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36)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36)

 

남태우 교수

석류의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 로제티(Dante Gabriel Rossetti)의 <페르세포네(Persephone)>다. 석류를 들고 있는 페르세포네 앞에 있는 향로에 불이 타오르고 있다. 석류는 페르세포네가 무심코 먹은 과일로서 저승의 하데스의 아내를 상징한다. 석류는 탄생과 죽음, 소생, 자연의 순환을 상징했던 고대의 여신과 연관되어 있으며, 저승 세계의 여왕 페르세포네를 상징하는 과일이다. 또 석류는 대지 속에서 씨들이 부패하는 것을, 우주의 주기적인 소생을,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영원히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페르세포네 옆에 피어 있는 담쟁이넝쿨은 석류가 디오니소스의 피에서 탄생했음을 암시한다. 담쟁이넝쿨은 디오니소스에게 바쳐진 식물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석류는 생명의 기원이 죽음과 희생에서 오는 것임을 나타낸다. 화면 왼쪽 향로의 불은 저승을 암시한다. 그래서 페르세모네가 디오니소스의 어머니라는 속설과 무관하지 않다.

석류를 먹는 페르세포네

디오니소스의 육신이 이 지경으로 수난을 당했지만, 그 외할머니 되는 레아(Rhea)는 디오니소스를 구해내고, 육신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다. 그는 다시 살아난 것이다. 제우스의 부탁을 받은 페르세포네(Persephone)는 그를 오르코메노스(Orchomenos)의 왕 아타마스(Athamas)와 그의 아내 이노(Ino)에게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디오니소스를 여자아이로 위장시켜 여성들의 영역에서 기르도록 설득하였다.

그러나 헤라가 여기에 속을 리가 없었고, 아타마스 가문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어 벌하였으므로 아타마스 왕은 그의 아들 레아르케스(Arches)를 숫사슴으로 오인하여 죽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제우스의 지시를 받은 헤르메스는 디오니소스를 어린 염소(혹은 양)로 변하게 하여, 헬리코니스(Helconides)의 뉘사(Nysa) 산의 님프들인 마크리스(Macross), 뉘사, 에라토(Erato), 브로니(Brony), 바케(Becca)에게 양육을 맡겼다. 그들은 디오니소스를 매우 귀여워했으며, 동굴 속에서 벌꿀을 먹여 길렀다. 제우스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들의 모습을 천상의 별들사이에 나타내고 히아데스(Hyades)라고 이름했다. 디오니소스의 와인은 그 와인을 만든 곳은 다름 아닌 뉘사산이었다.

 

그는 전 세계를 방랑하였는데, 그의 스승 실레노스(Silenus)와 함께였고, 사튀로스(Satyros)와 미내드(Maenads, 열광한 여자, 화나서 날뛰는 여자, 술의 신 Bacchus의 시녀)로 구성된 군대 같은 집단을 동반하였다. 그들의 무기는 튀르소스(Thyrsos, 창대는 담쟁이덩굴이 감겨있고, 창대 끝에는 솔방울 모양의 물체가 달려 있는 창의 일종), 검(劍), 세르팡(serpent, 점박이 뱀), 그리고 공포를 퍼뜨리는 뿔 나팔이었다. 그는 포도덩굴을 가지고 이집트로 항해해 갔다.

 

이집트의 파로스(Paros)에서는 프로테우스 왕이 그를 환대했다. 디오니소스는 티탄 족들과 맞서 암몬 왕을 그의 왕국(암몬의 왕국이었으되 그를 추방하기도 했던)으로 복위시키려 했다. 디오니소스는 이를 위해 파로스 건너편 나일 강 삼각주의 리비아인들 가운데 아마존의 여왕들을 초빙하기도 했다. 이들은 디오니소스와 함께 행군하였다. 티탄족들에 대한 디오니소스의 승리와 암몬 왕의 복위는 수많은 그의 군사적 성공 가운데 최초였다.

