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 술 그리고 잡담(3)
◆ 술 두병
영국의 한 신사가 아들을 데리고 술집에 가서 설교를 늘어놓았다.
“얘야, 술이라는 것은 즐길만한 것이지만 도를 넘으면 안 되지. 저쪽 테이블의 신사를 좀 봐라, 토마토 같이 얼굴이 벌겋게 되어 숨이 차 있지 않니. 저렇게 되면 여기 있는 술 두병이 네 병으로 보이지.”
그리고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지금 이 테이블에는 술이 한 병밖에 없는데요.”
◆ 늦도록 마시는 이유
자정이 지나 제1의 취객이, “여보시오, 이렇게 늦도록 술을 마시고 다니면 부인한테 혼나지 않소” 하고 물었다.
제2의 취객이 “내겐 그런 걱정이 없소, 나는 아내 같은 귀찮은 존재는 가지고 있지 않소”라고 대답했다.
제1의 취객은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내가 없다면서 당신이 밤늦도록 싸질러 다니는 이유가 뭐요.”
◆ 주정꾼 父子
아버지가 아들에게 “인마 네놈의 머리는 둘이로구나, 네까짓 것 한테는 이 집을 물려줄 수 없어” 하고 호통을 쳤다.
아들 역시 어지간히 취했던지,
“물려받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빙글빙글 도는 집을 어디다 쓰겠어요.”했다.
◆ 수술 후엔
어려운 수술을 마친 의사가 환자에게 몇 가지 주의를 주었다.
“3개월간은 금주, 금연, 규칙적인 수면을 취하시오…….”
“그럼 섹스는 어떡하죠?”
“그것도 조심해야지요, 절대로 흥분해서는 못씁니다. 그러니 상대는 부인으로 한정하세요.”
◆ 질이 다르다
“여보게, 자넨 결혼하고 나서도 여전히 마시네 그려.”
“음 결혼 전엔 즐거워 마셨고, 지금은 홧김에…….”
◆ 시음회
포도주 품평회를 하는데, 이것저것 마셔보며 기분이 딸딸해질 무렵 누구도 특징을 가릴 수 없는 것이 나왔다.
그래서 술의 도사한테 그것을 가지고 갔다. 그는 냄새를 맡고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맛도 아무 것도 없군. 자네 마누라와 키스한 것 같아.”
◆ 돈 내고 술 먹기
어떤 양주가 술 한 동이를 지고 장터로 팔러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모두 술을 좋아해서 서로 굳게 약속하기를 부부지만 술은 절대로 공짜로나 외상으로 먹지 않기로 했다. 고개를 넘다가 숨이 차서 영감이 지게를 내려놓고 쉬게 되었다.
영감은 목이 몹시 컬컬하여 정말 못 견딜 지경이었다. 술 한 모금만 먹었으면 좋겠는데 마누라와 약속한바가 있는지라 섣부르게 먹자는 소리를 못했다. 가만히 주머니를 만져보니 엽전 한 닢이 들어 있었다. ‘옳지 됐다’ 하고는 마누라에게 “여보, 돈만 내면 나도 이 술을 먹을 수 있겠다.” “그야 돈만 낸다면야.” 영감이 엽전을 꺼내 놓으며 “자 이걸로 두 잔만 먹자.” 하고는 조그만 바가지로 두 잔을 퍼먹었다. 마누라가 보니 역시 참 견딜 수 없다. 그래서 영감더러 “나도 돈만 내면 먹을 수 있겠지요?” “아무렴 먹을 수 있다마다.” 마누가라 금방 영감한테 받은 엽전 한 닢을 쥐어주며, “자 나도 두 잔만 먹겠소.” 하고서 퍼먹었다. 마누라가 두 잔째를 다 들이키고 나니까, 영감이 그 돈을 다시 마누라에게 주고 “두 잔만 더 먹어야지” 하고 다시 술을 퍼먹었다. 이렇게 해서 술 한 동이를 다 먹어 버렸는데, 맨 나중에 엽전은 영감 주머니로 도로 들어갔다.
