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43)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43)

 

 

아테네 안테스테리아의 제의

 

디오니소수 필자 남태우 교수

디오니소스의 축제는 크고 작은 디오니시아(Dionysia), 안테스테리아(Anthesteria), 아그리오니아(Agrionia), 아테네 시의 카타고기아(Katagogia) 등이 있다. 남근숭배의 상징체계는 디오니소스 주신제에서 특히 유명한데, 이는 디오니소스가 풍요의 신으로 숭배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고전기 아테네에서는 1년에 4차례나 공식적인 ‘디오니소스 제의’를 거행할 정도로 그에 대한 숭배열이 높았다. 고전기 아테네에서 가장 특징적인 제도중의 하나는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도시적 축제’였다.

 

아테네에서는 레나이아(Lenaia), 도시 디오니시아(City Dioysia), 촌락 주신축제, 오스코포리아(Oschophoria), 안테스테리아(Anthesteria) 축제가 있었지만, 사실 이들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무절제한 해방의 감정이 특히 여인들 사이에 널리 수용됨에 따라 디오니소스를 따랐던 마이나데스들의 축제 레나이아는 결혼의 달인 12월에서 1월 사이의 가멜리온(Gamelion) 달에 개최되었다. 아테네에서 희극이 처음으로 상연된 것도 레나이아 축제에서 이었다.

 

이것은 기원전 5세기 초부터 정부에 의해 주도 되었으며, 축제행사의 감독은 아르콘 바실레우스(Archon Basileus)에 의해 행해졌다. 기원전 7세기 초 아티카에서는 왕의 행정, 군사, 종교적 권한이 3명의 선출된 관리들에 의해 행사되었다. 행정을 맡은 이가 아르콘 에포니무스(Archon Eponymous), 군대의 총사령관이 폴레마르크(Polemarch)였다. 아르콘 바실레우스는 아르콘 왕으로 국가의 종교를 담당하였고 이들은 1년간 재임할 수 있었다. 아르콘의 선출은 귀족회의인 아레오파구스(Areopagus) 회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레나이아 축제에서 신봉된 디오니소스는 많은 도기화에 그려졌는데 수염달린 가면을 쓴 기둥으로 묘사된 형상은 잔가지들로 장식되었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원래 비밀의식으로 한밤중에 거행됐다. 신자의 대부분은 여성들이 차지했는데, 그들은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때로는 짐승을 갈기갈기 찢어서 피가 흐르는 날고기를 먹었다. 이는 인간의 관습과 금기를 벗어난 원시적 힘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디오니소스 주위에는 그들의 무리인 마이나데스(디오니소스 여신도)와 사티로스, 요정(님프) 등 추종자들이 따랐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그리스 예술의 극치인 비극이 태어난다. 비극을 뜻하는 영어 ‘Tragedy’의 어원은 그리스어 ‘tragodia’이다. ‘trago’란 양이고, ‘dia’는 노래란 뜻이다. 그러니까 ‘양의 노래’란 뜻이다. 초창기 그리스 비극은 배우와 합창단이 염소의 탈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형식이었다. 이러한 비극은 겨울에 개최된 ‘디오니소스 축제(Dionysia)’에서 유래한 것이다. 디오니소스 여신도들이 가면을 쓰고 광란의 파티를 벌이던 전통에서 연극이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가면은 디오니소스를 추종하는 사티로스의 가면이 사용되었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비극의 탄생>에서 조형예술(조형 의지)로 대표되는 아폴론적 예술과 해체 의지인 음악으로 대표되는 디오니소스적 예술의 대립과 투쟁, 균형과 조화 속에서 예술의 정수인 그리스 비극이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자연으로부터 이탈해 개체화된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대자연의 엄청난 공포와 전율 그리고 엑스터시(無我境)인 디오니소스적 내용을 아름다운 가상(假像)을 만들어 내는 조형 의지인 아폴론적 내용으로 표현된 것이 그리스 비극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 비극 속에는 두 가지 예술적 충동이 나타난다. 니체는 이를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이 두 충동이 다투는 듯 그리고 화합하는 듯 형성해나가는 것이 그리스 비극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디오니소스의 세계는 세계의 원상(原像)이고, 아폴론의 세계는 가상의 세계다. 자연으로부터 이탈되어 개체화된 인간에게 세계의 원상은 너무나 벅찬 공포와 전율이다. 예컨대, 대우주와 대자연의 파노라마, 별들이 품어내는 원초적인 강렬한 빛과 열기, 신비스러운 자연 현상 등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상 앞에서 우리들의 삶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보호막’이 필요하다. 니체는 아폴론의 세계를 이러한 보호막으로 해석한다. 아폴론은 공포와 전율의 원초적 카오스(혼돈)로부터 코스모스(질서)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인간은 아폴론이 조형해주는 가상(환상의 세계)을 조용히 관조함으로써 폭풍노도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조각배 안에서도 태연히 앉아 있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아폴론의 세계에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인간 개체의 한계를 지켜주는 절제와 중용 그리고 평정심이다.

