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49)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49)

 

 

다이몬으로서의 Dionysos

 

디오니소수 필자 남태우 교수

디오니소스 신의 두 번째 신격은 신석기 시대의 ‘유한한 개별자이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슬픔과 다시 부활하는 기쁨을 모두 겪는(pathetikos) 대지모 여신의 아들’의 모습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신격의 기원은 농경술의 발달로 인류가 한 곳에 정착 생활을 하게 된 신석기 시대에 농작물의 파종 추수의 과정을 곡물을 주인공으로 의인화하여 표현한 농경신화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

이 신화는 대지의 어머니(Terra Mater) 여신을 ‘만물을 낳고, 자라게 하지만, 또한 그것을 죽게도 만드는 자연력’ 자체를, 아들 남신을 ‘해마다 봄에 태어났다가 겨울에 죽는 곡물내지 지상의 모든 존재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종류의 신화는 그리스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수메르의 인안나-두무지(Inanna and Dummuzi) 신화’, ‘아카디아의 이쉬타르-탐무즈(Ishtar and Tammuz) 신화’, ‘이집트의 이시스-오시리스(Isis and Osiris)신화’, ‘아나톨리아(Anatolia)의 키벨레-아티스(Cybele and Atthis) 신화’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문화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의 경우, 이러한 신석기 시대의 ‘어머니 여신-아들 남신’의 원형은 청동기 시대의 제우스 중심의 올림포스 신화 체계의 두터운 표층에 의해 덥혀져 있기 때문에, 그 심층을 투시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Jean Foucault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고고학적 에피스테메(episteme는 본래 ‘지식’과 ‘과학’을 뜻하는 고대 희랍어 ‘ἐπιστήμη’에서 유래했다)를 직관할 수 있는 사람은 ‘데메테르-페르세포네’, ‘아프로디테-에로스’, ‘데메테르-디오니소스’ 신화 등의 흔적 속에서 그 원형을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다.

‘어머니 여신-아들 남신’의 신화는 농경 신화의 원형으로서 각 문화권에 공통적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을 종교의식속에 어떻게 구현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일상적 삶에 연결시키는가는 각 문화권마다 다르게 전개된다. 사실 이집트인들은 이 신화를 오시리스의 부활을 기리는 세트(Set) 의식의 근거로 삼으면서, 파라오의 권력 승계의 정통성을 인정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였다.

 

바빌론인들은 일찍부터 이 신화의 모델을 버리고, 왕권신수의 정통성을 과시하기에 더 적합한 모델-아들 남신 마르둑(Marduk)이 어머니 여신 티아마트(Tiamat)를 살해하는 청동기 시대의 신화-을 채택하여 신년제의 근거로 삼았다. 그리스인들도 또한 이 신화적 모델을 근거로 하는 ‘엘레우시스 비밀의식’이나 ‘디오니소스제’ 등을 도시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이유에서 도시 국가의 의식으로 도입하고 발전시켰다.

그러나 앞서 말한 그리스의 독특한 정치적 문화적 조건은 이 의식을 집권자의 권력 승계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이 모두 하나의 구성원이라는 동아리 의식으로 공고히 해주고 그들에게 삶의 진리를 깨닫도록 해주는 의식으로 승화시키게 된다.

이러한 결과 속에서, 우리는 원초적 자연을 개척하는 영웅으로서의 디오니소스의 모습이 이제는 일상생활에서의 문화적 삶을 개발하는 신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일찍이 헤리슨(Harrison)은 그리스인들이 ‘디오니소스제’에서 경기를 통해 가장 강한 사람을 뽑아 디오니소스 신으로 분장시킨 이유를, 그가 한 해 동안 내내(eniautos) 자연력뿐만 아니라, 도시 국가 및 개인들을 지켜 줄 힘을 지닌 수호신(Daimon)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비록 그 해의 ‘다이몬’으로 뽑히지 못한 사람들도 그 의식에 참여하면서 자신을 디오니소스 신과 동일시함을 통해, 한 해 동안 내내 자신의 삶을 그 다이몬처럼 살아 갈 준비를 하게 만듦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근거에서, 그리스인들은 이 신화적 모델에서 아들 남신을 중시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신화는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력 자체로서의 여신이 지닌 힘을 ‘zoe’로, 그 여신의 아들이 지닌 한시적 개체로서의 삶을 ‘bios’로 표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zoe’는 ‘bios’로서의 삶을 사는 개체를 그 개체 자신의 삶이 끝나더라도 또 다른 bios를 종적(種的)으로 영속시키게 해주는 역할을 해준다는 점에서 ‘bios’ 보다 더 중시될 수 있다.

