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안주의 궁합(宮合)
芝堂 李興揆 (詩人)
술과 안주의 궁합을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성격이나 기호(嗜好), 음식의 맛에 대한 취향(趣向)을 구별하여 논하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는 사람마다 좋아하는 입맛이 다르고 어떤 한 개인일지라도 그가 처해있는 현재의 상황이나 장소 또는 때에 따라 식욕이나 맛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같은 막걸리라 하더라도 일터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심한 갈증을 느낄 때라면 막걸리 한 사발과 배추김치 한쪽이 입안에 감도는 맛은 꿀맛일 터이나 배부른 선비가 주지육림의 안주를 앞에 놓고 따라주는 막걸리는 입에 대지도 않고 고개 돌려버릴 공산이 크다.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얼음 속에 담가놓은 시원한 생맥주 한 컵이 당길 때가 있는가 하면 맑은 소주 한잔에 나무젓가락에 꿰어 꾸물거리는 세발낙지 안주가 술맛을 한층 더해줄 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소주병을 놓고 네댓 명이 둘러앉은 원탁의 술자리에서도 어떤 이는 배추김치로만 손이 가는가 하면 어떤 이는 풋나물로만 손이 가고 어떤 이의 젓가락은 꽁치구이로만 향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처럼 맛과 음식에 대한 취향이 각양각색인 술꾼들의 술과 안주의 궁합을 논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술과 안주의 궁합을 얘기 하려고 한다면 어느 한 사람이 특이한 시간에 특수한 장소나 주어진 상황 속에서 우연히 어떤 술과 안주를 마주했을 경우 별미로 느꼈을 때의 맛을 기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술과 안주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다 보니 필자가 처음으로 술잔을 입에 댄 그날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필자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술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었다. 그 까닭은 아래 사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7월초 어느 날 이였다. 다음날 우리 집에서 만도리를 하는 날이다. 대게 마을에서 웬만큼 사는 집에서 만도리를 하는 날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잔치를 열기 때문에 삼사일 전에 담가놓은 술을 전날 거른다. 그런데 눈만 뜨면 우리 집으로 달음박질치던 한마을 동무 근시째가 어머니께서 거른 술 찌개미를 몰래 한 움큼 집어다가 아래채 모퉁이 헛청에서 아주 맛있게 먹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먹어보라고 권하였다. 근시째네는 형편이 어려워 우리 집에만 오면 뭔가 먹을거리가 있어 나를 따라다녔었다. 6.25후에 웬만한 집이면 굶기를 밥 먹듯 하던 때인지라 고시랑, 송키, 칡순, 삘기 등 먹을 것이면 뭐든지 남아나지 않던 어려운 시절이다.
나는 시금털털하고 까슬까슬 한 술 찌개미가 입에 썩 당기지는 않았지만 가장 친한 동무 근시째가 맛있게 먹으니까 나도 한편이 되어 어머니 몰래 놋대접에 가득 퍼 담아 와서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처음에는 시큼하고 깔깔하던 술 찌개미가 씹으면 씹을수록 얼얼하고 달짝지근하여 얼마나 먹었는지 둘이는 그만 술에 취해 헛청 짚더미 속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날이 저물었는데도 귀한 손자가 나타나지 앉자 우리 집에서는 온통 난리가 났다. 어머니는 만도리 음식준비로 바쁘게 장만하느라 겨를이 없었지만 할머니의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누나들과 막내고모, 일꾼들이 온 동네를 뒤지고 다녀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큰일만 치르면 우리 집에 와서 하인처럼 집안일을 돕는 아랫집 기철어매가 쇠죽을 끓이려고 헛청에서 짚뭇을 빼내다가 그만 근시째 허벅지를 밟아버렸다. 근시째의 ‘으아악!’ 내지르는 괴성이 허청의 지붕을 뚫고 기철어매는 ‘워메!’ 하고 놀라 뒤로 네 벌떡! 나자빠졌다. 사람들은 뭔 소린가? 하고 모여들었다. 짚더미 속에서는 아직도 얼굴이 벌건 두 녀석이 비틀거리며 눈을 비비고 나오는 게 아닌가. 종당에 까닭을 알게 된 상머슴 길동아범은 “엄목떡네 근시째 너 붕알깨지먼 어쩔 뻔 했냐? 천만다행이다.” 하고 껄껄 웃어댔다.
