燒酒 반병 VS 각 일병

김원하의 취중진담

燒酒 반병 VS 각 일병

 

잠시 이럴 때를 떠올려 보라.

대한민국에서 소주를 없앤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전체 국민의 72%가 술을 마신다고 하니 난리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아이들처럼 ‘쌀 없으면 라면 먹으면 된다’는 식으로 ‘소주 없으면 맥주도 있고, 막걸리도 있고, 양주 먹으면 되지요’ 할 수도 있겠지만 소주가 없다는 것은 술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각종 술이 넘쳐나는 세상에 하필 소주타령을 하느냐는 소리를 들을 줄 모르지만 주당들에 있어 소주는 공기 같은 존재다.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 주당들은 때론 소주의 고마움을 잊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 많은 술중에 소주 이야기를 꺼내 든 이유는 이제 소주는 자칭타칭 ‘국민주’란 타이틀을 딴 지 오래다. 외딴 벽촌에서 생수는 구입 할 수 없어도 소주는 구입이 가능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소주는 국민주란 명예(?)도 얻게 되었다.

특히 전통주 업계도 앞 다투어 증류식 소주를 생산한다. 때문에 소주는 기존 희석식 소주 외에 증류식 소주가 소주 시장을 넓혀갈 것 같다.

공광규(1960~) 시인이 어느 해 대천해수욕장 포장마차에서 조개구이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다가 착상한 시가 ‘소주병’이란 시다. 빈소주병을 입에 대고 불면 부응~부응~ 하고 우는 소리가 난다. 이 소리를 아버지의 울음소리로 연결시킨 것. 계속 따라 주기만 하다 끝내 버려지는 소주병을 아버지의 삶에 비유 한 시로 이 시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아버지의 존재를 생각게 하는 시다.

공광규 시인이 실천문학사(2004년)를 통해 네 번째로 펴낸 <소주병>이란 시집에 ‘소주병’이 들어 있다.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 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술병이 잔에다 자신을 계속 따르며 생을 비워가듯 어른인 아버지는 그렇게 어린 자식을 키웠을 것이다.

한국인의 영원한 친구 ‘소주’. 소주는 원래부터 우리나라의 술은 아니었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몽골군이 일본 원정을 위해 고려 진출 당시 만들던 술. ‘아락주’로 불리다가 이후 ‘불을 떼어 만드는 방식’ 이라는 뜻을 담은 소주(燒酒)가 되었다. 필자가 소주를 처음 접했을 때 도수는 거의 30도짜리였다. 술병도 됫병이 대세였다. 세월이 흘러 4홉짜리 소주병(지금의 맥주병 크기)이 나오고 2홉짜리 소주병이 등장한 것은 60년대 후반이 아니었나 싶다.

4홉짜리 소주(25도 정도)를 혼자서 마시기엔 벅차기 마련, 그래서 소주 반병을 시키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 같은 습관이 2홉짜리 소주가 나왔는데도 이어진 사람이 많았다.

지인 중 선배 한 사람은 이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술자리에 참가한 주당들이 둘이든 셋이든 상관 않고 소주 반병을 시켰다. 처음엔 주변 사람들 보기에 창피했다. 술사는 사람이 얼마나 돈이 없으면 소주 반병을 시키는데 ‘거기서 술 마시겠다고 앉아 있는 사람은 뭐야’ 하는 느낌이 들어 얼굴이 화끈 거렸다.

그 선배는 소주 반병이란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어딜 가나 소주 반병을 시켰다. 때문에 처음 간 식당에선 소주 반병을 시키면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문제는 소주 반병이 어느 사이에 다섯 병이 되고 열병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셋이서 반병을 시켜서 한 잔 씩 털어 넣으면 금세 소주병이 비어지고 또 반병을 시킨다. 감질이 나서 더 마시게 되어 간다는 것은 몇 차례 더 만나고 알게 되었다. 그 땐 그 것도 재미있었는데….

술사는 사람이 술을 주문하면서 호기 있게 “인원수대로(각 1병) 주세요” 하면 멋져 보인다. 그리고 “술은 얼마든지 살 테니 많이 마시라”며 각 주당 앞에 소주 1병씩을 배분한다.

이런 술자리를(반병과 각 1병) 경험해본 분들이 더러 있을 것 같다.

소주 반병씩을 시킨 술자리와 각 1병을 주문한 술자리, 어느 쪽 술자리가 주당들에게 술을 더 많이 먹게 했을까?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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