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광성주류 이희권 대표
매출 많은 도매사가 매출 줄여야 과당경쟁 없앨 수 있다
주류업계, 사회적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라도 베푸는 길이 최선
“광성주류는 직원들에게 월 매출액 6억 원을
초과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대신 가격 덤핑은
절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 대의원 총회가 열리던 날 유독 눈길을 끈 사람은 개막식 사회를 보던 李羲權(61,유,侊星酒類)대표였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는 사회는 웬만한 경력자가 아니면 실수를 연발하거나 회의를 망치기 일쑤인데 이 날 총회 사회자는 능수능란하게 회의를 이끌어 찬사를 받았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처음에는 아나운서 출신이 사회를 보는 줄 알았었다. 틈을 내서 수인사를 하고 나서야 경기도 광명시에서 광성주류를 영위하고 있는 이희권 대표라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이 날 총회석상에서 대의원 일동이 ‘생존가격 준수’를 다짐하는 결의문까지 채택 할 정도로 현재 주류도매업계는 가격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현실이다. 이런 과당경쟁이 지속되다간 주류도매업계 전체가 자멸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딱히 해결할 수 없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생존가격 준수’를 다짐하지만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지켜지지 않는 것이 업계의 현실이다.
따지고 보면 과당경쟁을 하지 않고, 제값 받고 도매업을 한다면 주류만큼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있는 업종도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주류도매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업종이 아니고, 관의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국 1,164개(중앙회집계 자료) 도매사가 제조사에 지고 있는 부채가 지난 2014년 현재로 1조 3,600억 원(중앙회집계 자료)에 달해 1개 도매사 평균 10억4백만 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기자는 중앙회 총회 때 사회를 능수능란하게 본 것처럼 이 같은 어려움에도 시원한 해답을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대표를 찾아 나섰다.
기자가 이 대표를 찾은 날은 긴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이었다. 더욱이 전 날 개성공단 전면 중단 발표로 나라 전체가 어수선 한데다가 설 연휴가 끝나긴 했어도 연휴의 여운이 남아 있는 날이라 조심스러웠다.
광성주류가 위치한 곳은 한적한 시골풍경이 물씬 풍기는 광명시 외곽. 주류장 담장 너머로는 논도 있고, 밭도 있어 목가적인 풍경이 물씬 난다. 서울에서 맡던 공기와는 사뭇 다르다. 공기가 달다고나 해야 할까.
◇동반성장 위해 많은 매출 발생시키는 도매사는 매출억제가 필요하다
연휴 끝자락에 고맙게도 시간을 내준 이 대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주류도매업계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동반성장을 해야 합니다. 동반성장이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말처럼 잘 되지 않는 것이 동반성장입니다. 오죽하면 MB정부에서도 ‘동반성장위원회(현재 동반성장연구소)’까지 만들어 이를 실천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특히 주류도매사가 동반성장을 해야 하는 이유는 주류도매업은 면허사업자 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류산업의 선도적 역할은 물론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더불어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업체는 월 70-80억 원의 매출을 일으키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2-3억 원 매출을 올리기도 버거워 하는 업체가 있습니다. 많은 매출을 일으키는 업체가 조금씩 양보를 해서 더불어 잘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과당경쟁을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많은 매출을 올리는 사람한테 적게 팔라고 하는 이야기가 먹힐까요.
“주류도매업은 일반 도매업과는 다릅니다. 정부로부터 면허를 받아서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정부는 해당 지역의 거주 인구가 증가하면 신규로 면허를 발급합니다. 기존의 주점이나 음식점에서는 어느 도매장이건 거래를 하고 있을 텐데 신규로 면허를 발급 받은 업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거래처를 확보하려 들것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선물(각종 내구소비제)도 제공하고, 가격도 깎아서 거래를 트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기존 도매장에서도 거래처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겠죠. 이런 과정에서 광당경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악순환의 연속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방법론에 들어가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만. 전국 도매사의 1년간 평균 매출액이 56억7천3백만 원으로 월 평균 4억7천3백만 원쯤 됩니다. 그런데 월 매출을 몇 십억 원으로 끌어 올리는 업체가 있다면 결국 어느 업체는 평균 매출이하로 떨어지게 되겠죠, 그래서 너무 많은 매출을 발생시키는 업체는 조금씩 줄여나가면서 제 가격을 유지한다면 회사 이익 면에서는 오히려 증가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광성주류에서는 어떻게 운영하는가요.