 

이 세계는 아폴론이 조형하는 아름다운 가상의 세계다. 이 세계가 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중용’의 세계다. 그 선을 넘어 과도함의 상태로 들어가면 개체의 한계는 허물어지고 가상은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예기치 않은 실수나 이탈에 의해 개체의 원리(정체성)가 깨어질 때, 디오니소스적 충동이 솟아난다. 디오니소스의 세계에서는 개인과 개인 간의 벽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간의 벽 또한 허물어지고 서로 화해하는 ‘대향연(공포와 전율+황홀한 도취)’이 일어난다. 모든 것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인간은 대자연의 도도한 흐름에 동참하게 된다. 인간 스스로가 자연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니체에게서 디오니소스는 초인(초인)이고, 짜라투스트라(Zarathustra)다.

 

인간은 너무 큰 소리나 지나치게 밝은 빛은 감당하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의 몸은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것을 견디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과도한 기쁨이나 슬픔도 감내하기 어렵다. 기쁨과 슬픔과 같은 감정이 지나치면 미칠 지경이 되거나 미쳐버린다. 심하면 죽기도 한다. 그래서 아폴론의 세계가 말하는 절제와 중용이 이를 방지해준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아폴론의 보호막은 우리를 평화롭게 해주지만, 약동하는 생명력, 힘찬 에너지를 앗아가기도 한다. 그리하여 디오니소스를 모시게 되면, 그는 아폴론의 보호막을 찢어버리고 시들어가는 개체에 원초적인 생명의 에너지를 넣어준다.

 

그리스 비극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간의 투쟁과 화합의 산물이지만, 비극의 궁극적 본질은 아폴론의 가상의 세계를 넘어선 디오니소스의 찬양(Dithyrambos)이다. 이성 중심의 합리주의에 뿌리를 둔 유럽 시민 사회의 편협함과 고루함에 질식할 것 같았던 니체에게 산소 같은 바람을 넣어준 것은 ‘아폴론적인 것’에 대비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었다.

고대 아테네의 4차례의 제의들은 겨울과 초봄에 걸쳐 거행되었는데, 각각 제의의 이름과 거행 시기가 달랐다. 그것들은 포세이데온(Poseideon, 12월의 이름과 1월 전반) 달에 열리는 시골 Dionysos(Dionysia), 혹은 소(小)Dionysos(ta kat’ agrous Dionusia) 축제, 가멜리온(Gamelion, 고대 아테네에서 1월 후반과 2월 중순 언저리의 기간) 달에 열리는 레나이아(ta Lenaia) 축제, 안테스테리온(Anthesterion, 2월 후반과 3월 전반) 달에 열리는 안테스테리아(ta Anthesteria) 축제, 그리고 엘라페볼리온(Elaphebolion, 3월 후반과 4월 전반) 달에 열리는 도시디오니소스, 혹은 대(大)디오니소스(ta astika Dionusia)였는데, 각각 디오니시아는 나름의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12월에부터 이듬해 4월 달까지 열린 장장 5개월간에 걸쳐 열린 축제였다.

 

‘시골 디오니소스축제’는 그리스 달력으로 포세이돈 월(the month of Poseidon)에 행해졌다. 포세이돈 월은 현재 달력으로 11~12월에 해당된다. 대략 겨울밀의 파종시기와 일치한다. 반면 ‘도시 디오니소스축제’는 엘라페볼리온 월(the month of Elaphebolion)에 벌여졌다. 이 또한 대략 겨울밀의 추수 시기와 일치한다. 12월에 행해진 ‘시골 디오니소스축제’는 남근 모양의 조각상을 든 여자들의 행렬로 시작된다. 이 남근상을 든 여자들 뒤로 바구니를 든 어린 소녀들과 길고 커다란 빵을 든 사람, 그리고 다른 봉헌 물을 든 사람과 물단지를 든 사람과 포도주 단지를 든 사람들이 잇따른다. 이런 행렬이 끝난 후에는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합창과 연극 경연대회가 벌어졌다. 이러한 ‘시골 디오니소스축제’는 훗날 벌어지는 ‘도시 디오니소스축제’의 원형이 된다. ‘도시 디오니소스축제’는 기원전 6세기 경, 도시국가 아테네의 참주였던 페이스시트라토스(Peisistratos)에 의해서 국가적인 행사로서 그 형태가 갖추어진다.

