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 신화 이야기 22
디오니소스 성장과정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테베의 공주 세멜레의 아들로 반신반인이다. 제우스와 세멜레의 사이를 질투하던 헤라가 어느 날 세멜레의 늙은 유모인 베로에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지상으로 내려와 “제우스님이 가짜일지도 모르니, 올림포스에 계실 때의 진짜 본모습을 한 번 보여 달라고 부탁해보세요.”라고 유혹하였고, 이에 넘어간 세멜레는 실제로 그런 부탁을 해 제우스의 진짜 모습에서 나오는 광채에 새까맣게 타 죽게 된다.
제우스는 부탁을 들어주기에 앞서 어떤 소원이건 들어주겠다고 스틱스강에 걸고 맹세를 한 후였기 때문에 이를 거절할 수 없었다. 특히 신들의 왕은 약속을 물리지 않는 법이다.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제우스는 부리나케 그녀가 소멸되기 직전에 세멜레의 몸에서 7개월째 된 태아를 꺼냈다. 그리고는 헤라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그 아이를 자기의 허벅지를 베고는 그 속에 태아를 넣고 꿰매었다.
어떤 이들은 제우스의 전령인 아들 헤르메스가 인공적인 자궁을 단단하게 고정시킬 금 핀들을 찾아주었다고 한다. 이미 세멜레의 몸에서 많이 자랐던 아이는 달이 차자 아버지의 넓적다리를 뚫고 세상에 나왔다. 이 아이가 바로 디오니소스이다. 제우스의 몸에 3개월이나 있었던 아이는 이제 불사의 몸으로 태어난 것이다.

아기는 제우스의 허벅지를 통해 탄생했으니, 남자의 상징은 허벅지라고 하더니, 남성의 허벅지는 여성의 자궁 혹은 유방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런데 홀로 낳은 아이 아테나가 아빠 딸로서 사랑을 독차지하였던 것에 비하면, 디오니소스는 그다지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머리에서 태어난 형이상하적 지혜의 여신과 허벅지에서 태어난 형이하학적 주신 사내애가 똑같이 예쁨을 받을 수는 없다.
임신동안 세멜레는 구불구불 휘감고 올라가는 담쟁이덩굴과 덩굴손 줄기, 넓게 감싸는 포도나무 잎사귀, 도금양의 향기로운 잎사귀와 열매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녀는 자주 머리에 꽃을 꽂거나 포도나무, 도금양, 담쟁이덩굴로 화관을 만들어 썼다. 양치기의 팬파이프 소리가 들리기라도 할라치면 화관을 쓴 채 베일도 내리지 않고 궁전에서 뛰쳐나가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헤매며 춤을 추곤 했다. 그렇게 춤을 추다보면 어느 순간엔가 뱃속의 아기도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발을 구르는 게 느껴졌다. 태몽도 그러하지만 태아 때부터 주신의 기질을 여실히 드러냈다.
산달이 되어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제우스는 허벅지의 상처를 열고 아기를 꺼냈다. 그들은 아기를 따뜻하게 감싼 다음 뿔이 보이지 않게 뱀으로 만든 띠를 아기의 머리에 둘러주었다. 추측컨대 디오니소스의 머리에 뿔이 있는 이유는 사랑을 나누는 동안 자신의 모습을 황소로 바꾸곤 했던 제우스의 습성 때문인 것 같다. 제우스의 바람대로 헤르메스는 소리 소문 없이 이 아기를 세멜레의 언니인 이노(Ino)에게 데려다 주었다. 이노와 오토노에(Autonoe), 아가베(Agave)는 세멜레와는 자매간이었지만, 처녀의 몸으로 임신한 것을 두고 모두 그녀를 따스하게 대해주지 않았다. 제우스는 혹시 이노에게 속죄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갓 태어난 조카를 양육시키게 한 것은 아닌가…?
