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力 세다고 자랑 마라 ‘술常務’ 될라

‘삶과술’을 위해 멋진 그림 한 폭이 그려졌다. 좌로부터 삶과술 김원하 발행인, 강병인 멋글씨 작가, 김영삼 화가, 윤진철 명창.

김원하의 醉中眞談

酒力 세다고 자랑 마라 ‘술常務’ 될라

 

비즈니스관계에서 대등한 수평적 관계보다는 甲과 乙의 관계로 맺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을의 입장에서는 항상 갑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비위를 맞춰야 갑이 발주하는 일거리를 따거나 납품을 할 수 있는 등 거래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갑과 을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매개체 가운데 으뜸으로 꼽는 것이 술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갑의 요구가 술 접대보담은 골프접대나 여행티켓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모양이다.

최근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유재수(55)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사건만보더라도 지나친 갑질이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유재수가 금융위원회 재직시절 관련 업체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편의를 봐준 혐의로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이정섭)는 유 전 부시장을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유재수의 혐의는 금융위에서 근무하던 2016년쯤부터 건설회사와 사모펀드 운용사, 창업투자자문사, 채권추심업체 등 직무 관련성이 매우 높은 관계자 4명에게 4950만원 상당의 금품과 이익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또 유 전 부시장이 초호화 골프텔 무상사용, 고가 골프채, 항공권 구매비용, 오피스텔 사용대금, 부동산 구매자금 무이자 차용과 채무 면제 등의 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이 정도면 황제 갑질이 아닌가. 갑질이 탄로 나기 시작하자 힘 있는 청와대 사람들에게 줄을 대서 특별감찰반의 감찰을 무마하려던 것이 사건의 핵심인 것 같다. 이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과거에 갑과 을의 관계가 터지면 일반적으로 ‘음주향응에 이어 성접대까지 받았다’는 뉴스가 일반적이었다.

갑과 을의 관계의 술자리는 갑의 기분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해 최고급 술에다가 최고의 안주는 기본이다. 을의 입장에서는 갑이 술을 많이 마셔 기분이 좋아지고 만취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술사는 을이 먼저 취해버리면 역효과가 나기 마련. 이 때 등장하는 사람이 을의 술상무(-常務)다.

술상무는 한국의 회식문화, 음주문화, 접대문화를 대변하는 속어이다. 기업의 업무외 활동인 회식과 접대에서 그 선두에 서서 술자리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인물을 말한다.

술상무는 직책상 꼭 상무가 아니더라도 조직 내 두주불사(斗酒不辭)형이면서 술자리를 기분 좋게 만들면 된다. 이사나 부장 또는 차장도 그도 아니면 평직원도 주석(酒席)에서 상무로 고속 승진시켜 참석케 한다.

애주가들은 평소 맛보기 힘든 진수성찬(珍羞盛饌)에다가 고급술을 마실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겠는가. 게다가 높은 분 모시는 자리라 인정도 받는 기회이니 불러만 주면 얼씨구나 하며 참석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술이 세다면 인기를 끌었다. 담배도 그렇다. 처음 인사를 나눈 초면일 경우에도 의례 담배부터 권했다. 이 때 “전 담배를 못합니다”고 하면 어딘가 덜 떨어진 인간 취급을 받았고 대화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요즘은 술이 센 사람이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인기를 받기는커녕 멸시를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두주불사 형은 그렇다 치고 애연가들은 참으로 딱하다. 직장이건 집이건 담배 피울 곳이 마땅찮다. 과거에는 비행기 안에서도 흡연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고, 고속버스에 재떨이가 놓일 만큼 담배를 피웠다.

그나저나 비즈니스관계로 만난 자리에서 술집까지 이동했다면 업무처리가 반쯤은 성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가는 술잔 속에 우정이 싹트고, 어느 정도 술기운이 돌면 호칭 사라지고 형님동생으로 발전한다.

술상무로 고속 승진했던 이들이 세상 일찍 하직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옛말에 ‘술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맨손으로 호랑이도 때려잡았다는 천하장사도 술을 이길 수는 없다. 이는 술은 물(水)에서 나온 불(火)이기 때문이다. 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연말이다. 술 없는 송년회가 대세라곤 하지만 어디 그럴 수 있겠는가. 직장에서는 송년회를 가볍게 보내자고 점심회도 하고 다과회로도 대체한다지만 술 없이 송년회를 보내기엔 허전하다. 그래서 친구 녀석 불러내 술잔을 기우린다. 그러다 보면 한 병이 두 병 되고 두병이 세병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나 몸 생각 가족생각하며 용기 내어 “자! 오늘은 여기서 끝내자고.” 외치는 사람이 진정 술꾼이다.

<삶과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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