그러나 인류 문화사에 최초로 인간적 지식을 정립한 민족답게 그리스인들은 인간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오직 형이상학적 유적 차원에서만 삶의 원리로 작용하는 것으로 막연히 느껴지는 zoe보다는, 구체적 삶의 차원에서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와 연관을 맺는 bios를 중시하였다. 그리스인들이 다른 개별자들과 선명하게 구별되는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강렬한 bios적 삶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그러한 삶을 체현하는 주체에 대한 표상으로서의 Dionysos 신을 중시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가면 그리고 드라마의 신으로서의 Dionysos

 

가면은 라틴어로 ‘프로소폰(prosopon)’이라고 하는데 그 기원을 설명하는 학설은 매우 다양하다. 첫째, 원시시대의 수렵민들이 사냥에서 위장의 수단으로 가면을 사용했던 것이 이후에 신령을 깃들게 하는 신접물(神接物)로 발달되었다고 설명하는 학설이며, 둘째, 싸움터에서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 얼굴·몸·방패 등에 채색을 하고 문양을 그리던 것에서 가면의 기원을 찾는 견해가 있으며, 셋째, 시체에 악령이 깃드는 것을 막고, 죽은 사람의 영혼불멸을 나타내기 위해 가면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학설도 있는데, 특히 신화적 조상을 그려내는 수단이었다고 보는 견해는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다. 넷째, 비밀결사의 구성원들이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가면을 처음 고안해냈다고 보는 학설도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결사조직이 없는데도 가면을 사용했던 많은 예를 지적하면서 이를 반박하는 입장도 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 속에서 너무나 다양한 형태의 가면이 만들어져왔기 때문에, 그 기원을 명백하게 하나로 설명하는 일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가면이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했던 것은 종교적·주술적 의식과 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제전(祭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면은 세계의 모든 문화권에서 시대적 혹은 역사적으로 계승되어진 의식 문화를 상징하는 의식용 도구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 의식들 중에 그 나라의 고유한 형태의 가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아프리카에서처럼 가면의 문화가 전통적으로 대중화된 곳은 드물다.

 

기원전 5,000여년 경에 제작되어진 남부 알제리아(Algeria) 타실리(Tasili) 지방의 암각화를 보면 아프리카의 주술사와 무희들이 가면을 쓰고, 의식을 행하였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프리카 가면의 이러한 역사성처럼 가면들이 사용되어지는 기능적 역할 또한 복잡하고 매우 다채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타실리 나제르(Tassili N’Ajjer) 암각화>비디오편집->

가면의 기능은 정치적 권위를 확인시키는 도구로, 할례 의식을 마친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었음을 입증해 주는 상징물로, 죽은 자의 영혼을 조상의 영역으로 인도해 주는 중계자의 역할로, 부족사회의 가치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는 도구로도 쓰여지며, 단순히 행사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면이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대부분의 모든 가면들이 아프리카인들의 물신 신앙의 전통 신앙(Totemism)과 영혼에 관한 강한 믿음(Shamanism)과 조화를 이루어 부족을 화합시켜 주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아름답게 조각되어진 가면들은 아프리카인들의 삶에 힘을 더해 주고 그들의 삶을 존속 시켜 주는 불가결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면이 지니는 중요성은 미학적 조형성이 아니라 그들의 의식과 풍속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가면은 절대로 독립된 매개체로써 영적인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며. 가면이 지니고 있는 포괄적 의미는 누가 가면을 쓰고 있었고, 가면을 쓰고 의식을 행함으로 가면이 지니고 있는 영적인 생명력과 음악과 춤이 조화를 이룰 때야 비로소 영혼의 힘이 살아나 일상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아프리카인들의 전통관, 종교관, 우주관의 기준이 지리적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가면에 대한 믿음은 광범위하다.

즉 아프리카인들의 믿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이 세상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독특하고 인격화된 초자연적인 존재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상적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믿는다.

