온몸이 상기되어 있었다. 애교점이 떨어져 나간 얼굴에는 기쁨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고 홍조 띤 엉덩이는 과도한 돌림으로 긴장이 덜 풀렸다. 두 유방도 사내의 거친 손길에 시달려 젖을 빨린 것 같이 얼얼하다. 그러나 퐁파두르는 루이의 정부로서 최초의 즐거움도 잠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사내를 위해 다시 거울 앞에서 얼굴을 다듬기 시작했다.
빼어난 미모와 재능으로 국왕의 사랑을 받았으나 막대한 국비를 낭비하여 후에 프랑스 혁명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 여인이다. 마담 퐁파두르는 모엣샹동(Moet & Chandon)이라는 샴페인을 특히 좋아했다. 모엣샹동사는 매년 5월 그녀에게 이 와인 120병을 보내, 궁정 파티에서 쓰도록 배려해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특히 루이 15세가 샴페인 병을 따는 순간을 무척 좋아했는데, ‘펑’하는 소리와 쏟아지는 거품을 보며 폭발할 듯한 오르가즘을 느꼈다고 한다. 매일 밤 베르사이유에서 열린 파티에서 루이 15세와 함께 그녀가 마신 술은 바로 샴페인, 헝가리의 디저트 와인 토카이(Tokay)와 함께 모엣샹동의 샴페인이 파티의 빠지지 않는 메뉴였다. 그녀는 샴페인이야말로 여성이 음주 뒤에도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와인이라고 했는데, 이런 그녀의 샴페인 사랑을 기리기 위해 그녀의 봉긋한 젖가슴 모양으로 샴페인 잔이 고안되었다.
다음 그림에서 왼쪽 젖가슴을 살짝 드러낸 모습은 뇌쇄적이다. 그림상의 왼쪽 젖가슴 노출은 작가의 작의적인 묘사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유방형 술잔은 여성의 왼쪽 유방을 본 뜬 잔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오른쪽 젖가슴보다 왼쪽 젖가슴이 보다 앙증스럽고 뇌쇄적이다. 그녀가 사랑한 루이 15세를 위해 마지막 선물로 봉긋한 젖가슴 모양으로 샴페인 잔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가 시에 썼듯, 때로는 ‘가슴 안의 사랑’도 죄가 될 수 있다. 그 간단한 사랑 하나 때문에 국가의 대소사가 어긋나고, 통치권자의 명민함이 흐려진다면 더욱 그렇다.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장미 같은 정부였던 마담 드 퐁파두르(Madame de Pompadour)의 사랑은 그래서 ‘죄’ 혐의를 받는다. 왕을 향한 그의 사랑은 차라리 병이었다. 왕의 정부로 지낸 19년간, 그는 아편 중독자처럼 왕과 권력에 인생을 저당 잡혀 살았다. 집값보다 비싼 2만 2500리브로 값의 드레스를 입고, 547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를 찼으며, 섹스에 능하지 못한 자신 대신 왕의 욕정을 충족시킬 창녀를 골라 성스러운 제물처럼 왕에게 바쳤다. 딸과 아버지를 먼저 저승에 보내는 아픔을 겪고도 그는 슬픔을 지겨워했던 왕을 위해 인형처럼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루이 15세의 사랑이 그녀에게 꽂히지 않았더라면 그녀에게 ‘죄’의 혐의는 씌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은 언제나 교활한 여인의 것이듯, 국왕은 그녀에게 사랑을 주었고 후에는 모든 정사를 관리케 하는 암묵적인 권한에 동의했다. 수많은 안건과 상소문은 왕 이전에 퐁파두르의 검열과 결재를 받았으며, 연금 및 작위, 훈장에 이르는 모든 포상은 그녀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모든 각료에게 응징과 벌을 내렸으며, 국가 안보와 관련된 장군까지 자신의 아군들로만 앉혔다. 그녀가 ‘국방장관’까지 자처하던 시기, 프랑스 군대는 오합지졸로 패전을 면치 못했다. 그녀의 눈먼 권력을 전해들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자신이 기르는 암캐에게 그녀의 이름을 붙였다. 죽는 순간까지 퐁파두르는 왕의 사랑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폐결핵과 심부전증으로 만신창이가 된 육신에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지를 발랐으며 국정을 보기 위해 병상을 뛰쳐나왔다. 죽는 순간까지 병치레를 끔찍이 싫어했던 왕을 위해 건강을 가장하고, 위트 있는 농담을 던졌다고 하니 어쩌면 그는 프랑스인들에게는 악녀로 비쳐졌을지 모르지만 루이 15세에게는 고결한 아내였을지 모른다. 만약, 그가 이렇게 묻는다면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왕을 미치도록 사랑한 것도 죄가 되나요?” 미치도록 사랑한 마지막 그녀의 선물은 봉긋한 젖가슴 모양으로 샴페인 잔이었다. 그녀는 “여인을 가장 아름답게 하는 술은 오직 샴페인 뿐”이라고 하였다.