헤르메스는 디오니소스를 데려왔을 때 이노는 역시 갓 태어난 자신의 아기 멜리케르테스(Melikertes)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헤르메스는 세멜레의 연인이 정말로 제우스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디오니소스가 세멜레의 아들이며, 세멜레가 불에 타 죽었을 때 불구덩이 속에서 구해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당부를 전해주었다. 즉 디오니소스를 여자처럼 키워야 하며, 실내의 여자들이 지내는 구역에 있게 하고, 해가 있는 동안에는 특히 이를 명심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야 디오니소스에 대한 어떤 이야기라도 헤라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노는 디오니소스를 멜리케르테스(Melikertes)의 양 쌍둥이로 받아들이고, 둘에게 한쪽씩 젖을 물려주었다. 그녀는 양모로선 안성맞춤이었다. 테베에서 멀지 않은 패페스티온(Laphystion) 산 위에 근사한 집을 갖고 있는데다가 보이오티아의 왕인 아타마스(Athamas)가 그녀의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디오니소스가 실내에서 지내는 것을 별로 싫어하지 않았고, 그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그가 어디에 있든 방안을 환하게 밝혀주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후에 밤새도록 이어지는 연회에서 사방을 환하게 밝혀주는 횃불을 디오니소스 숭배자들이 좋아하게 된 것처럼 디오니소스도 횃불을 사랑했다. 또 밤에 밖으로 나갈 때면 땅에 등을 대고 누워 그의 아버지인 제우스가 다스린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했다.
다행하게도 건강하게 자란 디오니소스는 미스티스에게서 심벌즈와 방울 같은 장난감을 갖고 노는 법도 배웠다. 마에나데스들의 춤에 예외 없이 등장하는 이 장난감들은 디오니소스 숭배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스티스는 디오니소스에게 사슴 가죽옷을 입히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마에나데스(Maenades)들이 몸에 걸친 것도 바로 이 사슴가죽이었다. 또 디오니소스의 이마에 포도 잎사귀로 만든 화환도 씌워 주었다. 후에 디오니소스교에서 의식행위에서 사용하게 되는 모든 것들이 그가 성장하면서 배운 것에서부터 차용된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디오니소스가 물건들을 치고 넘어뜨리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지혜를 발휘해서 디오니소스에게 커다란 회양풀 줄기를 쥐어 줬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나 친구를 때리거나 버릇없이 닥치는 대로 어른들의 복사뼈를 내리칠 때 디오니소스가 이 무기를 사용한다면 심하게 다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디오니소스는 두 해 동안 이노의 집에서 행복하게 지냈다. 누군가 헤라에게 이를 고자질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이 먹은 사티로스 중 한명인 세일레노스가 어린 디오니소스를 안고 있다. 간통으로 만든 아이를 자기 아내 헤라의 분노를 피하기 위하여 디오니소스에게 부탁하여 요정들에게 양육을 맡겨 달라고 부탁한다. 17세기 프랑스 최고의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의 대작으로 등장인물만 아홉 명이다. 맨 앞 아래 두 아이가 있다. 한 아이는 붉은 천위에 늘어져 있다. 한 아이는 등을 대고 누웠고 다른 한 아이는 술통에 기대어 허공을 바라보며 누웠다. 붉은 천위에는 술 쟁반과 술잔도 놓여있다.
위로는 어린 디오니소스가 님프에 기대어 서 있다. 그리고 잠이 든 젊은이 앞에 포도나무 화관을 둘러쓴 사티로스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그는 소뿔 잔에 담긴 포도주를 마시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왼쪽에 등을 보이는 사람이 어깨에 포도가 담긴 통을 지고 있다. 오른쪽으로 석양의 시간에 한 사람이 등이 보인다. 무대는 저녁 석양의 시간이다. 풍경으로 전체가 담겨있다.
오른쪽으로 멀리 산이 놓이고 사람들의 뒤로는 나무숲이 배경이 된다. 풍경가운데 담긴 사람들과 석양의 따뜻한 빛이 고요함과 멜랑콜리를 묻어낸다. 그림의 구도는 피라미드 구도로 고전적인 회화의 일반적인 경향을 보여준다. 님프의 팔과 디오니소스의 자세와 반대편으로 사티로스의 오른팔이 삼각구도의 틀을 세웠다. 작품의 주제가 되는 디오니소스가 삼각 구도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주거가 일정치 않다 그는 방랑객의 신이다. 그의 흔적은 어디에 가나 나타난다. 그는 인간에게 놀라운 선물을 하였다. 포도주를 만드는 포도를 선물하여 취기를 불러일으켰다. 술의 효과는 사교적으로 만들고 자비심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사람을 흥분되게 한다. 평화를 일으키고 애호하며 문명을 발전시킨다.