◆ 꿈속의 술
술을 좋아하는 한 사나이가 꿈에 좋은 술이 생겼다. 그것을 따끈히 데워서 막 마시려고 할 때 그만 잠에서 깨고 말았다. 그 사나이는 “아깝다, 그냥 찬대로 마실걸.” 하고 아쉬워했다.
◆술 먹는 사람이 대머리인 이유
공선생이란 자는 술을 몹시 좋아하였다. 그는 대머리인데 턱의 수염이 길어서 덥석 부리였다. 어떤 객이 공선생에게 농담을 걸었다. “몸체는 하나인데 그대는 어이하여 턱에는 털(수염)이 나고 머리에는 털이 없는고?” “술 때문이야!” “술이 머리에는 화를 입히고 턱에는 화를 입히지 않는가?” “하! 이 사람아 자넨 못 들었는가. 술 취한 사람이 ‘아이고 머리야’ 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지 ‘아이고 턱이야’ 하던가. 아픈 것은 화를 입는 것이요, 아프지 않는 것은 화를 입지 않는 것이니, 나의 턱엔 털이 나고 머리엔 털이 안 난 이유를 이제는 알겠나.”
◆허가 취소
높은 분이 절에 와서 중에게 물었다.
“비린 것을 먹느냐?” “별로 안 먹지만 술을 마실 때는 좀 들지요.”
“그럼 너는 술을 마시는 게로구나.” “아뇨, 별로 많이 마시진 않아요. 그저 장인이 오실 때 몇 잔 같이 들 뿐인 걸요.”
높은 분이 노발대발 화를 냈다. “그럼 너는 마누라까지 두었다는 말이냐. 이건 중의 신분을 망각해도 분수가 있지. 내 당장 종무과에 말해서 네 도첩(度牒: 중에게 발급하는 신분증명
서)을 빼앗아 버리리라.” 중이 말했다. “뭘 감추겠읍니까! 저는 지난해에도 도적질을 하여 이미 도첩을 빼앗겼습니다.” (이글을 편한 사람은 이 파계승이 그래도 다른 중들 보다 정직하다고 칭찬했다.)
◆쇠고집
고집쟁이 부자(父子)가 살고 있었는데 어찌나 고집이 센지 한번 우기기 시작하면 도무지 양보를 하려들지 않았다. 어느 날, 손님이 와서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손님과 술을 마시다가 술이 떨어져 아들에게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그런데 술을 사가지고 오는 외진 길에서 한 사나이를 만났다. 그 사내 역시 고집쟁이여서 도무지 아들에게 길을 비켜주지 않는지라 두 사람은 서로 마주서서 눈을 흘기며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듯이 언제까지나 서 있었다. 한편 아버지는 심부름을 보낸 아들이 좀처럼 들어오지 않자 웬일인가 싶어 찾아 나섰는데 가보니 그 모양으로 있는지라, 아들에게 말하기를, “자, 넌 이 술 병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내가 이 자식과 겨뤄볼 테니까“ 했다 한다.
◆술은 못 끊어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목구멍에 찰 때까지 마시고 그걸 토해낼 때까지 계속 술잔을 드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의 충고도 쇠귀에 경읽기였다. 오늘도 얼마나 마셨는지 ‘왝왝’ 통하는 꼴을 본 친구가 닭의 간을 가져다 그 토해 놓은 곳에 섞어 놓았다. “여보게 여기 이걸 보게.” “뭐 뭘 말이야.” “자, 자네는 이렇게 간을 토했어. 인간의 오장 중에 하나를 토한 거야. 사장(4개의 장)을 가지고는 오래 살지 못할걸. 술을 끊게.”
“괜한 소리, 사장이라고 술을 끊다니.” “……. ” “저 천축으로 불경을 가지러 간이는 삼장이 아닌가, 그리고 큰 거리의 대장간 알지? 그놈의 이름은 이장이야.”