루이 15세는 특별히 모에 샹동가의 샴페인(Moet & Chandon Champagne)에 매료돼 저녁 만찬 때마다 즐겨 마셨는데 이 만찬에 쓰인 샴페인에는 왕실의 스탬프를 찍었다고 한다. 프랑스 왕실에서는 매년 한 해의 마지막을 축하하기 위해 120병의 모엣 샹동 샴페인을 특별히 주문하곤 했는데, 마담 퐁파두르도 이에 질세라 왕실의 여름 별장이 있는 콩피에뉴에서 한번에 200병의 모엣 샴페인을 주문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베르사유의 가장 쾌락적인 왕이었던 루이 15세 때 모엣 샹동가의 샴페인은 자유주의의 정신을 상징하는 술이 되었고 그 관능적인 매력 때문에 그 시대를 ‘쾌락의 시대’라는 칭호로 불리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왕과 귀족들의 폐쇄된 생활은 하인들이 일일이 음료 서비스를 하던 와인보다는 손으로 그냥 오픈 할 수 있는 샴페인은 특권층의 사랑을 더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대혁명의 와중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도 모엣 샹동을 유별나게 사랑했다. 모엣 샹동은 나폴레옹이 마신 샴페인에는 황제가 마셨다는 의미에서 ‘브뤼 임페리얼(Moet & Chandon Brut Imperial)’이라 이름 지었다.
프랑스의 소테른(Sauternes), 독일의 트로켄 베렌 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와 더불어 ‘세계 3대 귀부 와인’으로 불리는 헝가리의 토카이(Tokaj) 와인도 루이 15세의 사랑을 받았던 와인이다. 베르샤유 궁정에서 벌어진 파티에서 루이 15세가 황금빛이 도는 와인 잔을 들면서 곁에 선 마담에게 잔을 가리키며 “마담, 이 잔의 와인은 군왕들이 마시는 와인이며, 와인의 군왕이기도 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루이 15세의 이 말로 토카이 와인은 프랑스 궁정에서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됐고 그 명성은 오늘날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토카이는 헝가리 동북부 지방 슬로바키아의 국경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티서강과 도드로그 강이 합수하는 두물머리 지역이다. 푸르민트(Furmint) 포도 품종으로 빚은 이 와인은 화려한 황금색이 돌며, 깊이 있는 스위트함과 적당한 산도로 와인 애호가들로부터 끝없는 사랑을 받아오는 헝가리 명주다. 헝가리 토카이 와인(Tokaji Wine)의 스위트함은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1650년경 이 지역에 있던 수도원의 원장이던 마테 셉쉬 라즈코(Mate Szepsi Laczko)가 터키의 침략을 두려워 해 포도의 수확을 늦추도록 했는데, 이 늦 수확이 포도송이에 귀부병(포도가 무르익을 때 포도껍질에 생성되는 곰팡이에 감염돼 포도 알이 쪼그라지고 당도와 향이 농축되는 현상)에 걸리게 되고 그로 인해 당도가 높고 특이한 향과 맛을 내는 와인이 탄생하게 된다.
1760년경 와인 애호가들의 꿈의 와인인 지금의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가 매물로 나오자 와인을 좋아하는 루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마담 퐁파두르는 그 와이너리를 매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루이의 심복이자 비밀경찰을 통솔하던 장 조카 콩티 공(Prince de Conti)에게 와이너리가 넘어가게 된다. 낙담한 그녀는 대안으로 왕정 파티에 리슐리외 공(Duc de Richelieu)이 루이 XV세에게 ‘젊음의 묘약’이라고 추천한 보르도의 ‘샤토 라피트 로칠스(Château Lafite-Rothschild)’ 와인을 소개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당시 프랑스 왕실 전용 와인은 ‘부르고뉴 와인’이 차지하고 있었으나, 이로써 보르도 와인이 새로운 왕실 공식 와인이 되고 왕실 파티에는 ‘라피트 로칠드(Lafite Rothschild)’가 사용되게 된다.

마담 퐁파두르는 아주 작은 이브닝 파티에서 조차도 ‘라피트(Lafite)’를 사용했고, ‘라피트’는 ‘왕의 와인’으로 불리며 이를 마시는 것이 당시 귀족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라피트 로칠드’는 ‘완벽한 밸런스’로 표현되는, 견고하고 장중한 구조의 유럽 고성을 닮은 와인이다.
1755년 루이 15세 때 보르도의 지방장관을 역임한 리슐리외 공이 파리로 돌아 왔을 때의 일화다. 리슐리외 공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루이 15세를 알현한다. 그의 얼굴을 본 루이 15세가 말했다. “도대체 어찌된 게 보르도에 가기 전보다 25세는 젊어 보인단 말이오!” 60세가 된 노공작 리슐리외가 말한다. “전하 영원한 젊음의 비밀을 발견하였나이다. 그것은 ‘샤토 라피트’라는 와인이며, 올림포스 산의 신들에게나 어울림직한 진한 강장제요, 맛있는 신주(神酒)였사옵니다.” 리슐리외는 루이 15세에게 ‘샤토 라피트’를 권했고 그때부터 베르사유 궁전은 이 와인 때문에 떠들썩하게 됐다.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 필자 남태우 교수 경력:▴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오픈엑세스포럼회장▴한국 문헌정보학교수협의회장▴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한국도서관협회장▴중앙대학교 명예교수(현재)▴현재 건전한 음주문화 선도자로 활동하고 있음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