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명의 술 여행
지역 양조장이 살아남는 방법
강릉주문진 양조장을 찾아갔다. 강릉의 양조장 5군데 중에서는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강릉시 시장점유율에서는 국순당, 정선아우라지 다음으로 3등을 하고 있었다. 강릉시에서 1등을 했던 강릉탁주합동이 휴업을 하면서, 강릉시 양조장중에서는 1등을 하게 되었지만, 외지 양조장의 마케팅에 밀려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는 못하다. 춘천의 경우는 소양강도가, 춘천양조장이 있지만, 장수 막걸리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제는 냉장차를 앞세우고, 대량생산체제로 생산단가를 낮춘 대형 막걸리 회사들이 전국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맹렬히 뛰고 있다. 막걸리 해외수출이 줄어들면서 내수시장을 좀더 치밀하게 지배하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또 다른 변화로, 시골 동네가게들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동네 양조장의 막걸리를 볼 수 없게 되었다. 편의점은 본사에서 배송한 막걸리를 받다보니, 대량유통하는 대형업체의 막걸리만 취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제 지역 양조장들은 살아남는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지 않으면, 매출이 줄어들어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신선한 막걸리공급
동네 막걸리양조장의 최대의 장점은 신선한 막걸리의 공급이다. 대형업체들이 아무리 냉장차로 유통한다지만, 이송하는 거리와 시간을 따졌을 때 아침에 배달하는 막걸리보다 더 신성하기는 어렵다. 새벽4시에 나와서 일하기 시작하여, 아침 10시면은 배송까지 끝나는 구조가 고전적인 막걸리양조장의 노동 방식이었다. 그 신선함을 무기로 삼았던 것은 예나이제나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 방법은 예전에 해왔던 방식이라 새로운 무기는 아니다. 다만 그 장점을 더 강화시키고 홍보하는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역 특산물 차별화
두 번째 동네 막걸리양조장들의 지역성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 지금까지는 그 지역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냥 동네양조장일 뿐이었다. 동네 아저씨가, 동네 사람들을 써가면서 동네에 배달했기 때문에 동네양조장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동네 양조장이라고 말하기 곤란해졌다. 더욱이 양조장 주인이 바뀌고,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고, 수입쌀을 쓰는 경우라면, 동네 양조장이라고 할 것도 없다. 비록 주인이 바뀌었다하더라도, 그 지역의 농산물을 사용하여 술을 빚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 지역의 특산물로 오미자가 있으면 오미자를 쓰고, 찹쌀이 있으면 찹쌀을 써서 그 지역과 긴밀한 유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그래야 애향심에 실어서, 지역술을 팔 수 있다.
지역축제와 연계
세 번째 동네 막걸리 양조장들은 지역의 관광지와 지역 축제와 잘 연계되어야 한다. 지자체 단체장을 선거로 뽑게 되면서, 지자체들은 지역을 특성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진행해 왔다. 그러면서 활성화된 것이 관광산업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디를 가든지 볼 것이 있고, 시간을 보낼만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지역 축제는 1천개가 넘어서 이를 조정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지역 축제장과 관광지에 지역 술이 결합되어야 한다. 이 문제를 풀면 작은 양조장은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양조장을 찾아갔더니 하루에 20상자(1상자 20병, 모두 400병)를 팔면 양조장을 운영하고, 30상자를 팔면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50상자를 팔면 적금을 들고, 100상자를 팔면 양조장을 증축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의 유명한 전집(파전, 녹두전을 파는 집)에서는 하루에 막걸리 50상자를 파는 곳이 있다. 유원지나 관광지에 막걸리를 잘 파는 집은 작은 양조장 하나를 먹여살린다.
찾아가는 지역 사랑방 역할
네 번째, 예전 동네 양조장이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노릇을 해왔듯이, 사람들이 찾아오는 양조장이 되어야 한다. 이는 모든 양조장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제조 중심의 양조장, 외부 손님들이 찾아오면 위생이 걱정되는 양조장의 경우는 당장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전자를 들고 술을 받으러갔던 양조장, 그때 살짝 양조장 안을 들어다보면 밥 찌는 냄새 술 익는 냄새가 풍겼던 양조장의 분위기를 되살려주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좀더 확장시켜 ‘구경 가능한’ 양조장, ‘찾아가 볼만한’ 양조장으로 재탄생되어야 한다.
경북 예천의 유명한 명소인 물동이동 마을인 회룡포 근처에 용궁양조장이 있다. 이곳은 언제 찾아가더라도 주인이 손님을 반겨, 한 되씩 술을 내준다. 벽돌 2층집 양조장인데, 담쟁이 넝쿨이 가득 건물을 타고 올라가 있다. 담쟁이가 주인인지, 동네 사람이 주인인지 모를 양조장이다. 예약하지 않고도 찾아가 막걸리 이야기를 나누고 한잔 맛보고 올 수 있는 곳이다. 양조장 대표는 조만한 주변사람들의 조언을 받아 양조장을 사회적 기업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했다. 열린 공간으로서, 지역 문화의 중심으로서 양조장의 옛 명예를 회복하는 노력이 엿보였다.
2013년에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 공모전을 통해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양조장,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양조장 두 군데를 선정하였다. 향후 순차적으로 30군데의 양조장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양조장을 생산과 유통 서비스까지 포괄하는 6차산업으로 재배치하려는 의미있는 시도이다.
고급화된 막걸리 개발
다섯 째 선물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차별화되고, 고급화된 막걸리가 등장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소비자가 술을 받으러왔다면, 이제는 술이 소비자를 찾아나서야 한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주전자를 들고 술심부름을 왔지만, 지금은 심부름 보낼 아이들도 드물어진 세상이 되었다. 지역의 이름을 달고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선물로 보낼 수 있고, 기념으로 사갈 수 있는 술이 만들어져야 한다. 1000원대의 값싼 술로서는 한계가 있다. 좀더 가치있는 막걸리, 속성으로 빚은 술이 아니라 좀더 깊은 맛을 지닌 막걸리들이 등장해야 한다.
국세에서 지방세로 전환
여섯 째 지역 술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으로 주세를 국세로 두지 말고 지방세로 돌리는 방안이 있다. 주세가 지방세가 되면 지방자치단체들이 더 전략적으로 지역술 정책을 펼치게 될 것이다. 국세를 거둬 지자체운영자금을 충당해주는 구조이니, 주세를 지방세로 돌리는 것은 발상전환만 하면 가능할 일이다.
새로운 네트워크 관리 필요
일곱 째 지역 양조장들도 이제는 새로운 방식의 네트워크 관리가 필요하다. 이미 동네라는 네트워크를 통해서 한 시절 호황을 누렸다면, 이제는 그 네트워크이 전파와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내 양조장을 알아주는 사람, 내 술을 늘 맛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택배를 통해서 얼마든지 그들에게 술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고, 그들이 중요한 홍보맨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술은 한 지역의 문화와 곡물과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다. 똑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디에서 술을 빚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지역 양조장들이 지역성을 얼마나 어떻게 강화시켜낼 것인가가 향후 지역 양조장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관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