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우리말 우리이야기]
평소 얌전하다가도 술만 마시면 重言復言…앵무새型
주당들이여 당신은 어떤 유형에 속하는가?
예로부터 술은 기호품일 뿐만 아니라 생필품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자고이래로 각종 전래와 제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기(禮記)에서는 ‘술로 예를 이룬다(酒以成禮)’라 했고, 한서(漢書)에서는 ‘술은 하늘이 내린 아름다운 선물이니(酒者, 天之美祿也)’,온갖 의례모림은 ‘술이 아니면 행하지 못한다(百禮之會, 非酒不行)’라고 엄숙하게 기술되어 있다. 또한 ‘술은 모든 약의 우두머리(酒, 百藥之長也)’라는 말도 있다. 도연명이 술을 일러 ‘망우물(忘憂物:모든 근심을 일게 해주는 물건)’이라 했고, 이백은 술로서 ‘만고의 수심을 녹여나 보세(銷萬古愁)라고 한 것은 술은 예나 지금이나 없어서는 안될 귀한 음식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술은 곱게 마시고 곱게 취해야 하거늘 진탕마시고 이리뒹굴고 저리 뒹구는 술주정꾼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자고로 술이 취한 상태를 분류해 보면 조심해야 할것이 한둘이 아니다.
조선조 세종 때도 ‘세종어제훈민정주(世宗御製訓民正酒)’가 있었다.나랏 술이 듕귁 빼갈에 달아 도수와르 서르 사맛디 아니할세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마시고져 홀배 이셔도 마참내 제 주량을 시러 펴디 못할 노미 하니라.내 이랄 위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참나무통 맑은 소주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 마셔 날로 취하메 편안케 하고져 할 따라미니라.
내용인즉, 중국 백주(배갈)는 우리 술보다 도수가 달라 이런 술을 마시는 백성을 어여삐 여겨서 새로운 소주를 만들어 마시도록 한다는 이야기다.
술을 마시면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 취하고 또 취하다보면 갖가지 유형으로 취한 상태가 나타나는 법인데 이 또한 재미있다. 술 마시기전에는 점잖기가 하늘을 찌를 만큼 도도하던 사람도 술이 점점 들어가면 혀가 꼬이고 옷매무새가 흩으로지면서 급기야는 망가지게 된다. 일찍이 16세기 영국의 극작가 토머스 나시가 술에 취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 아홉 가지 타입으로 분류한바 있다. 주로 동물에 비유한 것이 많은데 이것을 읽는 주당들은 다음 유형 중에서 어떤 유형일까? 한번 감별하시기를.
▲원숭이형:팔짝 뛰기도 하고 노래하며 춤도 춘다. 점점 더 신명이 나면 시끄럽게 떠들어 댄다. 가라오케의 마이크를 잡고 놓지 않은 것도 이 유형이다.
▲사자형:사자처럼 난폭해진다. 남에게 달려들기도 하고 시비를 걸어 주위를 괴롭히기도 하는 유형이다.
▲양형:이치만 따지려 들고 고상한 토론을 좋아하지만, 잘 들어 보면 조리가 없이 횡설수설하는 유형이다. 양이라는 동물은 성질이 이상해서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로 고약한데가 있다. 여름철에는 누구는 시원한 데서 자고 누구는 더운데 잘 것인가 하여 공기통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붙어서 자는 습성이 있으며, 또 한 겨울에는 누구는 따스하게 자고 추운데 잘 것인가를 시샘하여 띄엄띄엄 떨어져서 잠을 자는 습성이 있는 고약한 성질의 동물이다.
▲염소형:동물적인 욕정에 지배되어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거나 유혹하러드는 유형이다.
▲돼지형:술이 들어가면 금세 몽롱해져서 잠들어 버린다.
▲여우형:취한 척 하지만 실은 거의 취하고 있지 않다. 이런 사람에게 자칫 본심을 털어 놓았다가는 큰일 난다.
▲쥐 새끼형:술을 마시고 난 뒤 술값 계산시 온데 간데없이 흔적 없이 사라지거나 음주 중 적당한 때 인사도 없이 도망가는 유형.
▲聖 마틴형:성 마틴은 애주가의 수호신이다. 취했는데 안 취한 것으로 알게 하는 사람은 이 유형에 속한다.
▲울보형:마시기만 하면 우는 타입이다. 이에 해당되는 동물은 없는 것인가?
이렇게 유형별로 분류해 보와도 술 취한 모습은 별로 좋은 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어느 유형에 속한다고 선뜻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술 마시고 “나 술 취했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분류표를 짜보자. 술이 취한 상태를 삼단계로 구분하고 각 만취상태에서 유형을 찾아보자.