아프리카인들이 말하는 초자연적인 존재(Spirit)들은 계곡, 강, 바위, 나무 등 자연의 모든 것들 속에 존재하여 자연을 조화롭게 다스리고 가꾸어 주며, 사람들의 모든 일상에 영향을 준다. 이처럼 영혼은 인간과 많은 것들을 공유하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과 촉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관여한다.

 

아프리카 아이보리 코스트(Ivory Coast)의 단(Dan) 부족의 예를 들어보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아름다움을 추구 할 수 있는 권리, 의식주의 문제, 그리고 인간이 가꾸어 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영혼의 도움으로 인해 만족되어 진다고 믿는다. 단(Dan) 가면은 아프리카인들이 상상하고 있는 영혼의 형상이며, 의식을 통해 영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렇다면, 가면이 지니고 있는 영적인 힘이 아프리카인들과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가면들이 사용되어지는 용도의 몇 가지 대표적 예는 다음과 같다.

 

<단(Dan) 가면>

 

중앙아프리카에 위치한 콩고(Congo) 피그미(Pigmi) 부족은 가면의 영적인 힘을 통해 주술사가 사용하는 의상을 제작하고 의식을 행한다. 표범 가죽으로 제작한 의상은 여성의 가슴을 상징하는 나무 조각으로 인해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가슴과 가면 모두 참피나무의 뿌리로 조각되어 지며, 참피나무의 뿌리는 죽은 자의 영혼을 상징하고 있다. 가면과 의상은 어느 특정 인물을 묘사하고 있지는 않으나 부족 중 어린 나이에 죽은 여자 선조를 상징한다. 가면의 역할은 여자 선조의 혼을 불러내어 미래에 태어날 자손의 다산(Fertility)에 도움을 주며, 할례 의식을 마친 소년들이 성인이 되어 저마다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아이보리 코스트(Ivory Coast)의 단(Dan)부족 사이에서는 가면이 성년의식 캠프에 사용되어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소년들이 성인이 되어 해야 할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준비시키는 도구로 쓰인다. 성년의식 캠프의 소년들은 온유하고 연약한 성격을 강하게 단련하여 성년 의식의 고되고 혹독한 훈련들을 참고 견뎌 낸다.

마을의 주민들 중 몇 명은 캠프와 마을을 오가는 밀사가 되어 음식을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몇 개월 동안 소년들이 어머니, 누이 혹은 다른 여성들과 격리되어 생활하는 가운데 가면을 사용하는 의식이 마을과 캠프에서 공동 개최되어 마을에 남아 있는 여성들과 영적 교류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 가면은 또한 권위와 명성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쓰여지기도 한다. 기원전 6세기 이전부터 이와 같은 전통이 제도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중앙아프리카에 위치한 쿠바(Kuba) 왕국에서는 여왕(Nymi)만이 이러한 가면을 사용할 수 있었다.

 

가면의 형상은 Woot(부족의 화합을 도와주었고 왕권의 세습을 유도해 준 Kuba의 영웅)을 상징하기도 하며, 현명한 사고와 풍부한 삶의 경험을 상징하기도 하여 여왕이 올바른 통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여준다. 또 한 가지 사회적 지배를 상징하는 가면의 예는 서부 아프리카 시에라 리옹(Sierra Leone)과 리베리아(Liberia)의 도처에 분포되어 있는 산데(Sande) 집단에 의해 제작되어진 산데 가면이다.

산데 집단은 두 국가를 공통으로 상징해 주는 집단으로 국가간의 화합을 도모해 주어 매우 강력한 정치적, 사회적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산데 집단에서 제작된 가면은 장례 의식에서부터 취임식, 귀빈이나 추장이 방문했을 때에 치러지는 모든 공식적 행사들을 대표하고 주관한다.

 

또 하나 다른 종류의 가면은 일종의 헤드 드레스(Headdress, 머리에 쓰는 관)이다. 머리 위 부분에 쓰는 헤드 드레스(Headdress)는 천이나 짚을 가면에 부착시켜 얼굴을 가려 준다. 서부 아프리카 말리(Mali) 바마나(Bamana) 부족의 치와라 헤드 드레스(Ciwara headdress)가 그중 한 가지 예이다. 치와라는 농경 의식용으로 농작물을 재배하거나 추수하는 시기에 쓰여진다. 영양의 모습을 형상화한 치와라는 다산과 풍년을 상징한다.

