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100세, 그 때 당신은 술 마실건가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라’
어려서부터 많이 듣고 자란 말이다. 그러나 젊음이 넘쳐날 때 이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교장 선생님이 훈화에서 이 말을 자주 하셨을 때는 콧방귀도 꾸지 않던 말이 지금은 새록새록 들려온다.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이다.
해가 바뀌어 덕담을 나눌 때도 건강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돈을 잃는 것은 작은 것을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 역시 가슴 깊이 파고든다. 그래서 나이 들면 젊은 후배들에게 건강을 챙기란 말을 자주 하기 마련인 모양이다.
나이 듦에 가장 큰 변화는 한창 때는 두주불사(斗酒不辭)도 마다 않던 술을 사양하는 일이 많아진다. 때로는 술 잔 놓고 바라만 보는 경우도 생기기 시작한다.
조지훈(趙芝薰)은 ‘술은 인정이라’는 글에서 “사람의 주정(酒酊)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酒歷)과 주력(酒力)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면서 酒道에도 엄연히 段이 있다“고 갈파하면서 ‘酒道18段’을 발표한 바 있다.
주도18단은 바둑의 초자인 9급에 해당하는 불주(不酒)서 시작하여 18단인 폐주(廢酒)에 이르는데 폐주는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을 일컫는다.
주당들은 주도 18단을 대하면서 나는 어느 단에 속하는가를 마음속으로 헤아려 보면서 신나하기도 하고 쓸쓸해하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 물불안가리고 퍼 마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이 17단인 관주(觀酒: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마실 수는 없는 사람)에 올랐을 테고, 아직도 13단인 폭주(暴酒)나 14단인 장주(長酒:주도 삼매에 든 사람)에 머무르고 있는 층은 기고만장할 것이다.
뇌과학을 하는 과학자들이나 이와 관련된 의사들은 한결 같이 우리나라의 수명이 늘어나 지금의 50대들은 적어도 100세는 기본이며 재수 나쁘면(?) 120세까지 산다고 발표하고 있다.
그러니 13단이나 14단에 머무르고 있다하여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앞으로 최소한 50여년은 더 마셔야하는데 지금 멀쩡하다하여 폭주를 일삼는다면 얼마 안가 술로 인한 각종 질병에 허덕일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와 같이 맥을 이어 온 술은 해도 되는 경우도 많지만 득이 되는 경우가 많아 백약지장이란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좋은 약이라도 지나치게 먹게 되면 해가 되는 것처럼 술 역시 그렇다. 절제할 줄 아는 지혜를 일직 터득하는 길이 최상의 길이다.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처럼 우리 사회는 술자리가 많아 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회다. 젊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에 참석할 때가 많은데 이렇게 잦은 술자리는 결국 몸을 망치게 된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도 자꾸 술을 마시다 보면 주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이는 건강에 적신호가 오고 있다는 증거다. 술이 느는 게 아니라 점점 반응이 무뎌지고 몸이 망가져 가는 징조다.
동양인들 중에는 ALDH가 부족해서 술을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이 10명 중 4명 정도라고 하고, 전체 인구의 4%는 ALDH효소가 전혀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런 과학적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는 술을 마시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좋다고 여겨지기도 했었다.
술 몇잔에 얼굴이 붉어지면 필시 몸속에서 알코올 분해 효소가 부족하거나 없을 수 있다. 또한 술이 센 사람도 평생 술이 센것이 유지 되는 것은 아니다. 간을 혹사 시켰거나 신장에 무리를 주어 더는 술을 마실 수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후회 한들 때는 늦다. 두주불사를 할 수 있는 시기에 절주를 배워야 한다.
건강은 권력이나 돈으로도 살 수 없다. 오직 자신만이 지켜야 한다. 그래야 100세를 맞이 해서도 소주 몇잔은 마실 수 있을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