▣ 만취유형Ⅰ
△심봉사 눈뜨는 유형:이 유형의 주정꾼들은 술에 취하면 숨겨져 있던 끼가 발산하는 형이다. 갑자기 탁자위에 올라가서 춤을 헤드벵 또는 상상도 못한 ‘람바다’ 풍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흐느적거리기도 한다. 보조를 맞추다가는 혼삿길이 막힐 수도 있는 무서운 유형의 술주정꾼이다. 곤드레만드레 형이다.
△초상집 아르바이트형:이 유형은 술만 마시면 우는 타입이다. 우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이유가 있어서 운다기 보다는 이유를 만들어 가면서 우는 유형이다. 절대적으로 회피해야 할 주정꾼이다. 그냥 울고 나면 시원한 걸 어떡해….
△숙취성 혼 혈형:술을 마시면 졸거나 자는 주정꾼이다. 주로 술자리에서 자는 형과 술집 주변에서 자는 유형으로 대별된다. 이 유형은 집에 가야 잠에서 깨기 때문에 실수로 뒤처리를 맡았다가는 땀을 바가지로 흘려야 한다.
△방랑시인 김삿갓형:술자리에서 잘 헤어졌다가도 다음날 만나면 밖에서 주로 잤다고 고백하는 유형이다. 택시를 태워보내도 중간에서 내리기 때문에 안심 할 수 없다. 주로 지하철 계단, 화장실, 공원 주차장, 또는 집 주변의 쓰레기 하치장 같은 곳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흔하다. 또는 공사장에 빠져서 실종사건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유형의 술꾼의 특징은 아무데서나 잘지언정 언제나 웃옷과 신발은 반드시 머리맡에 잘 정돈해 놓고 자는 경우가 많다.
△분노의 질주형:이 유형은 대책이 없는 막무가내 형이다. 술에 만취되면 이유 없이 뛰기 시작하면 혼이 날 경유에는 차도․중앙선․방파제·철길 등에서 스릴을 즐기기도 한다. 이럴 경우 그 사람의 안전을 위해 동료들도 같이 뛰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여 대형 사고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친구 따라 강남가야 하는 형이다.
△정의 용사형:술만 취하면 싸우는 유형. 주로 주변 사람과 많이 싸우며, 정의의 피가 끓어 분노가 북받치는 형태로 싸우는 이유는 안주발 세우는 사람에 대한 분노, 세상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서 옆 사람 치는 경우 등이 많으며,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전봇대나 아스팔트, 가계 간판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이 유형은 특이하게도 아침에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상영형:이 유형은 필름이 끊겼다는 말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골치아픈 점은 지난밤이 생각나지 않거나 꿈과 혼동되어 기억을 재편집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주위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평생 쓸데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유형이다.
△람보 또는 코만도형:가장 위험한 유형중의 하나. 주로 쓰레기통이나 자동차 사이드 미러, 동네 간판 등을 닥치는 대로 파손하며, 도망치는 수준은 거의 홍길동에 근접한 유형으로 주로 완전 범죄가 된다. 그러나 완벽이란 없는 법, 콘크리트로 만든 쓰레기통이나 사람이 타고 있는 자동차, 파출소 간판 등을 공격 목표로 삼아 경을 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 미소 속에 비친 그대형:특별한 이유 없이 실실 쪼개는 유형이다. 큰소리로 웃는 경우는 드물고, 주로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형태로 미소를 짓는다. 주로 알코올 끼가 허파에 들어가서 생기는 현상이며, 길거리에 다닐 경우 사람들이 실실 피한다.
△대중가수 지망형:술만 취하면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노래를 열창하는 유형이다. 주로 부르는 곡명은 자기 세대가 부르는 노래보다 한세대 이전의 노래를 좋아한다. ‘황성옛터’, ‘신라의 달밤’, ‘고래사냥’, ‘소양강 처녀’, 등이 대표적인 곡이며, 때로는 신곡을 발표하기도 한다.
△색즉시색(色卽是色), 공즉시색(空卽是色)형: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왕성한 정력을 자랑하며 쌕쌕쌕 쌕만 밝히는 술꾼들이다. 주색잡기의 전형이다.
▣ 만취유형 Ⅱ
▽무단 발포형:장소가 어디든 간에 무조건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본다.
▽안하무인형:술만 마시면 누구 할 것 없이 한 번씩은 시비를 걸어본다.
▽술 고문형 : 자신은 이리저리 빼면서 남에게는 빈 독에 물 붓듯이 술을 먹이는 타입.
▽청문회형:도무지 무슨 말인지 요점이 없이 횡설수설하며 나중에 기억이 나느냐고 물으면 ‘전혀 기억에 없다’고 오리발 내민다.
