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는 고급스럽게, 막걸리는 맛난 것만, 안주는 푸짐하게
‘칵테일 막걸리 빠’에 가보셨나요, 한 번 빠져 보세요
서울 압구정동 부근의 ‘칵테일 막걸리 빠’는 지역에 맞게 타깃과 분위기가 명확하다. 30~50대의 중장년층이 럭셔리한 분위기에서 편하게 즐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곳 이미옥(李美鈺) 사장은 순전히 막걸리에 빠져 막걸리 바를 오픈한 경우다. 쓴맛 때문에 술을 싫어한 그였다. “도대체 쓴 걸 왜 마실까”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유난히 쓴맛을 잘 감지하는 미감(味感)도 한몫했다. 친구들과의 모임 때 술이 끼면 가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막걸리 한 모금에 생각을 바꿨다. 작년 초 친구와 함께 어느 포장마차를 찾았다. 친구는 그에게 막걸리를 권했다. 당연히 “제정신이냐?”며 눈을 흘겼다. “싫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계속 권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한 모금 꿀꺽했다. “뭐 이렇게 맛있어.” 그러곤 한 병을 더 시켰다. 대략 2ℓ를 혼자 마셨다. 그가 마셨던 건 ‘바나나칵테일막걸리’였다.
손품 발품 팔며 막걸리 바 구상
집에 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썩 괜찮은 경험이었다. 내가 마실 정도면 누가 마셔도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곧 “이건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으로 이어졌다. 성공을 직감(直感)한 것이다. 그는 이미 액세서리 무역으로 꽤 성공한 사업가다. 그간 실패의 경험도 없었다. 그런 자신감도 한몫 단단히 했다.
그때부터 막걸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이나 인터넷 등으로 손품을 팔았고, 그와 동시에 발품 팔며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막걸리 바를 구상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하나둘씩 준비해 나갔다. 작년 5월, 칵테일 막걸리 빠는 그렇게 탄생했다.
“압구정동을 비롯해 홍대, 건대 등의 막걸리 바나 막걸리가게를 죄다 훑었어요. 몇몇 막걸리 동호회에도 가입해 적극적으로 참석했죠. 그러는 와중에 정말 많이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막걸리 바의 밑그림을 완성했죠.”
그는 우선 커피숍처럼 분위기를 편하고 밝게 하기로 했다. 본인이 어두운 걸 싫어하는 탓도 있지만, 막걸리에 대한 인식을 한층 끌어올려보자는 의도가 더 컸다. 그는 “사업차 일본이나 미국, 대만 등에서 바이어가 오면 이곳에서 접대를 하는데, 그들에게 격 떨어진다고 느끼게 하기 싫었다”고 했다. 그 다음으로 주목한 것이 바로 안주다. 대부분 막걸리 바의 안주는 퓨전에 가깝다. 양도 많지 않다. 사실 여러 막걸리 바를 다닐 때마다 “옛날 우리 주막처럼 싸고 맛있는 안주를 좀 더 푸짐하게 주면 안 될까?” 하는 궁금증을 계속 머리에 담았다. 맛 역시 한국인이 맛있다고 느낄 정도면 외국인에게도 충분히 먹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그렇게 했다. 지금의 주방 아주머니는 그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해서 모신 분이란다. 말나온 김에 김치전을 얻어먹었다. 한참을 말없이 먹기만 했다.
트위터 ‘막소당’ 당주로 활동
이 사장은 이 바를 오픈할 즈음 트위터에 ‘막걸리소믈리에당’(막소당․twitter@gokoroni/markgolly)을 만들어 지금까지 ‘당주’로 활동 중이다. 얘기 중에도 쉴 새 없이 ‘당원’들과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회원 수만 450명에 육박하며, 서울․수도권 핵심 멤버만 30여명에 이른다. 막소당 ‘번개 모임’ 시엔 12~15명은 꾸준히 참석하는데, 대부분 아지트인 이곳으로 모인다.
‘오늘의 추천 막걸리’ 눈길
6시쯤 방문해 촬영하던 중 생각보다 일찍부터 손님이 들기 시작했다. 찾은 날이 월요일이어서 비교적 한산한 듯 했지만 그래도 손님은 계속 이어졌다. 이곳을 찾는 손님 중 거의 반 정도는 예약을 하고 온다. 목요일과 금요일이 가장 피크다. 테이블 치우느라 정신없을 정도다.
앞서 말했듯이 이 바는 30대부터 50대까지의 중장년층이 타깃이지만 젊은 유학생부터 중후한 신사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찾는다. 젊은 층은 밝고 깨끗한 분위기가 맘에 들어서인 듯하고, 중장년층은 무엇보다 막걸리와 음식 맛 때문인 듯하다.
이곳에선 전국의 여러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이 사장은 정말 맛있는 막걸리만 손님들에게 선보이고 싶어 한다. 가끔 한 손님이 “어느 지방에 갔더니 ○○막걸리가 괜찮더라”는 말을 하면 그 즉시 알아내 주문한다. 맛이 좋아 선택한 막걸리라도 품질에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가차 없이 폐기시킨다. 이곳에서 눈에 띄는 건 ‘오늘의 추천 막걸리’. 그날그날 막걸리 코스를 정해놓고 보드에 적어놓으면 손님들은 이를 참고한다. 예를 들어, 하얀연꽃-미담-입장-배다리 막걸리(A코스) 순으로, 또는 춘향-월향-소백산-알밤 막걸리(B코스) 순으로 마셔보길 권하는 식이다. 칵테일로는 바나나․딸기․블루베리 칵테일막걸리가 인기다. 누군가 이곳에서 바나나칵테일막걸리를 마셔보곤 또 다른 막걸리 바를 꿈꿀지도 모를 일이다.
사족을 달자면, 이 바에서 얻어진 수입금은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된다. 적자(赤字)를 본 달에는 이 사장이 보태서라도 기부를 건너뛰지 않는다. 그는 매주 일요일이면 양로원이나 보육원에 가서 자원봉사를 한다. 그래서 매주 일요일에 이곳은 영업하지 않는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3-28 B1 ☎02․546․55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