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위기의 시대를 진단하고,
새 정부의 주류산업정책의 방향과 업계,
소비자들의 대응과제를 생각해 본다(5)
趙聖基(아우르연구소 대표, 경제학박사)
(Surnggie Cho, PhD. of Economics. MPH.)
원주한살림, 이사장
살림농산, 대표이사
아우르연구소, 대표연구원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회장
한국할랄산업연구원, 공동원장
주세정책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유지되었다. 정부가 대형업체를 성장시키는 주류 과세, 주세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사실상 일제강점기 때부터다. 다른 산업이 별로 없었던 시절에는 주세만큼 국가의 효자는 없다. 베트남 보건정책관리들과 토의할 때 “왜 베트남에서는 그 많은 밀주를 잡지 않는가?”하자, 바로 “민생문제지죠…”라고 답변한다. 술에서 세금을 걷어서 쓰거나 밀주를 팔아 생계를 잇게 하는 것이 타 산업이 없을 때의 국책이 되었다는 것이다.
대형업체를 양성해서 주세를 걷자는 방식의 정책은 1909년 일제에 외교권을 강탈당한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 시대의 주세정책은 조선후기 전국적으로 영업 중이었던 영세주막의 대단위 몰락을 가져왔다. 이문이 많지 않은 수준에서 술이 식사에 곁들인 반찬과도 같았던 영세주막들에게 갑자기 높은 수준의 주세를 과세하자 대부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일제 때에도 주세를 많이 내고도 자신들의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소수의 전통주 업체들은 유지가능 하였다. 어디서나 자기 시장을 갖고 기술력을 확보한 업체들은 유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전체 주류산업 정책을 설명할 때 극히 일부의 상황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전쟁비용조달’에 혈안이 된 일제는 일반 주점에서 술 제조를 제거하고 과세가 용이한 대형 주류기업들을 기르는 정책을 선택한다. 일제는 당시 술이 돈이 되는 재화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고, 기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속식 대형 증류기를 도입한다. 술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고 기존의 업체들의 경영 수준으로는 경쟁하기 어려웠다.
해방 이후에도 정부가 추진하는 과세정책은 꾸준히 정부재원 조달대책으로 추진되었다. 6․25 이후 파괴된 산업 상황 하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정부설립초기와 경제개발 초기에는 일부 산업 위주의 성장정책이 국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내국세에서 중요한 비중을 주세가 차지했다. 건강도 아니고 농업발전, 민생도 아니고 정부와 산업, 기술개발, 인프라구축 등의 비용을 조달하는 근간이 주세가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은 업체들의 입장은 등한시되거나 무시되었고, 흉작이 들면 쌀로 술을 제조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도 구사되었다.
그 이후 소규모 전통주 업체들이 소멸하거나 위축되었다. 그렇게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나게 되었다. 나중에 다시 국산원료 사용이 허용되었지만 이미 극도로 영세해진 대부분의 전통주 업체들의 경쟁력을 복원하기란 쉽지 않았다. 주세정책이 민생과 무관하게 추진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염두에 두자는 것이다.
생산 분야와 달리 유통분야는 다행히도 중소규모의 업체들로 구성되었다. 사실상 99% 이상이 중소규모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생산부문 위주로 대형화를 추진하고 유통은 2차적인 주류 관련세 부문으로 관리한 때문이다. 그때는 주세가 규모가 컸고 부가가치 세액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술은 국세청에서 생산, 유통, 소비의 3단계의 연계체제를 유지하면서 생산과 유통을 주로 통제하는 정책이 추진되었다. 소비도 통제하고자 했으나 작은 식당들이나 구멍가게 등에서 주류를 취급하도록 하여 민생을 유지 시키고자 했다. 주류판매전문점은 초기에 준비한 적이 있으나 소매상에 의제면허를 주면서 포기되었다.