◆술 먹는 꾀
어떤 건달이 술을 먹고 싶은데 며칠째 돈이 한 푼도 없어 굶고 있었다. 하루는 친구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그가 마른 침을 삼켜 가며 친구 집을 찾아갔더니 과연 술상이 벌어졌다. 그러나 친구는 넉넉한 살림이 못되어 충분한 술대접을 못하였다. 그래서 그 친구는 술을 따르는 동자에게 미리부터 일러놓기를 술잔에 술을 따를 때는 반잔씩만 따르도록 하였다. 오래 술에 굶주린 그는 동자가 술잔에 반만 채우는 것이 심히 못마땅해서 변소에 가는 척하고 밖에 나와 넌지시 동자에게, “얘, 나는 배탈이 나서 술을 먹지 못한다. 그러니 술잔에는 되도록 술을 따르지 마라. 이건 약소하나 용돈에 보태 쓰도록 하라.” 하고 엽전 몇 푼을 종이에 싸서 주었다. 나중에 동자가 그 종이를 끌러보니 그것은 엽전이 아니고 사기 조각이었다. 성이 잔뜩 난 동자는 그것을 땅바닥에 팽개치고 은근히 보복할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일부러 술을 술잔 가득히 부어 주었다. 덕분에 건달은 오래간만에 술을 배부르게 마실 수 있었다.
◆두 냥에 잡혔소
어떤 마누라가 남편에게 무명 한 필을 팔아오게 하였다. 그 남편이란 사람은 무명 판돈으로 모두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마누라는 크게 화가 나 꾸짖더니 마시 무명 한 필을 짜서 주었다. “오늘을 술을 마시지 말고 잘 팔아 오시오. 날마다 술을 마시기만 하시면 생계는 무엇으로 합니까.”
남편은 다시 장에 가서 팔고는 술을 외상으로 실컷 마신 다음, 돈을 허리춤에 차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는 꾀를 내어 자기 밑천을 얽어매어 뒤로 붙이고 집에 들어설 때는 짐짓 크게 취한 체하고 헛기침을 하며 걸어 들어갔다. 마누라가 또 바가지를 긁었다.
“오늘 또 취해서 돌아왔으니 무명 판돈으로 마셨을 게 아니오.” 이에 남편은 허리춤에서 돈 꾸러미를 풀러 놓으며 말했다. “술을 먹긴 누가 먹었단 말이오. 여기 다 있는데.”
그럼 무슨 돈으로 술을 이렇게 취하도록 마셨죠?
“술집 앞을 지나려니 군침이 도는데 차마 돈을 쓸 수가 없어서 그것을 빼어 맡기고 마셨지.”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어디 봅시다.” 이에 남편이 바지를 벗고 보인즉, 과연 있어야 할 그것이 없었다. 마누라가 크게 놀라, “이게 무슨 짓이오? 대체 얼마에 전당하였소?” “두 냥일세.” “자, 이 두 냥으로 어서 가서 찾아오시오.”
마누라가 아까운 줄 모르고 무명 판돈에서 두 냥을 꺼내 놓았다. 그는 그 두 냥을 가지고 가서 외상값을 갚고 몇 잔을 더 마신 후에 검댕을 그곳에다 바르고 오니 마누라가 물었다.
“찾아왔소?” “찾아오기는 했으나 술집에서 부지깽이로 써서 시커멓게 그을러 버렸소.” “어디 봅시다.” 보니 과연 새까만지라, 마누라는 치마폭으로 씻어주면서, “원 망할 놈의 여편네, 남의 물건을 전당잡았으면 고이 돌려 줄 것이지 이렇게 함부로 굴려?” 라고 원망했다.
◆맛이 달라
물레방앗간집 주인이 산 너머 마을로 밀가루 배달을 하러 가게 되었다. 그런데 산 너머 술집에 예쁜 기생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마누라는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서방의 몸에다가 밀가루를 흠뻑 칠하고는, “임자가 집에 오면 내 이걸 검사할 테니 조심해요. 이가루가 씻겨 나가면 집에 돌아올 생각도 말아요” 하고 못을 박아 놓았다. “제기랄, 밀가루야 어딘들 없을라고” 하며 서방은 콧방귀를 뀌고 집을 나섰다. 그는 배달을 마치고 삯을 받아, 그 길로 술집에 가서 한잔하고 기생과 재미를 본 다음 시치미를 뚝 떼고 돌아왔다. 서방한테서 술 냄새가 나자 마누라는 지체 없이 검사를 하였다. “자, 보란 말이야.” 서방은 밀가루를 뒤집어 쓴 몸을 내밀며 뽐냈다. “난 술은 먹어도 몸가짐을 단정했거든,” 그러자 마누라는 손고락에다 밀가루를 찍어 맛보더니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이 능청스런 거짓말쟁이야. 가루가 다르단 말이야. 나 가루에 소금을 섞었는데 이거 아무 맛도 없잖아.”