 

그는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인도를 향하여 나아갔다. 디오니소스는 유프라테스에 이르러 다마스쿠스의 왕과 대적하였고, 살아 있는 채로 그의 가죽을 벗겼다. 그는 한편 담쟁이덩굴과 포도덩굴로 (강에) 다리를 놓았다. 이때 그의 아버지, 제우스가 보낸 호랑이가 디오니소스가 티그리스를 건너는 것을 도왔다. 그는 많은 적들과 마주친 끝에 인도에 도착하였고, 전 인도를 정복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포도재배를 가르쳤으며 법률을 주었고 큰 도시도 건설했다. 디오니소스 신화는 고대 그리스와 인도와의 교역을 시사 하는 신화이다. 또한 우리는 디오니소스 신화를 통해 고대 그리스 문화의 개방성을 알 수 있다.

디오니소스는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쫓고 있던 한 무리의 아마조네스(Amazones)와 대적하였다. 몇몇은 아르테미스 사원의 지성소를 차지했으며, 그들의 자손은 아직 거기에 살고 있다. 다른 몇은 사모스로 도망갔으나, 디오니소스가 보트로 그들을 추적해 많은 수를 죽였다. 그 전장은 ‘판하이마’라고 불린다. 플로에움 주위에서 디오니소스가 인도로부터 가져 온 코끼리 몇 마리가 죽었으며, 그들의 뼈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다음으로 디오니소스는 퓌리기아(Phrygia)를 지나 유럽으로 돌아왔다. 디오니소스의 할머니인 레아가 그를 미쳐 있는 동안 저지른 숱한 살인으로부터 정화하고, 신비 안에 입문시킨 곳이 다름 아닌 퓌리기아이기도 하다. 그는 트라케(Thracia)를 침략하였다. 그의 군대가 스트뤼몬 강의 입구에 상륙하자마자 에도니안들은 끝이 소 대가리 모양을 한 무기를 든 리쿠르고스(Lycurgos) 왕을 필두로 강하게 대적하여 왔으며, 이에 디오니소스의 군대는 디오니소스만 제외하고는 모두 사로잡혔다.

 

디오니소스는 바다로 뛰어 들어가 테티스의 작은 동굴로 피신하였다. 레아는 이에 화가 나서 리쿠르고스가 감금한 사람들이 모두 도망가도록 도왔으며, 리쿠르고스를 미치게 만들어 버렸다. 그는 그의 아들, 튀르아스를 포도덩굴을 찍어 넘기고 있다고 착각을 하면서, 자신의 도끼로 찍어 죽였다. 정신이 들기 전에, 그는 아들의 시체에서 코와 귀, 손가락과 발가락을 쳐내기 시작하였다. 그의 땅 전체가 그의 범죄로 인하여 공포로 황폐해졌다. 디오니소스가 바다로부터 돌아와 이 황폐함이 리쿠르고스가 죽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라고 공격했을 때, 에도니안들은 왕을, 판가이움 산까지 끌고 갔고, 야생마들이 그의 사지를 찢었다.

 

트라케에서 디오니소스는 더 이상 적대자들과 마주치지 않았다. 그는 테바이에서 방문한 적이 있었던, 마음속 깊이 사랑하던 보에티아(Boetia)에게로 여행해 갔다. 말이 여행이지 헤라의 박해를 피해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들을 키타이론 산의 향연으로 초대하였다. 디오니소스의 방종한 외양을 탐탁지 않게 여긴 테바이의 펜테우스 왕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음은 물론이요, 디오니소스마저 체포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명령을 받은 자들은 미쳐 버려서 디오니소스에게 족쇄를 채우는 대신에 황소에게 족쇄를 채웠다.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 무리들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포도주와 종교적 엑스터시에 젖은 그들은 도리어 그의 사지를 찢어 버렸다. 그의 어머니 아가베가 이 반동을 주도하였으며 그의 머리를 비틀어 빼 버린 것도 그녀였다.

 

오르코메노스(Orchomenos)에서는 디오니소스 자신이 직접 소녀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각각 알키토에, 레우시페, 아르시페라 하는 미니아스(Minyas)의 세 딸들을 초청하였는데, 그들은 이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테베 여자들과는 달라서, 미니아스의 딸 알키토에는, 이 디오니소스 신도들 무리에 휩쓸리지 않았다. 알키토에는, 디오니소스 신을 찬미하는 야단스러운 축제가 자기네 나라에서도 베풀어져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알키토에는, 심지어는 디오니소스가 제우스의 아들이 아니라는 주장도 천연덕스럽게 했다. 이 알키토에의 여동생들도 디오니소스를 믿지 않는 언니를 편들었다.

