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술꾼 중에 악인이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꾼 중에 악인이 없다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

 

술은 자고로 ‘마음이 맞는 친구와 마시면 1천배도 적다’고 했다. ‘술 마신 후에야 비로소 진실 된 말을 한다’고 했으니, 도대체 술이 무엇인데 속마음까지 헤집어 놓는 것일까.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흥얼흥얼 노래가 나오고, 시인이 아니더라도 어줍은 시상이 떠오르는 것. 그래서 술은 요물단지인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꾼 중에 악인이 없다. 또 과거 유명 시인들 가운데 술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아 술과 문학은 불가분의 찰떡궁합이다.
현대의 주백(酒伯) 변영로 선생은 ‘청명해서 한 잔, 날씨 궂으니 한 잔, 꽃이 피었으니 한 잔, 마음이 울적하니 한 잔, 기분이 창쾌(暢快)하니 한 잔….’ 이렇게 마셨다고 한다.

 

 

송강(松江)의 장진주사(將進酒辭)

 

‘동방의 시호(詩豪)’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고려시대의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이규보(李奎報)의 한문수필에 〈사륜정기(四輪亭記)〉라는 것이 있다. 이규보는 자칭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삼호는 술, 시, 거문고를 퍽 좋아해서 지은 호(號)다.
시성(詩聖)으로 불렸던 송강 정철(鄭澈)은 서인(西人)으로서 항상 동인(東人)의 공격 대상이었다. 동인들은 송강을 ‘대신으로서 주색에만 빠져 나랏일을 그르쳤다’고 공격해, 송강은 한때 명천, 보주, 강계 등지로 귀양살이까지 했다. 송강의 애주성(性)으로 보아 ‘주색운운’ 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당시의 정치인으로서 어디 송강뿐이겠는가.

 

재너머 성권농(成勸農)집이 술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소 발로박차 언치놓아 지즐타고
아희야 네권농 계시냐 정(鄭)좌수 왔다 하여라

 

정철이 성권농 집의 술을 마시기도 전에 양볼에는 이미 술맛이 익어 있을 것 같은 시다. 그가 술을 좋아했다는 것은 그의 걸작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도 넉넉히 짐작 간다. 호방한 성격에 술을 좋아했던 송강은 여기에 멋진 시를 한 수 남겼다. 인생이란 긴 안목으로 보면 한 순간에 불과한 것이다. 그 죽음을 앞두고 술 마시는 사람의 심정을 처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우에 거적 덮어 주리혀 매여가나
류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이 울어내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숲에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쇼쇼리바람 불제 뉘 한잔 먹자 할고
하물며 무덤 우에 잔나비 바람 불제 뉘우친달 어찌리

 

이 노래를 김춘택(金春澤)이 한역(漢譯)했는데, 이것도 명문(名文)이다. 그 첫대목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는 요즘도 주객들이 즐겨서 부르고 있다. 송강의 이 〈장진주사〉는 한국적인 권주가(勸酒歌)로, 술 마시는 멋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그러나 처절함을 느끼게 하는 음주관이기도 하다.

 

 

이태백과 술

 

이태백(李太白)은 술을 퍽 좋아했다. 하루에 300잔을 마셨다니 대단한 주량이다. 어린이의 동요에도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고 전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어른들은 이태백의 완월(玩月)보다 호주(好酒)를 더 좋아했고, 역시 중국사람인 유령(劉領)도 술을 좋아해 〈주덕송(酒德頌)〉을 지은 바 있다.
이태백은 이백이라고도 한다. 당나라의 대시인으로 두보(杜甫)와 쌍벽을 이루는 유명한 시인이다. 두 사람은 이백이 44세, 두보가 33세 때 만났다. 이들의 만남을 두고 ‘4000년 중국 역사상 이처럼 중대하고 이만큼 기념비적인 외합은 없었다. 그것은 청천에서 태양과 달이 충돌한 것과 같다’고 표현한 학자도 있다. 이 두 대시인은 모두 술을 좋아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62세에 파란 많은 귀양살이를 마친 시성 이백은 일설에 의하면 장강 위에 배를 띄워 노는 중 크게 취해 강물 위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익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면 이백의 주량은 어느 정도였을까? 하루에 300잔, 100세까지 살면서 3만6000일을 매일 그만큼 마실 계획을 그는 〈양양가(襄陽歌)〉라는 시에 읊고 있는데, 술을 1두(斗) 마시고 시를 100편 썼다고 한다.(白斗酒詩百篇, 長安市上酒家眼, 天子呼來不上船, 自稱臣是酒中仙杜甫의 飮中八仙歌) 그 당시의 1두는 요즘의 1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가 마신 술은 노주(老酒) 같은, 독하지 않은 양조주였다고 한다.

두보 역시 한 많고 어려운 객지생활을 하면서 술을 마셨다. 그의 시 〈등고(登高)〉에 다음과 같이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하늘에 바람 세고 원숭이 슬피 우는데
맑은 물가 흰 모래에 새들은 날으네
끝없이 나뭇잎은 쓸쓸히 떨어지고
한없이 양자강은 힘차게 흐르네
고향 서생 구슬픈 가을 나그네 되어
언제나 병고의 몸 홀로 대(臺)에 올랐구나
가난 속 머리 셈을 서러워하네
늙은 몸은 이제 술잔마저도 끊어야겠구나

 

이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려니 감회가 남달라 술잔도 많이 오갔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시를 남겼고 그 속에 술을 담았다. 이백은 〈석산에서 두 보를 보냄〉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헤어지기 아쉬워 취한 지 며칠이나 되었을까
어찌 말할 수 있으랴
또다시 술통을 열게 될 것이다
멀리 떠날 신세인 우리
숲속에서 술이나 다 비우세

두보는 그런 선배를 잊을 수 없어 〈봄날 이백을 생각하며〉라는 시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언제쯤이면 당신과 술을 나누며
다시 한 번 자세하게 시를 말할 건가

 

 

서양인의 음주관

 

서양 사람들의 술에 대한 감각은 우리보다 훨씬 낙천적이다. 파리의 오페라좌 근처에 있는‘해리즈 뉴욕 바’는 1911년에 개업한 유명한 집이다. 그 바에 걸려 있는 글귀가 서양 사람들이 술을 어떻게 대하는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걱정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당신이 성공할 것이냐, 성공하지 못할 것이냐가 그것이다. 성공할 것이라고? 그렇다면 걱정할 까닭이 없다.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면 당신의 걱정은 두 가지다. 건강이 유지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병들 것이냐가 그것이다. 건강할 수 있다면 걱정할 까닭이 없다. 만일 당신이 병들었다면 걱정할 것은 또 다시 두 가지가 된다. 회생할 것이냐, 죽어 버릴 것이냐가 걱정인 것이다. 회생한다면 무슨 걱정이랴. 당신이 죽는다고 치면 또 다시 걱정거리는 두 가지밖에 안 된다. 천당에 갈 것이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지옥에 떨어진다고 치자. 그 곳에 먼저 가 있을 당신의 옛 술친구들과 악수하기 바빠 걱정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이다.’

 

이래저래 걱정거리라고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인데, 얼마나 낙천적인 태도인가.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술 노래
1939년 작고한 예이츠(William Burler Yeats)의 술 노래(A Drinking Song)는 다음과 같다.
술은 입으로 들어가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
우리들 늙어 또한 죽기 전에 확실히 알아둘 것은 이것뿐,
내 술잔을 입에 들어 올려 너를 바라보며 탄식하노라

(Wine comes in at a mouse and love comes in at eye,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se I look at you, and I s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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