바마나 부족의 전설에 의하면 치와라는 농업기술을 처음으로 전수해 준 사람의 이름으로 의식에서 행해지는 춤과 음악은 치와라에게 경의를 표하는 공연과 무언극의 공연으로 나누어지며 생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과 방탕함으로 낭비되고 있는 농작물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해 준다.

마지막으로 서부 아프리카 브르키나 파소(Burkina Faso)의 보보(BoBo) 부족 사이에서 사용되어지는 가면 중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결합시켜 놓은 가면이 있다. 일명 악어 가면이라고 불리는 이 가면은 악어의 몸, 새의 부리 그리고 카멜레온의 꼬리를 가지고 있다. 가면에 조각되어진 서로 다른 종류의 동물들은 각각 다른 영적인 힘을 지니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악어 가면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으며, 부족을 잘 다스려 줄 수 있는 남성 집단의 일원 사이에서만 사용되어진다.

 

Dionysos의 세 번째 신격은 종교의식 속에서 쓰는 가면의 신, 그리고 드라마의 신이라는 모습 속에서 나타난다. 무릇 가면을 씀은 그 가면을 쓴 사람으로 하여금 가면의 모습에 자신을 합일시킴, 즉 그 가면이 지닌 속성을 자기 것으로 내재화시킴을 통해 현재의 나를 새로운 미래의 나에로 바꿔 줌을 의미한다.

물론 가면을 쓰게 됨의 역사적 기원이 그리스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통시적 관점에서 이미 기원 전 15,000년 전에 프랑스 라스꼬 동굴의 벽화에서 사슴의 탈을 쓴 동물 샤만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공시적으로는 전 세계의 모든 문화권 속에서 고대인들이 가면을 썼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특별히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을 가면의 신의 대표격으로 규정함은 그리스인들이 종교의식에서 신의 가면을 씀을 통해 그 신적 경지에 도달하고자 했고, 더구나 ‘디오니소스제’의 Dithyrambos가 발전하여 나타난 그리스 비극 및 희극 경연 대회에서 배우들이 가면을 씀을 통해 극중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종교의식은 일찍이 엘리아데가 이야기하였듯이, 현실적 물리적 시공 속의 일상적 존재를 벗어나(ek) 신화적 시공 속으로 들어가 진정한 존재를 발견하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의식들은 사회학적으로는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동질성을 부여해 주는 계기가 되고(통과 의례로서의 성인식 등), 심리학적으로는 다른 차원의 신비(Mysterium)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는 계기가 되지만(입문식), 철학적으로는 정신적으로 새로 태어나게 해주는 깨달음의 계기가 된다.

이 때, 그 다른 세계에로 들어감의 도구 역할을 해주는 것이 가면(prosopon)이다. 가면은 자신의 눈(opon) 즉 얼굴에 직접 갖다 대고(pros) 쓰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가면을 쓴 사람은 자신의 대자적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고, 그 모습에 즉자적으로 동화된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제’에서 디오니소스 신의 가면을 쓴 그리스인들은 신을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심연 저 편에 존재하는 초월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대화하며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친구와 같은 존재로 만나고 느끼는 체험을 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신과의 합일감은 모든 존재자(bios)들을 근원적 생명력(zoe)내지 신의 개별적 현현체라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 식물 신이 아무런 구별없이 서로 교통하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존재론적으로 지평이 열린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다. Dionysos는 바로 이 서로 교통하는 세계에로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하는 신이라 할 수 있다.

종교 의식이 이러한 우주론적 차원에서 모든 존재자들이 서로 교감하는 세계에로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한다면, 그리스의 드라마는 인간의 삶 차원에서 평범한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행위를 가능케 해주는 영웅들의 이상적 행동의 세계에로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사실 극장에서 드라마를 관람하는 그리스인들은 영웅의 가면을 쓰고, 일상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비극적 고통을 이겨내는 극중 주인공들의 행위를 보면서, 현실적 제약 조건들에 지나치게 쉽게 타협해 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대자적으로 반성하게 되고, 자기만은 그 극중 인물처럼 현실에 굴하지 않는 이상적인 행위를 하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다.

즉 그들은 자신을 극중의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체험을 통해, 자신이 마치 유리피데스 비극 작품의 주인공처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 어려움을 회피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정면으로 맞닥뜨려 극복해 내는 행위를 실천하겠다는 의지와 신념을 지니게 된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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