 

디오니소스 신관들은, 축제는 반드시 거행되어야 하고, 이날만은 하녀들도 하녀들 몫의 일에서 풀려나 이 신을 섬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하녀나 주인이나 이날만은 젖가슴을 짐승가죽으로 가리고, 머리댕기를 풀고,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손에는 잎달린 나뭇가지로 만든 주신장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신관들은, 디오니소스 신을 홀대하면 무서운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자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신관의 경고를 귀담아들었다. 그들은 디오니소스 축제일이 오자 베틀이고, 양털 바구니고, 하던 설거지고 다 팽개치고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나아가 디오니소스 신께 향을 사르고 갖가지 이름으로 그를 부르며 그를 찬송했다.

 

이 디오니소스 신은 늙지 않기 때문에 천궁에서도 늘 가장 아름다운 청년 신 대접을 받는다. 이 신에게는 뿔이 있으나, 우리 앞에 이 뿔을 달지 않고 나타날 때는 그 머리가 흡사 처녀의 머리 같다. 이분은 일찍 동방을 정복했기 때문에, 갠지스 강이 흐르는 저 힌두스 땅의, 살갗이 가무잡잡한 사람들까지 이 신을 섬겼다.

그러나 미니아스의 딸들만은 집 안에 틀어박혀 실 감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이로써 이 제사를, 이 제사를 흠향하는 디오니소스를 욕되게 했다. 그들은 양털을 빗기도 하고, 엄지손가락으로 실을 꼬기도 하고, 베를 짜기도 하는 등, 저희들끼리 바쁘게 일하는 것은 물론 하녀들에게까지 바쁜 일감을 맡게 문 밖 출입을 못하게 했다.

 

오르코메노스(Orchomenos) 왕국의 조상 미니아스(Minyas)의 딸들 중 하나가 엄지손가락으로 실을 부드럽게 꼬면서 자매들에게 말했다. “처녀라는 처녀는 모두 뿌리도 줄기도 없는 축제에 나가 휴일을 즐기니까 우리도 이 하루를 재미있게 보내야 하지 않겠어? 손은, 저 디오니소스보다 더 거룩하신 팔라스 여신의 직무에 맡기고 입으로는 차례로 옛이야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겠다. 하나가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들으면서 일하고……” 나머지가 좋은 생각이라고 하자 먼저 말을 꺼내었던 처녀가 이야기를 준비했다.

이 처녀에게는 아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처녀는 무슨 이야기를 먼저 할까… 하고 궁리했다. 팔레스티나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바빌로니아아의 케티스 이야기? 물고기로 둔갑하여 비늘에 덮인 몸으로 연못에서 헤엄을 쳤다는 데르케티스 이야기는 어떨까? 날개가 돋아나, 만년을 하얀 비둘기장 안에서 살았다는 데르케티스의 딸 이야기는? 마법과 약초의 힘을 빌려 젊은 청년들을, 입 못 버리는 물고기로 둔갑하게 했다가 저 자신도 그런 신세가 되었다는 나이아스 이야기는 어떨까? 흰 열매가 열리던 나무에서 갑자기 핏자국 색깔 같은 보라색 열매가 열리게 된 사연은 어떨까? 옳지, 이게 좋겠구나. 처녀는, 비교적 아는 사람이 적은 이 마지막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처녀는 털실을 감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에 따르면, 알카토오스(Alcathous)·레우키페·아르시페는 디오니소스가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고, 그의 신성(神性)을 무시하였다. 세 자매는 디오니소스의 축제가 열리는 날 축제에 참가하지 않고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박쥐로 변해 버렸다.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디오니소스가 세 자매 앞에 나타나 모두 미쳐 버리게 만들었다고도 한다. 제정신을 잃은 세 자매는 레우시페의 아들 히파소스(Hippasus)를 새끼 사슴으로 오인하여 갈가리 찢어 죽였다. 세 딸의 광란에 공포를 느낀 미니아스는 그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세 자매들은 그를 조각조각 찢어서 게걸스럽게 먹었고, 광란의 상태에서, 헤르메스가 그들을 새로 변하게 할 때까지 비록 어떤 사람들은 디오니소스가 박쥐로 변하게 했다고 하지만, 산들을 지나 다녔다.

