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는 뒤끝 좋고 피로감 못 느껴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박목월 시인의‘나그네’다. 조선시대 말까지만 해도 이‘나그네’에서 나오는 것처럼 술 익는 마을이많았지만 일제 강점기부터 조선총독부가 최초의 간접세인 주세(酒稅)를 신설하면서 가양주(家釀酒)를 전면 금지하고 양조장 술만 마시게 했다. 그 때부터 우리의 술은막걸리, 소주, 맥주 같은 것이 보편

화됐고, 전통주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전통주가 되살아난 것은 지난86년‘아시안게임’때다. 각 시·도를 대표하는 술이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논의가 일고부터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사실 우리 전통주는 그 가짓수를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집집마다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가양주가 많았기때문이다. 그러나 수십 년 간 전통주의‘금기(禁忌)’로 맥이끊기다보니, 문헌으로 남아 있거나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것이 아니면 재현이 불가능하게 됐다. 그런 전통주를 되살려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시인이자전통주 연구가인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실 박 소장은 생김새가 운동선수처럼 날렵해, 술하고는 거리가멀 것 같다. 오랜 기간 술 연구를 해오고 있는 술 연구가인 탓에 대뜸 주량부터 물어봤더니“석잔”이란다. 무슨 술이든지 그에 맞는 잔으로 세 잔을 마신다는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술을 새로 빚어(신제품) 연구 대상으로 마실 때 정도다. 이는 취하는 정도, 숙취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인간의 감흥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기호식품 중 하나가 술입니다. 그런 이유로 술은 가장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것들은 그저 취하기 위한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박 소장은“전통주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 빚어도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 술맛이 다르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성격이 거친 사람이 빚을땐 술맛이 독하고, 온화한 사람이 빚으면 부드럽다고 한다. 이를 두고그는“술은 기다림의 예술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술 익는 동안 참고 기다려야 좋은 술이 나오는데, 성격 급한 사람은 빨리 익기를 원해 누룩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독하고, 반면 너무 느려터진 사람이 담근 술은 신맛이 나기도 한다고한다. 이처럼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전통주는 빚는 사람도, 마시는 사람도 제각기 다르다. 박 소장은 우리전통주가 빛을 보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 믿는다.

“이제 우리 전통주 맛을 아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10여년 전만 해도 술 빚기 교육을 하면서 전통주 맛을 보여주면 교육생들은 믿으려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 모르게 무슨 약 같은 것을 섞지 않았나 의심한 거죠. 그들이 자기가 빚은 술을 맛보고서야 믿기 시작했습니다.” 박 소장에게 전통주 빚기를 배운 사람만 줄잡아 3000여명. 이들은 지금 전국 각지에서 술을 빚는 일에 종사하기도 하고 가정에서 독특한 가양주를 담가 먹기도 한다. 그들은 또 이웃에게 술 담그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전통주 전도사’가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번 전통주에 맛들인 사람들은 소주나 맥주 같은 술은 자연 멀리하게 됩니다. 전통주는 뒤끝이 깨끗하고 피로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지금 전국적으로 전통주 도가가 400여군데나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그만큼 전통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좋은 전통주는 탁도, 색깔, 향, 맛으로 구별하는데, 맛도 좋아야 하지만 향이 좋아야 한다.

맛 좋은 전통주는 쌀로 담근 술이지만 과일 향이 나는 것이 특징. 수박이나 사과, 딸기 같은 향은 물론 꽃향기도 난다.

박 소장은 잡지사에 몸담았던 사회 초년병 시절에 우연히 전통주 취재를 하다가 인연을 맺었다. 이제는 전통주 분야에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연구소에는 전국에서 전통주를 맛있게 빚기 위해 찾은 연구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의 노력으로 맺은 결실들은 향후 우리나라의 건전 음주문화를 선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바탕이 될것이다. 그런 만큼 지금이 바로 전통주, 가양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절실할 때다.

박 소장의 저서로는‘한국의 전통 민속주’, ‘우리의 부엌살림’, ‘명가명주’, ‘박록담 시인의 술 빚는 법’, ‘오늘에 되살린 한국의 명주 103가지’외에‘그대 속의 확실한 나’같은 시집 다수가 있다.

김원하 기자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