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酒동행
돈이 없어도 로마네 콩티
문 경 훈 교사(지혜학교)
‘2억 5000만 원짜리 위스키도 9100만원 와인도 다 팔렸다’, 하루를 뉴스로 시작하는 내 눈에 띈 오늘의 첫 번째 기사였다. 대한민국에 돈 많은 사람 참 많다고 무성의한 감탄을 한 번 내뱉긴 했지만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함에 따라 한국 내 와인 시장의 규모는 더뎠을 지언정 코로나 이전까지도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코로나로 인한 홈술족의 증가와 MZ세대 특유의 ‘FLEX’ 소비문화는 기존의 소주·맥주 소비량의 감소를 불러온 대신, ‘프리미엄’ 주류시장의 매출액 상승을 불러일으켰다. 전통주 위스키, 와인 등이 프리미엄 주류에 속할 텐데 그 중 와인 시장의 성장률이 무시무시하다.
2021년 11월 기준 수입액이 전년도에 비해 53%나 증가했으며 그 금액은 1조원을 웃돈다. 금양이나 신세계L&B와 같은 대기업에서는 더 많고 더 다양한 가격대의 와인을 선보이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롯데에서도 보틀벙커와 같은 대규모 매장을 연이어 오픈하며 승부수를 띄우는 모양새다.
기사에 소개된 9100만원 상당의 와인은 그 유명한 ‘로마네 콩티’ 2006과 2013 빈티지의 두 병이다. ‘로마네 콩티’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 본 로마네 마을의 그랑크뤼(특급) 등급에 해당하는 밭으로 현재 이 밭은 모두 DRC(Domaine de la Romanée-Conti)가 소유하고 있다.
DRC는 이 밭에서 피노누아 품종을 이용하여 밭 이름과 같은 ‘로마네 콩티’를 한정 생산 중이다. ‘로마네 콩티’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의 대명사로 꼽히는 것은 그 철저한 품질관리와 희소성, 수요와 공급의 경제적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가격대가 기본적으로 천만 원부터 시작이기에 최고가를 자랑함은 두말할 것도 없고 허영만 화백의 식객 89화에도 프랑스인 바이어의 입을 통해 “프랑스 사람들도 로마네 꽁띠에 가면 기도를 합니다. ‘로마네 꽁띠 값이 떨어져서 우리도 마실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대사가 등장할 정도다.
여기저기 따온 짜깁기에 불과한 지식이지만 그래도 아는 체 할 수 있는 이유는 필자가 요즘 와인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얼마 되지 않는 수입의 대부분을 고스란히 와인에 투자한 지 좀 됐는데 재밌으면서도 요즘은 하필 와인에 빠져버린 것을 후회 중이다.
이게 종류가 좀 많아야지! 처음엔 국가, 그다음엔 품종, 그 다음엔 밭, 생산자 거기에 빈티지까지 따지려면 한 세월을 마셔도 모자랄 텐데 전문가들이 맛있다고 추천하는 와인들은 또 왜 그리 비싼건지 한 병에 대충 100만 원 이상은 잡아야 할 지경이다.
경제력이 뒷받침된다면 일도 아니겠지만 문제는 내가 가난하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여유로울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한 직업을 선택한 것이겠지만…. 하지만 그것은 내가 간절히 원한 길이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황현산 선생은 산문집『밤이 선생이다』에서 30만원으로 사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 있다. 30만원으로 사는 시인(詩人)은 명예롭고, 친구가 많고, 그 친구들은 그를 사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기에 성공한 사람이라고 선생은 얘기했다.
뒤늦게 안 이 이야기를 난 좋아한다. 한국의 힙합가수 뱃사공은 2집 ‘탕아’로 힙합부문에서 16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실력파 뮤지션이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대중적인 인지도의 부족으로 궁핍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각종 막일을 하면서도 음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결국 2집으로 대중과 평단의 인정을 받아냈다. 그의 2집 수록곡 ‘돈이 없어도’는 뱃사공 자신의 이야기로 돈보다 중요한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명곡이다.
처음엔 이 곡을 소개받았을 땐 그렇게 와 닿지 않았지만 이제는 좀 달라졌다. ‘사람들은 왜 돈을 더 중요시 생각해, 나의 마음 보다 너의 마음보다 중요한 건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라는 직설적인 메시지나 ‘내가 돈이 없어도~’라며 체념한 듯 반복되는 멜로디 라인의 중독성이 좋다. 그 외에도 어릴 때 감명 받았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 이야기,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이나 마리아 수녀회 등 수도자들의 청빈의 이야기를 난 동경했다. 근데 막상 가난을 내 삶으로 끌어들여왔더니 안빈낙도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님에 끙끙대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가난과 친해지자고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되뇌일까.
여튼 그런 이유로 하루하루 와인과 삶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중인 요즘이다. 혹자는 술을 끊거나 대충 마시라고 말하지만, 가난하다고 취향조차 가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돈이 없어도 로마네 콩티는 마시고 싶다.
이 글을 쓰기 며칠 전 경제력에 제법 여유가 있는 동생이 비싼 와인을 사준다고 연락이 왔지만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못난 자격지심이었을까. 가난하지만 행복하다거나, 가난을 즐겨보겠다거나, 가난 속에서 나 역시 삶의 여러 가치를 발견했다는 내용으로 글이 끝났다면 멋있었을 텐데 솔직히 난 아직 그 정도 경지엔 이르지 못 했다. 거짓말은 못 하겠고 나의 가난과 친해지기는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살아 갈수록 모르겠다. 머리아프니 일단 오늘은 와인 한 병 마셔야지.
◇ 필자 문경훈
▴1990년 출생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졸업▴한국전통주연구소 가양주반 수료
▴한국가양주연구소 전통주소믈리에 자격 취득 ▴한국가양주연구소 명인반 수료▴(현) 지혜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