할머니는 “에릴 때 술 먹으면 바보됭께 다 클 때 꺼정 술은 입에 대지도 말어라.” 하고 신신 당부를 하셨다. 할머니 말씀이 아니드라도 이튿날 오전까지 정신이 어질어질하고 얼마나 골치가 아프던지 내가 꼭 공부도 못하는 점복이처럼 바보가 될 것만 같았다. 그 후로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8월 중순경이면 벼가 배동이 서고 피가 벼 위로 우뚝 고개를 쳐들어 피사리를 해 주는 때다. 아버지는 평소에 일을 하시지 않지만 삽을 매고 논 물꼬를 살피거나 피사리처럼 가벼운 일을 하셨다. 그날도 아버지께서 피사리를 나가셔서 나도 따라 나섰다. 한 여름 뙤약볕에 다 자란 벼 잎은 마치 억새처럼 팔다리를 긁어댔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질퍽이는 논에서 벼 포기 사이를 조심스럽게 옮겨 다니며 피만 뽑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자배미 논에서 한참을 헤맨 뒤 참 때가 되어 정자나무 아래에서 땀을 훔치고 어머니가 가져오신 막걸리를 아버지께 따라드렸다. 다 마신 후 아버지께서는 손수 술을 따라 주시면서
“아나, 너도 한잔 먹어라! 예로부터 술은 어른들 앞에서 배우라고 했느니라. 그러고 땀 흘리고 출출할 때 마시는 막걸리는 보약이다.”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께서 주신 술잔을 두 손으로 받들어 고개를 돌리고 단숨에 벌컥벌컥 마셨다. 술을 마실 때 그 맛이 어떤지는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목마름을 해소하는 시큼 달큼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찼다. 어머니께서 집어주시는 노랑가오리 미나리무침을 한입 털어 넣자 막걸리 뒷맛과 어우러진 시큼하고 달콤하면서도 얼얼한 안주의 감미로움은 지금 생각만 해도 군침이 감감 돈다. 바로 이 맛이 술과 안주의 찰떡궁합이 아닌가 한다. 그 후 나는 술맛도 제대로 모를 때 겪은 맛이지만 막걸리를 대할 때마다 그때 그 맛이 그립 곤 하였다. 부모님과의 사연이 깃든 맨 처음 마셔본 술맛과 안주 맛 이였기 때문일 듯도 하다.
오년 전 재경향우산악회에서 고향산악회와 합동으로 등산을 한 적이 있었다. 서울과 고향 영광에서 각각 대절 버스로 출발하여 중간지점인 대둔산 정상에서 만났다.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어릴 적 아이들처럼 달려가 고향 선후배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며 도시락을 함께 먹고 마냥 즐거운 산행을 하였다. 정작 즐거움은 하산하여 주차장에서 벌어졌다. 고향 홍농읍산악회에서 맛 좋기로 소문난 영광 대마막걸리와 칠산 홍어회무침을 백 명 분이나 펼쳐놓았다. 온통 땀으로 멱 감으며 힘겹게 산행을 마치고 허기진 일행들에게 막걸리와 홍어회무침은 그 얼마나 달콤한 꿀맛 이였겠는가.
여자고 남자, 젊은이고 늙은이 가릴 것 없이 오고가는 술잔 속에 함빡 웃음꽃 얘기꽃들을 피우며 따뜻한 정이 담긴 얘기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막걸리와 홍어회의 별난 궁합을 이구동성으로 칭송하며 술잔들을 사양 없이 받는 것이었다. 필자는 20여 년 전 교통사고 후 술을 거의 끊다시피 해오던 터이지만 그날만은 제자들이 따르는 잔을 사양치 않고 받는 통에 술에 대취하고 말았다. 막걸리와 홍어회는 아무리 먹어도 감칠맛 나는 별미였다.
일반적으로 막걸리 안주는 상기한 홍어회 외에도 돼지고기와 묶은 배추김치와 새우젓의 삼합을 으뜸으로 친다. 막걸리는 식이섬유가 들어있는 걸쭉한 술이기 때문에 이러한 안주를 곁들이면 식사대용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막걸리는 힘든 노동을 할 때 마시기에 알맞은 술이다.
막걸리의 성분을 분석해 보면 물 80%, 알코올 6~7%, 단백질 2%, 탄수화물 0.8%, 지방 0.1% 정도이고, 나머지는 식이섬유, 비타민B·C, 유산균, 효모 등이라고 한다. 어느 의학자는 <막걸리를 마실 때는 콩으로 만든 안주를 곁들이는 것이 좋다. 막걸리에 상대적으로 부족한 단백질과 칼슘 등 미네랄을 콩을 통해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한다. 콩 음식 중에도 두부를 데쳐서 김치와 함께 먹으면 포만감이 높아져 과음을 막을 수 있다.
막걸리 안주로 흔히 곁들이는 녹두 빈대떡에는 지방이 많다. 생 양파를 썰어 넣은 빈대떡을 간장 찍어 먹으면 양파의 칼륨 인산 등의 무기질 성분이 지방이 산화되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또한 도토리묵과 파전 역시 어울리는 안주다. 그러나 위와 같이 막걸리에 어울리는 안주도 대중을 상대로 하는 주점에서 가장 손쉽게 만들어 즉석에서 따뜻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 애주하는 술꾼들의 일반적인 상식일 뿐, 어떤 경우에도 마시는 사람의 취향이나 미감, 마실 때의 분위기에 따라 가장 어울리는 술과 안주의 궁합은 수시로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속)
♠ 이 흥 규 약력
※ 전남 영광 홍농 출생 (號 ; 芝堂)
※ 행복을 전하는『꽃 사랑』대표
※ 한국문인협회 회원
※ 광주광역시 문인협회 시분과 회장
※ 광주광역시 시인협회 기획위원장
※ 광주전남 아동문학회 사무국장
※ 광주광역시 교원연수원 강사
※ 해동문인협회 이사
※ 문학동인 죽란시사회 회장 역임
※ 국제문화교류회 문학부문 문화교육상
※ 문화교육부 협찬 새싹회 글짓기지도교사상
※ 경향신문사 협찬 생명보험협회 글짓기지도교사상
※ 광주전남 아동문학상
※ 「우리문학」추천 등단
※ 전남도민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 국보문학 소설 신인상 당선
※ 시집 ; 달빛 낚기 외 2권 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