주류도매업체들은 소규모 영세업체들이 대부분이고 중규모이상의 업체들은 종합주류도매업 중 일부 업체들이나 가능하게 되고 발전했다. 소주와 맥주와 같이 규모가 큰 제조업체들의 술을 주로 판매했기 때문에 대형화가 가능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부 유통자본이 대형화되었고 물류, 창고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얼마 전 프랜차이즈 업체들에게 주류중개업 면허를 주자는 정부의 회의가 있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경우 소매부문에서 대형도매업체가 탄생하는 ‘과거의 원칙에서 벗어난 시대’가 도래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본다면 주류산업의 구조적 틀 자체가 바뀌는 사건이 되니 규제당국은 큰 틀에서 잘 검토해야할 일이다. 유통규제가 소멸할 정도의 큰 회의들이 자주 열리는 것을 보면 정부의 주류산업 정책이 유통업체의 면허 규제 자체를 포기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욱이 대형 물류업체들이나 플랫폼 기업들이 주류유통시장에 진입할 경우 기존 주류유통업계가 급속히 축소될 수도 있다. 가뜩이나 중소규모로 형성되어있는 시장에 대형업체들이 새로 진입한다면 기득권이 생기고 정부도 주류시장을 통제하기는 힘들어질 것이 예상된다. 근본적으로 술을 정부의 통제 하에 둘 위험물질이나 국민안전산업이라는 생각을 과연 정부가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창고나 물류, 통신판매, 자판기 활용, 정보화 플랫폼 업체 진입 등을 통해 주류유통 규제를 추가적으로 완화해 갈 경우 대다수 주류도매업과 영세골목상인이 함께 몰락하기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대형소매업은 그나마 유지될 수 있겠지만 소형 소매업체들은 소멸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주류유통마저도 드론 등 스마트 인공지능 기기를 사용하게 될 미래를 그려본다면 더욱이 그리 되는 상황이 명약관화하다. 과연 술도 그런 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것인가?
스마트폰이 나온 후 시계, 사진기, 필름, 나침판 등 앱이 개발된 사업들이 대부분 소멸했다. 디지털화와 기술혁신으로 새로운 대형유통업체들이 주류유통시장에 진입할 경우 기존 유통업체들의 소멸은 어쩌면 불 보듯 뻔 한 일이다. 그러니 유통분야의 추가 규제완화는 국민의 민생안전에 주안점을 둔 새 정부가 조심스럽게 선택해야할 정책분야다.
효율의 신과 정부가 손을 잡을 경우 발생할 시장의 급격한 변화 말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할 자유’는 아닐 것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 주류유통 분야는 벌써 수조원의 매출 감소를 경험했고 장기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2022년과 그 이후 시장이 더 위태로워질 상황이다.
주류산업 뿐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 년간 돈 중심으로 시장을 확장해왔다. 정책을 펴더라도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중요한 정책수단이었다. 주류경제학의 수련을 받은 경제학자들이 금융과 기획당국의 일을 맡았고 국가의 모든 정책에서 핵심이 금리와 정부지출을 움직여 그 효과로 시장을 조절했다. 경제학의 힘이었다. 심지어 건강정책, 환경정책, 에너지 정책, 각종 산업정책 등 주요정책들과 민생과제 역시 그 하부 체제에서 작동되었다.
주류산업 정책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산업의 비즈니스 관행도 돈이 중심이 되었다. 업체와 업체 간의 경쟁관리 방식이 리베이트로 연결되었다. 그 리베이트의 관행은 주는 측에서도 부담을 너무 키웠고 받는 측에서도 비정상적으로 과다한 사업규모를 유지하게 되었다. 경제와 시장성장기에는 그러한 관행이 시장을 과다하게 키우게 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리베이트는 시간이 가면서 그 규모가 늘고 줄 수 있는 업체 쪽으로 거래규모가 점차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만 정체 내지는 위축 기에는 같은 방식으로 시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성장기에 늘어나 업체들은 수축기에 심한 경쟁을 하게 된다. 대규모 불황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종합주류도매업의 경우 단순한 상식으로 보면 거래처가 멀리 생겼을 경우 자유경쟁상황에서 그 장거리 거래를 막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자주 발생하는 일도 아니고 모든 업체들이 그렇지 않을 때 자유경쟁의 효익을 배운 정책당국에서 규제를 완화하자는 주장을 할 때 거부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환경문제나 민생과제를 거론하다면 “그건 주된 이슈가 아닙니다.”라고 하고 만다. “시장의 근본원리를 믿지 않는 그런 주장은 경제학의 원리를 모르는 일에 불과합니다.”라고 고위당국자가 외치면, 관련부처의 업무는 그렇게 움직이고 만다. 그렇지만 주류산업을 둘러싼 저액의 당초 규칙은 또 다른 대안적 정책목표를 가지고 제정한 규제이다. 그 준칙이 만들어진 이유를 보지 않고 단순한 ‘일반적 경쟁준칙’을 기준으로 접근하고 규제를 풀고 편리한 거래를 허용하는 효용성 제고를 추구할 때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미 오래 전에 그렇게 되었다.
도매업의 사업범위를 면허발행 지역을 넘어서도록 허용해 주자 당초 정책적 의도와는 다르게 시장이 운용되게 되었다. 일부 업체들의 대형화와 함께 거래과정에서 법과 시행규칙 등을 위반하는 반칙기업들이 늘어났다.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새 시장에 진입하자면 기존의 공고히 구축된 거래관계를 반칙으로 뚫는 행위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경기가 좋아질 시기가 아니다. 경제가 수십 년간 꾸준히 악화되면서 생존을 위해 먼 시장의 거래처를 개척하려는 경쟁도 늘어났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