◆한 잔 할까
어느 신혼부부가 어찌나 사이가 좋던지 신랑이 어디를 나갔다 들어오면 사람이 있고 없고를 가리지 않고 아내를 골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한판 해치웠다.
아내가 사람 있을 때를 민망하게 생각하여, “사람이 있거든 한잔 할까 하고 청해 주세요, 그러면 내 슬그머니 골방으로 들어갈께요,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술을 마시는 줄로만 알 게 아닙니까?” “좋은 생각이오.” 이리하여 그날부터 한잔 마시는 것으로 약속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인이 마침 찾아왔는데 신랑이 나갔다가 돌아왔다. 장인 앞에서 아내를 보고 한잔 하는 것이 어떻겠소?” 하니. 아내가 곧 신랑을 따라 골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다시 돌아왔는데 보니 얼굴이 모두 시뻘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를 본 장인이 집에 돌아가서 아내에게, “괘씸한 것들, 딸이라는 것이 남만 못하니 이제부터는 아주 발길을 끊으시오”하고 화를 냈다. 아내는 이상히 여겨 물었다.
“대체 무슨 까닭이세요.” “내가 술 좋아하는 줄은 그년도 다 알면서 골방에 술을 담아 놓고는 저희 내외만 몰래 들어가서 퍼먹고 나오니 그런 경우가 있단 말이오? 이제부터는 임자도 그년의 집에 가기만 하면 내 다리를 분질러 놓겠소,” 아내는 이 말을 듣고 영감이 없는 틈을 타서 몰래 딸네 집에 갔다. “너희 아버님이 노발대발 하시더라.” “왜요” “일전에 너의 집에 오셨을 때 너희끼리만 골방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나왔다니 그게 참말이냐?” “아버님이 오해하신 거예요. 본래 그 일이 여차여차 해서 그리된 것이지 술은 없었어요. 술이 있었으면 어찌 아버님께 올리지 않았겠습니까. 어머님께서 돌아가셔서 잘 말씀드리고 아버님의 노여움을 풀어드리세요.”
아내는 집에 오자마자 영감에게 “오늘 딸네 집에 갔더니…….” “뭐야? 딸년네 집에 갔었다고?” “그렇게 화만 내지 마시고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그 일은 여차여차해서 그리된 것이지 골방엔 술이 없었답니다.” 그제야 영감은 노염 움을 풀고, “그 일이 그런 줄은 내 미처 몰랐군, 그 방법이 심히 묘하니 나도 한잔 마셔야겠네” 하고는 곧 한잔을 마셨다. “한잔 더하리이까?” 하고 아내가 말하니 영감은, “늙은이는 한잔으로 크게 취하는구려.” 했다.
◆술값
길을 가던 나그네 한 사람이 주막집에 들어 술을 청했다. “여보 주인장, 약주 한 되만 주시오.” 주인이 약주를 가져오자, 이내 손님은 다시 생각한 듯이, “미안하오만 약주를 막걸리로 바꿔주시오” 했다. 주인은 분부대로 다시 막걸리로 가져왔다. 손님은 단숨에 한 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막을 나섰다.
주인은 놓칠세라 황급히 뒤 쫒아가서 길을 가는 손님을 불러 세웠다.
“여보세요, 손님, 술값을 치르지 않으셨는데요.” “술값이라니?” “방금 마신 막걸리값 말씀입죠.” “아. 그건 약주 대신 마신 게 아니오.” “아 그렇지만 약주 값도 안 내셨잖아요.”
“당연하지 않소. 약주는 입에 대지도 않았으니!” 주인은 잠깐 생각하고 있더니 이윽고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손님 말씀대로입니다. 약주가 막걸리보다 다섯 냥 비싸니 거스름돈을 돌려 드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