‘시골 Dionysia’는 아티카의 지방 데모스(Demos)들이 지역별로 거행하던 제의로서 그 날자가 전체적으로 통일되지 않았던 것 같다. 여기에서 ‘민’의 어원인 ‘demos’는 고대 그리스 지역에서 처음에는 행정 구역 단위인 ‘deme’를 의미하였지만, 이후에 주로 그 곳에 거주하는 ‘평민(농민)’과 ‘시민 전체’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데모스’의 이러한 중의성은 ‘민’ 개념에 대한 귀족과 평민의 시각 차이를 반영하는데, ‘전체 시민’은 시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민의 열망이, ‘평민’은 그들을 아테네의 대표 세력으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귀족의 의지가 투영되어 있다. 따라서 ‘민’ 개념의 중의성은 귀족과 평민의 갈등 관계와 더불어서 민이 귀족보다 폴리스와 그것을 구성하는 시민의 본질(telos)에 더 부합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제의는 행령, 제사, 연희, 비극 및 희극경연으로 구성되었는데, 행사의 구체적인 내용은 각 데모스(Demos)별로 다소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아카르니아인들> 241-279에는 한 ‘시골 Dionysia’의 행렬이 묘사되어 있는데 거기에서는 제물과 남근상이 포함되고 디오니소스 신자들은 그 행렬을 대동했던 것으로 나온다.

또 페이라이에우스(Peiraieus)와 살라미스의 ‘시골 Dionysia’에서는 연극경연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아마 데모스별로 행렬의 내용에 다소 차이가 있었고, 또 모든 데모스가 연극경연을 공연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로서는 이 제의가 어떻게 디오니소스와 연관되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특히 남근상은 생산과 풍요의 상징이므로 도입되었을 것인데 특별히 12-1월과 디오니소스의 생산능력을 연관 지을 만한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

 

그렇지만 ‘시골 디오니소스 축제’는 사람들을 독려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려는 파종제와 추수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더불어 아테네 시민의 단결이라는 사회적인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Dionysia 축제’는 디오니소스 신에 대한 제의였다. 축제 동안 벌어지는 합창과 연극은 원시 종합예술인 발라드 댄스였다고 할 수 있다.

레나이아(Lenaia)는 가멜레온 달의 며칠 동안 아테네의 레나이온에서 거행되었는데 행렬, 제사, 비극 및 희극경연으로 구성되었다. 비극작가 아가톤이 기원전 416년 ‘레나이아(lenaia) 제(祭)’의 비극 경연에서 처음 우승한 것을 자축하고자 베푼 술잔치(symposion)에서 여러 사람이 에로스에 관해 피력한 견해를 기록한 것이다. 이 대화편은 당시 너무 어려서 그 술잔치에 참석하지 못한 팔레론 출신 아폴로도로스가 술잔치에 참석했던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리스토데모스 한테서 들은 것을 친구에게 전하는 액자소설(額子小說) 형식을 취하고 있다.

 

레나이아가 가멜레온 달 12월에 행해졌다는 견해도 있지만, 그 정확한 날자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도시 Dionysia’에서와 같은 연극경연이 레나이아에서도 진행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극경연의 3일을 포함하여 적어도 4일 정도 공연되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할 뿐이다. 레나이아가 아테네의 매우 오래된 제의였음을 알 수 있다. 아테네에서 그 제의의 중심 무대는 주로 레나이온이었는데 레나이온은 Dionysia 극장이 설립되기 전에 아테네의 연극경연이 이루어진 곳이었다. 레나이온은 아테네의 아고라 혹은 성벽 밖 교외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2월이 되면 ‘안테스테리아(Anthesteria)’라는 축제를 벌였다. 이른 봄에 개최되는 ‘안테스테리아축제’는 포도주 마시기 축제이다. 즉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였다. 한번 축제가 열리면 적어도 사흘 이상 계속됐다. 사람들은 고주망태가 되도록 와인을 마셨다. 고대 그리스의 여러 축제 가운데는 남성 시민만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안테스테리아’는 여성, 어린이, 노예 등도 즐겼다. 술잔 앞에 모두 평등해지는 축제였다.