그는 홀로 다니지 않는다. 항상 단체로 움직인다. 그의 동행으로는 나귀에 올라탄 말귀를 배불뚝이 세일레노스(Sylene)이 있다. 세일레노스는 나이가 들었고 디오니소스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염소 발에, 말 꼬랑지에 뾰족한 귀를 가진 사티로스(Satyres)가 있고 공작새의 껍질을 뒤집어 쓴 여인들 메나드(menades)들이 있고 떡갈나무 잎과 소나무 가지와 송악으로 머리를 쓴 여인들 메나드…, 솔방울을 단 지팡이를 들어 올리고 디오니소스의 지팡이를 높이 쳐들고 춤을 춘다. 모든 신의 광기에 잡혀 수행하며 절름거리고 있다.
디오니소스 자그레우스(Dionysos Zagreus)의 설화
그리스 신화에서 별칭이 많기로 유명한 디오니소스(Dionysos)는 ‘영혼의 사냥꾼’, ‘잔인한 사냥꾼’이라는 뜻의 ‘자그레우스(Zagreus)’라고도 불린다. 그야말로 잘못 마신 술은 영혼의 사냥꾼이자 잔인한 본성을 일깨우는 마약과도 같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신화에서 자그레우스는 ‘소년 신’이자 ‘전원의 신’으로 묘사된다. 디오니소스의 별칭 중 하나가 자그레우스이지만 반대로 자그레우스를 ‘첫 번째 디오니소스’라고 부른다. 자그레우스를 이렇게 부른 데는 소년 신 자그레우스에 얽힌 끔찍한 신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난봉꾼 제우스의 불륜 행각은 신과 인간을 넘나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자기 딸마저도 겁탈하는 패륜적 행각도 마다하지 않았다. 제우스는 그의 누나 데메테르(Demeter)와 사이에서 태어난 페르세포네(Persephone)도 겁탈하였다. 페르세포네의 미모에 반한 제우스는 뱀으로 변신해 패르세포네와 결합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자그레우스였다는 것이다. 아마도 신화세계에서 디오니소스만큼 탄생에 비화가 많은 것은 없을 것이다.
페르세포네(Persephone)는 주신(主神) 제우스와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의 딸이며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Hades)의 아내이다. 페르세포네는 뉘사의 계곡에서 님프들과 꽃을 따던 중 하데스에게 붙잡혀 지하세계로 끌려가 강제로 지하세계의 여왕이 되었다. 어머니 데메테르는 딸이 유괴된 사실을 알고서 슬퍼한 나머지 땅의 추수와 풍작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고, 그 결과 기근이 널리 퍼졌다.
그래서 제우스가 개입하여 하데스에게 페르세포네를 풀어주어 어머니에게 돌아가게 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페르세포네는 지하 세계에서 석류 씨를 몇 알 먹었기 때문에 완전히 풀려나지는 못하고 1년의 2/3은 어머니와 보내지만, 1/3은 하데스와 지내게 되었다. 페르세포네는 한 해의 1/3은 지하 세계의 여왕으로서 하데스와 함께 지하 세계를 지배하고, 2/3은 지상에서 어머니 데메테르와 지내게 되었다.
페르세포네나 코레(Core, 씨앗)가 해마다 4개월을 지하세계에서 보낸다는 이야기는 쟁기질하고 씨를 뿌린 후 가을비로 되살아나기 전인 추수 후 한여름의 황폐한 모습의 그리스 들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페르세포네는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자그레우스(Zagreus)의 오르페우스적 신화에도 나타난다. 자그레우스는 어린아이일 때 티탄 족들이 찢어 죽였다고 한다.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의 하데스에게 납치당해 그의 아내가 된 뒤 그녀의 어머니 데메테르의 간절한 소원으로 지상으로 올라올 때 하데스는 그녀에게 석류를 먹이는 주술을 베푼다. 이때의 석류는 사자(死者)의 열매이자 그 알알이 터지는 씨앗으로 인해 임신, 혹은 부부애를 상징하는 열매이다. 페르세포네는 이 석류를 먹음으로서 하계에 묶이게 되었고, 디오니소스를 임신하여 출산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페르세포네의 무의식 세계는 미계발 상태의 잠재성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디오니소스는 아버지가 하데스 또는 석류열매가 되고 어머니는 세멜레가 아닌 페르세포네가 된다.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 필자 남태우 교수 경력:▴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오픈엑세스포럼회장▴한국 문헌정보학교수협의회장▴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한국도서관협회장▴중앙대학교 명예교수(현재)▴현재 건전한 음주문화 선도자로 활동하고 있음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