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온도

김준철의 와인교실(14)

 

와인과 온도

 

김준철 원장 (김준철와인스쿨)

 

“바다 밑에 가라앉은 배에서 꺼낸 와인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비싸게 팔리는 이유는

깊은 바다 밑의 온도는 항상 4도이기 때문이다.”

 

어떤 식품이든 온도가 맛을 좌우한다

 

김준철와인스쿨(원장)

와인을 마실 때는 와인이 적당한 온도로 되어 있는지 상당히 따지게 된다. 왜 이렇게 까다롭게 굴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꼭 와인만 온도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음식을 먹을 때 그에 맞는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야 맛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뿐이다. 차디찬 삼계탕이나 설렁탕이 맛있을 리 없고, 맥주나 콜라는 차게 마셔야 맛있고, 커피나 차는 뜨거워야 맛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미지근한 커피나 뜨뜻한 맥주를 맛있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설렁탕은 몇 도의 온도에서 먹어야 하고, 커피는 몇 도가 좋다는 등의 공식은 만들지 않았다. 와인을 알다 보니까 새삼스럽게 레드와인은 몇 도, 화이트와인은 몇 도라고 온도를 들먹이니까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온도와 맛의 관계

찌개를 끓일 때 싱겁다고 소금을 넣었다가 너무 짜서 못 먹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는 온도가 높으면 짠맛이나 쓴맛이 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이 식으면 짠맛과 쓴맛이 강하게 느껴져 더 맛이 없는 것이다. 신맛은 온도와 관계가 없지만, 쓴맛과 상승작용을 하기 때문에 온도가 낮으면 쓴맛과 함께 더 시게 느껴진다. 반대로 단맛은 온도가 낮으면 약하게 느껴지니까, 아이스커피에는 설탕과 시럽을 많이 넣어도 달지 않게 느껴지고, 냉장고에 보관한 과일은 덜 달고 시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게 온도가 음식의 맛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음식을 적절한 온도를 지켜서 먹었고, 더욱 예민한 맛을 지닌 와인에 있어서 적정 온도를 지키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특히 고급 와인은 마실 때는 온도를 잘 지켜야 그 와인의 가치를 잘 느낄 수 있다.

 

와인의 온도와 맛

 

일반적으로 레드와인은 실온으로 마시고, 화이트와인은 차게 마신다고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실온이란 19세기 서양 저택의 온도로 18도 정도를 말한다. 요즈음 실온은 사시사철 25도 정도를 유지하니까, 레드와인을 서비스할 때는 온도를 좀 더 낮추어 줄 필요가 있다. 어설픈 레스토랑에서는 차디찬 화이트와인과 미지근한 레드와인을 서비스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이는 근본을 모르기 때문이다. 화이트와인의 온도가 너무 낮으면 향이나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시원한 청량음료를 마시는 것밖에 안 된다. 레드와인도 온도가 너무 높으면 생동감이 없어지고, 맥이 빠진 느낌을 준다. 고급 와인을 이런 식으로 마셔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와인은 온도가 낮으면 신선하고 생동감 있는 맛이 생기며, 신맛이 예민하게 느껴지고, 쓴맛, 떫은맛이 강해지지만, 온도가 높으면 향을 보다 더 느낄 수 있으며, 숙성감이나 복합성, 단맛이 강해지고, 신맛은 부드럽게, 쓴맛, 떫은맛은 상쾌하게 느껴지지만, 섬세한 맛은 사라진다. 화이트와인의 온도가 너무 높으면 생동감이 없어지고 밋밋하고 무덤덤하게 느껴지고, 레드와인이 너무 차면 거칠고 전체적으로 부케나 부드러운 맛이 없어진다.

와인의 온도는 에티켓이 아니고 실제 상황

 

그래서 적절한 온도의 와인을 서비스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보통 화이트 와인은 7-15도, 레드와인은 15-20도, 그리고 샴페인은 10도 이하의 온도로 마신다고 이야기 하지만 정해진 법칙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타닌 함량이 많은 떫은 와인일수록 마시는 온도가 높아진다(그래도 20도 이하). 그러니까 ‘보졸레(Beaujolais)’나 ‘루아르(Loire)’ 같은 타닌 함량이 적은 가벼운 레드와인을 10-15도 정도 차게 마실 수 있으며, 화이트와인이지만 묵직한 맛과 풍부한 향을 가진 ‘몽라세(Montrachet)’와 같은 고급 화이트와인도 10-15도 정도로 온도를 높여서 마셔야 한다.