 

고대 바빌로니아도 비슷한 시기에 축제를 벌였다. 그들은 7일을 한 주로 묶고 1년을 열두 달로 나눈 달력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바빌로니아 달력의 1월은 오늘날의 3월에 해당한다. 춘분 무렵을 한 해의 처음으로 봤다. 이 달력에 따라 한 해가 끝나고 새해가 시작될 때, 즉 오늘날의 2월에 해당하는 때가 오면, 그들은 11일 또는 12일 동안 내리 놀았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축제를 벌이는 11일 동안 천체의 운동이 멈추고 시간이 정지한다고 믿었다. 이 축제에서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임시 왕’을 뽑았다. 나흘 동안 ‘임시 왕’을 조롱하고 놀렸다. 권력을 전도하는 것이다.

‘2월 축제’는 고대 로마 시대에도 계속된다. 고대 로마인들은 농업과 문화의 여신인 ‘케레스(Ceres)’를 숭배하는 축제를 2월 초에 열었다. 2월 중순에는 양을 보호하는 목신을 기리는 ‘목신제(牧神祭)’를 열었다. 2월18일에는 전쟁의 신 ‘퀴리누스(Quirinus)’를 위한 축제, 19일에는 가정의 평화를 기원하는 축제, 22일에는 고인이 된 자를 기리는 축제를 열었다. 축제일이 징검다리처럼 박혀 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2월의 나머지 날들은 축제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2월 한 달 내내 어울려 놀았다.

 

안테스테리아(Anthesteria)는 안테스테리온 달 11일에서 13일까지 거행되었다. 첫째 날은 포도주 항아리 개봉으로 피토이기아(Pithoigia), 둘째 날은 포도주 단지로 코에스(Choes), 셋째 날은 음식용기인 퀴트로이(Chytroi)라 불렀는데, 그 이름들은 각기 그 날의 행사와 관련된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째 날은 지난 가을에 수확한 포도로 담근 포도주항아리(pithos)가 처음으로 개봉되는 알이었다. 11일 저녁부터 하루 동안 림나이(늪지)의 디오니소스 성소가 1년에 단 한 번 개방되면 아테네인은 처음 개봉한 포도주를 신에게 봉헌한 뒤 새 포도주를 마시며 환락에 빠졌다. 둘째 날은 특정한 규격과 형태의 포도주 단지인 쿠스(chous)에 포도주를 담아 마시는 날이었다. 그 날의 주요 행사로는 행렬, 성소에서의 제사 거행, 디오니소스와 아르콘 바실레우스 아내의 신성결혼, 연회와 포도주 마시기 시합이 거행되었다.

안테스테리아의 중심 행사는 11일 저녁부터 12일 저녁 사이에 거의 집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날의 행사는 행렬로 시작되는데 그 행렬에는 디오니소스, 사튀로스(satyros) 및 제물, 제사도구 운반자들이 포함되었다. 그 행렬에는 배 모양의 수레, 즉 바퀴달린 배가 등장했고, 디오니소스 대역이 그 배 위에 앉아 행렬에 참가했다. 그 배위에는 포도나무가 뻗쳐있고 디오니소스는 술잔을 든 채 앉아있으며 그 주위에는 사튀로스들이 아울로스(aulos)를 연주하고 있다.

 

첫째 날과 둘째 날 행사가 포도주신 디오니소스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셋째 날 행사는 그와는 성격이 달랐다. 셋째 날은 일종의 사자의 영혼의 날이었는데 작은 단지 퀴트로스(chytros)에 끓인 음식을 죽은 자들에게 바쳤다고 한다. 퀴트로이 날에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포도주는 많이 소비되었다. 그날 포도주를 마시고 술 취한 자들이 림나이 근처에서 비틀거렸다.

즉, 축제 첫날에는 참가자들이 새로운 포도주를 개봉하고 물에 희석시켰다. 그리고 디오니소스에 대한 헌주를 부은 후 새로운 포도주를 시음했다. 둘째 날에는 저녁에 적당히 무리를 지어 음주를 하며 디오니소스 신화를 재현하는 행렬을 펼쳤다. 그러나 일반적인 파티에서의 관례와 달리 손님들은 각자 음식과 포도주를 주인집으로 가져와 말없이 음식을 즐겼다. 셋째 날에는 할로윈 축제 같은 기괴한 만찬이 펼쳐졌다. 사악한 혼령이 거리를 배회한다고 믿었던 아테네인들은 죽은 자들에게 음식을 제물로 바쳤다. 그날 밤 모든 가족의 가장은 이렇게 외치면서 자신의 집에서 혼령을 쫓아냈다. “썩 꺼져라, 사악한 혼령이여. 안테스테리아는 이미 끝났다.”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음주문화칼럼니스트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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