 

히파소스의 살해는 매년 오르코메노스(Orchomenos)의 ‘아그리오니아(Agrionia, 성난 향연)’라고 불리는 향연에서 속죄된다. 그 향연 때에 여성 숭배자들은 마치 디오니소스를 찾는 체 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그가 자신들과 떨어져 뮤즈들과 같이 있음에 동의하면서, 원형으로 앉아 수수께끼를 주고받는다. 이런 장면은 디오니소스의 사제가 신전으로 검을 들고 뛰어 나와 그가 최초로 잡은 한 사람을 죽일 때까지 계속된다.

 

모든 보이오티아 사람들이 디오니소스의 신성을 인정하였을 때, 그는 가는 곳마다 쾌락과 공포를 뿌리면서, 에게 해의 여러 섬들을 만유(漫遊)하였다. 이카리아에 도착하였을 때, 그는 자신의 배가 항해에 적합하지 않음을 발견하였고, 티리니아의 선원들로서 낙소스로 향하던 사람들로부터 다른 한 척을 빌렸다. 그러나 그들은 해적임이 판명된 데다가 그의 신성을 기만하여 그를 노예로 팔 생각을 품고 아시아로 키를 돌렸다.

 

이것이 디오니소스가 갑판에 포도덩굴이 자라게 하여, 삭구(索具)가 담쟁이덩굴에 매여 있는 동안, 돛대를 붙들어 매도록 하였던 소이연이다. 그는 또한 노를 뱀으로 변하게 했으며, 그 자신을 사자로 변하게 했다. 동시에 여러 짐승의 환영들로 선상을 메웠기 때문에, 해적들은 두려움에 떨며 바다로 뛰어들어, 돌고래가 되었다.

 

낙소스에서 디오니소스는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사랑스러운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Ariadne auf Naxos)를 만났고 지체 없이 그녀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오이노피온(Oinopion), 타오스(Taos), 스타필로스(Staphylos), 라트로미스, 에우안테스, 그리고 타우로폴로스(Tauropolos)를 낳았다. 나중에 디오니소스는 그녀의 신부용 화관을 별들 사이에 자리하게 했다. 그는 낙소스에서부터 아르고스로 와서 여인들에게 광기를 부여함으로써 페르세우스를 혼내 주었다. 페르세우스가 디오니소스와 대적하여, 그의 수하들을 많이 죽였기 때문이다. 여인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날 것으로, 게걸스럽게 먹어대기 시작하였다. 페르세우스는 잘못을 시인하고, 신전을 지어 디오니소스의 영광을 드러냄으로써 그를 진정시켰다.

 

마침내, 전 세계에 그의 숭배를 확립시키자 디오니소스는 천계로 올라가 위대한 12명의 신들 가운데 하나로 제우스의 오른쪽에 앉았다. 스스로 사람들의 눈에 튀어 보이지 않으려 하는 여신 헤스티아(Hestia)가 호의롭게 천상에서의 그녀의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Dionysos는 아르고스 남쪽에 있는 지역으로 근처에 늪 레르나(Lerna)를 거처 하계로 내려갔는데, 그곳은 그가 페르세포네를 ‘은매화’로 매수하여 그의 어머니 세멜레를 놓아주도록 한 곳이었다.

 

그녀는 그와 함께 트로이젠에 있는 아르테미스의 신전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다른 신들이 질투하거나 불만을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디오니소스는 그의 어머니를 동료 올림포스 신들에게 소개하되 이름을 바꾸어 티오네(Tionne)라고 소개했다. 제우스는 크고 훌륭한 방 하나를 그녀에게 주었고, 디오니소스에게는 신전을 하나 지어주었다.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음주문화칼럼니스트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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