 

또 주변 기온에 따라 온도 감각이 달라지므로, 더운 여름에는 화이트, 레드 모두 차게 마실 수도 있다. 그리고 와인을 감정하기 위한 테이스팅(Tasting)을 할 때는 온도가 너무 낮으면 향을 느끼지 못하므로, 화이트 와인도 차게 해서 맛을 보지는 않는다. 화이트 와인은 온도가 낮을수록 신선하고 델리케이트 한 맛을 느낄 수 있지만, 아로마나 부케는 덜 느껴지므로, 화이트 와인을 차게 해서 마시지 않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와인의 온도는 에티켓에 관한 사항이 아니고 실질적인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운반이나 저장에도 적정 온도를

 

이렇게 와인의 맛에 온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다들 인식하면서도, 와인의 운반이나 보관에는 아직도 수준 이하다. 요즈음은 와인 운송에 온도를 유지하는 업체가 많아졌지만, 그 동안 많은 와인이 아무런 장치 없이 장기간 항해를 거치면서 높은 온도로 가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유럽의 와인은 적도를 두 번 통과하기 마련이고, 국내에 도착해도 보온이 안 된 창고에서 또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비로소 숍이나 레스토랑에 왔을 때 그것도 비싼 와인만 냉장보관을 하니, 현지에서 마신 것과 맛이 다르다는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와인은 살아있는 술이라고들 말한다. 이 말은 와인에도 수명이 있다는 뜻이다. 다만, 와인의 종류에 따라 그 수명이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지만, 어쨌든 높은 온도에 와인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니 기하급수적으로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말이다.

 

와인 보관 온도

와인을 보관하는데도 온도의 영향은 대단하다. 일반적으로 10-15도가 와인 저장에 적당하다고 하는데, 이 온도는 옛날부터 와인을 일 년 사철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킬 수 있는 유럽의 동굴 내 온도다. 여기서는 서서히 숙성이 이루어지면서 와인을 오래 보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와인을 가장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온도는 화이트, 레드를 막론하고 4도라고 할 수 있다. 이때가 물의 밀도가 가장 높기 때문에 차지하는 부피가 가장 적어진다. 모든 식품은 얼지 않을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가장 오래 간다. 그러나 와인은 이 온도에서는 숙성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처음의 맛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낮은 온도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하고, 고장이 나면 문제가 커지기 때문에 천연 동굴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바다 밑에 가라앉은 배에서 꺼낸 와인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비싸게 팔리는 이유는 깊은 바다 밑의 온도는 항상 4도이기 때문이다.

 

좋은 와인일수록 적정 온도로

 

와인은 온도가 낮은 곳에서 일정한 상태로 보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진정 이를 실천해야 하는 수입업자나 판매상들이 그렇게 와인을 취급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이 비싼 와인 냉장고를 구입해서 와인을 보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마실 때는 화이트는 몇 도, 레드는 몇 도가 좋다는 등 호들갑을 떨면서 운반, 저장에서는 “나 몰라라”라는 태도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좋은 와인은 포도재배, 양조과정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의 입에 들어갈 때까지 사후관리도 철저하지 않으면 그 명성이 깨지기 마련이다.

 

필자:▴김준철와인스쿨(원장)▴한국와인협회(회장)▴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프레즈노캠퍼스 와인양조학 수료

 

김준철와인스쿨 개강 안내

* 소믈리에 코스(야간):10월 10일(화) 오후 7시 개강, 매주 화요일 오후 7시-오후 10시, 주 1회 15주, 수강료 150만 원

* 양조학 코스:10월 11일(수) 오후 7시 개강, 매주 수요일 오후 7시-오후 10시, 주 1회 18주, 수강료 2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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