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武勇談으로 살아가는 群像
무용담(武勇談)은 사전적 의미로 보면 ‘싸움에서 용감하게 활약하여 공을 세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한 가지씩 내놓은 무용담에 밤이 이슥한 줄을 몰랐다.”(출처조정래, 태백산맥)고 하는 것처럼 어느 사람이고 나이 먹게 되면 한두 개 정도의 무용담을 가슴에 품고 살기 마련이다.
사실일 수도 있고, 뻥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귀가 솔깃해지는 것 역시 필연이다. 그런데 무용담이 발생 하는 상황은 이상하게도 주인공 혼자서 일을 처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가 많다.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다 보니 절반은 뻥치는 일이 다반사다.
특히 나이 먹어 가면서 느는 것은 무용담이라고 할 정도로 노인네들이 많이 모이는 경로당 같은 데서는 “호랑이 등 안타본 사람 없고, 호랑이 꼬랑지 안 잡아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 공통된 대화며 “소싯적 계집질 하는데 도사였다”는 식의 자랑일색이다.
경로당이 아니더라도 나이 들어가면서 무용담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소싯적에 혼자서 불량학생 10여명을 혼내주고 여학생을 구해줬다거나 취사병이었으면서도 군 내부분만을 휘어잡았다는 등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또 있다. 내가 소싯적에는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아서 나를 쫓아다니는 여자들이 한 트럭은 됐다거나 처음 만나는 날 여자를 데리고 바로 여관으로 직행했다는 등 자칭 카사노바 형이라고 자처하지만 혼기를 놓치고 있는 양상을 보면 입으로만 양기가 오른 모양이다. 화자(話者)대로라면 세상에 남아날 여자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낚시꾼들이 놓친 붕어는 하나같이 월척이라는 무용담은 빛을 발휘 못한다. 놓친 고기는 모두가 이따~만한 월척 붕어뿐이니까.
나이 들어가며 산전수전 다 겪다보면 이런 뻥을 치는 사람들은 사실은 그렇게 해보지 못한 한(?)이 맺혀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외국여행이 일상화 되자 외국에서 겪었던 일도 무용담 주제로 자주 등장한다. 그럴듯한 이야기가 전개될 때 쯤 초치는 사람이 “그 사람들이 네 말(한국어)을 그렇게 잘 알아들었어?” 화자는 외국어가 약했다.
주당들이 모인 주석에서 무용담은 참으로 가관일 때가 많다.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음주운전으로 단속됐다가 딱지 끊지 않고 빠져나온 사건을 무슨 큰 무용담이나 된 듯 떠벌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얼마를 주고 딱지를 끊지 않았다거나 성냥개비의 황을 씹거나 솔잎을 씹으면 술 냄새가 나지 않아 단속을 면했다는 등 황당무계하게 입담을 늘어놓는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애꿎게 교통경찰관들만 바보로 만들고 부정한 사람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뻥이다.
술이 한두 잔 들어가면서 걸쭉한 무용담은 점차 강도가 세지기 마련이다. 대부분은 여자 이야기로 시작해서 자기가 변강세였다는 것을 자랑한다. 세상에는 그런 변강세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이는 무용담이 아니고 뻥이 과한 부분이 많다.
연말이 코앞이다. 동창회나 회사의 송년회 같은 술자리가 줄을 잇는다. 이런 자리에서 상사가 늘어놓는 음주에 관한 무용담은 뻥일까? 진담일까? 왜냐하면 술 마시면 본색이 들어난다고 해서 취중진담이란 말이 나온 것인데 말이다.
필자역시 술에 관한 무용담으로 소싯적에는 말술도 마다 않았다. 60년대 후반 한창 젊은 나이에 당시 30도 됫병 소주를 병나발로 마시고, 맥주는 짝(24병)으로 마셨다. 음주에 관한 추억이다. 절대 뻥이 아니다. 그런데 이 같은 폭주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느끼고 있으니 철이 늦게 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