▽앵무새형:이는 술만 마시면 그렇게 얌전했던 사람이 재잘재잘, 수런수런, 증언 부언하는 술꾼으로 취중에 자아 도취되어 말이 많다.
▽타타타형:술만 마시면 웃어젖히는 형인데 주위사람들도 의식하지 않은 채 으하하하 으하하하 하고 파안대소한다. 한 잔 술 취중에 시원하게 웃어젖히는 타타타 형은 나름대로의 멋과 운치가 있다.
▽이만기형:이는 술만 마시면 싸운다거나 상대를 엎어 치는 형이다. 이런 유형은 술만 마셨다하면 옆 사람과 언쟁을 벌이거나 지나가는 생면부지의 사람하고도 시비가 붙는데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니 요주의 인물이다. 꼭 누구와 시비를 걸어야만 술이 깨는 부류인데 이는 술을 잘못 배운 주졸 중에 주졸이며 소인배의 짓거리이다.
▽매미형:이는 술만 마시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다. 이상하리만치 술을 마시는 주석에서나 집에 가서까지 뽕짝에서 가곡, 팝송에 이르기까지 음치(音治:음을 다스리는 사람)인 가창력을 십분 발휘하여 메들리로 불러댄다.
▽스프린터형:술만 마시면 그저 달리거나 걷는 형이다. 술을 마시고나면 집에까지 달리거나 집에 도착해서도 밤새 집 주위를 뛰어다니며 술을 깨는 형이다.
▽빙글빙글형:이는 술만 마시면 꼭 카바레나 나이트클럽 등에 가서 춤을 추려는 사람인데 상대가 남자든 여자이든 누구든 껴안고서 플로를 빙글빙글 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술꾼인데, 이런 형은 술을 매일 마실 경우 자칫 플레이보이나 제비족으로 변신할 우려도 있다.
▽으악새형:이는 술만 마시면 얼굴을 탁자에 묻거나 뒤로 젖히고 마냥 울어대는 형이다. 세상살이에 정한이 맺힌 삶이거니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서 오는 현상을 감당 못하여 우는 지식인도 있지만 어떤 이는 술버릇의 일종이다.
▽뺑소니형:이는 술만 마셨다 하면 도중에 아무도 모르게 살짝 빠져 나가 버리는 형이다. 이때 술값이 없어서 빠져나갈 경우에는 얌체 형에 속하고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서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삼십 육계 하는데 이는 그래도 예의를 아는 실속파다.
▽애교파형:이는 술만 마시면 괜히 옆 사람의 허벅지를 꼬집는다든가 애정적인 애교적인 말로 퍽 호감을 갖게 하는 형인데 남성으로서는 다소 경박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 형은 주물럭형과는 상사형이다.
▽주물럭형:술만 먹었다 하면 옆에 앉은 파트너를 주물러 대는 형, 못살게 굴기도 한다.
▽색시집형:이는 술만 마시면 그 힘찬 낡은 피질(정력)의 주책없는 발동으로 색시 촌을 찾는 색주가이다. 이것도 일종의 술버릇인데 술만 마시면 집은커녕 꼭 색시 촌을 찾아 밤새 기염을 토해야만 술이 깨는 형일 수도 있다.
▣ 만취유형 Ⅲ
▷다변형:속에 있는 말을 가지지 않고 다한다.
▷숙면형:술만 몇 잔 들어가면 고개를 숙이고 잔다,
▷울보형:술을 마시면 세상의 슬픔을 다 끌어안은 사람처럼 대성통곡을 한다.
▷만용형:같이 술자리를 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주정뱅이로 술만 들어가면 폭언과 폭력을 휘두른다.
▷쾌활형:보통 때는 평범한 사람이 술을 마시면 아주 쾌활해진다.
▷분위기 조성형:좌중의 분위기를 재치 있게 리드하며 다른 사람들이 기분도 좋게 만든다.
이밖에도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덮어놓고 퍼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고주형’, 은근히 즐기는 ‘애주형’, 마실 줄 알면서도 애써 안 마시려 드는 ‘금주형’, 돈이 아까워 못 마시는 ‘엄살형’, 아예 소주병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중독형’, 술만 마셨다하면 몇 잔도 마시지 않고 ‘주정을 부리는 주정형’, 술잔만 들고 ‘잔소리만 하는 유형’,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리는 ‘주비형’(酒悲型), 술에 취하면 그냥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고성대가형’, 접시를 받쳐 들라 하여 옥경(玉莖:남자의 생식기)을 꺼내 과시하려는 ‘노출형’ 그리고 술 따르는 여성을 괴롭히는 사디즘 등 별의별 기형이 산재한다.
<참고자료 : 남태우 교수(중앙대)의 ‘酒黨別曲’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