“우리 광성주류는 20여 년간 전국평균 매출액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월 매출액 6억 원을 초과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대신 가격 덤핑은 절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6억 원도 따지고 보면 전국 평균보다는 다소 높지만 그래야 전국 평균 매출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 회사의 이익도 그만큼 감소하는 것 아닌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많이 팔아서 적게 이익을 내는 박리다매(薄利多賣)식 보다는 적게 팔더라도 제 값을 받고 팔면 순 이익 면에서는 오히려 높아지게 됩니다. 실제로 주변의 동종 업체 대표들 가운데 우리 회사보다 많은 매출을 올리는 대표들에게 물어보면 순 이익 면에서는 광성주류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이 대표의 주장이 자칫 사회주의 이념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가질 만 한데요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에게는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지만 주류도매업계 전체가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야만 합니다. 보십시오, 현재 수도권에 산재하고 있는 주류도매사 가운데 운영이 안돼서 팔려고 내놔도 살 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신규면허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수도권에서 5개 지방에서 1개의 신규업체가 나왔습니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신규업체가 나오겠죠. 그러면 이들 업체는 거래처를 확보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가격이 파괴되는 과당경쟁이 발생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을 찾는다면?
“현재의 제도로는 실천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많은 업체들이 도덕적 가치관과 사명감을 가지고 과당경쟁을 자제하기란 참으로 힘듭니다. 방법은 내부규정(법률적 가치)을 제정해서 규제를 강화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잘 살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어려워지는 것은 자명해집니다.”
◇ 많이 파는 사람들이 문제다… 중산층의 볼륨을 키워야
가장 이상적인 경제구조는 다이아몬드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주장이다. 그래야만 중산층이 잘 살 수 있는데도 현실은 극과 극 형태로 달려가고 있다. 중산층이 잘 살 수 있는 경제구조를 위해서 주류도매업계에도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 이 대표의 논리다.
-이 대표의 지론은 결국 많이 파는 업체가 매출액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인데요.
“매출액이 많은 업체들은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매출액 높이려고 가격 깎아주고 내구소비제 뿐만 아니라 냉장고, TV 같은 것 제공해주면 업체에 남는 이익은 감소하기 마련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제값 받고, 값비싼 내구소비재 제공하지 않으면 업체에는 그 만큼 이익이 쌓이기 마련입니다. 이는 제가 몸소 실천 하면서 터득한 진리입니다.”
-다른 도매사들은 거래처에 대출도 해주고 선물 공세도 펴는데 광성주류는 거래처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요?
“우리는 그런 것 대신해서 거래처 대표들과 SNS 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매출을 거의 방문판매 식으로 하고 있어 항상 업주 대표들과 대화를 통한 건의나 애로사항을 해결 해드립니다. 그리고 이제는 물질적인 것보다는 마음이 통하는 감성시대 아닌가요. 그래서 업주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불심에서 배어 나온 나눔의 철학이 실천되다
이 대표가 주장하는 논리를 쉽게 받아들일 업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지만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 대표의 주장에 상당 부분 수긍이 간다.
<콩 한 쪽도 나우어요>(고수난 글)라는 말도 있듯이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논리가 있다. 슬픔을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든다.
나눔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뭄을 어렵게 생각하기 쉽다.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서 내 것을 희생하거나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은 가진 게 많을수록 오히려 더 나누기 힘들어한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 구조에서 이희권 대표가 주류업계에서 이 같은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어디에 있을까.
“사실 우리 사회에서 술을 취급하는 분야의 사람들이 여타 업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접을 덜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나누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주류업계에서도 기부, 나눔, 봉사, 재능 등 다양한 주제와 더불어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같은 안타까운 심정을 다소라도 달래주기 위해 이 대표는 주변에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전달하고 매월 쌀 00가마를 불우이웃돕기로 전달하고 있단다.
이 대표 사무실에 걸려 있는 큼직한 염주(念珠)를 보니 불심(佛心)도 깊은 모양이다. 듣자하니 이 대표는 모태 신앙이라 한다. 이 대표의 나눔의 철학이 불심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계속해서 도매업의 위상정립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술을 취급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물장사란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왜 그렇게 보는 것일까.
“그 문제에 대해 깊은 연구나 자료는 없습니다. 보통 술장사나 차를 파는 사람을 일컫는데요, 술보다 커피가 물장사에 더 가깝지 않습니까. 막걸리를 제외하고 술에 물을 타서 파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사회인들이 물장사라고 하는 데는 아마도 봉이 김 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 것처럼 술을 쉽게 만들어서 비싸게 판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류업계가 물장사 취급을 받는 것은 베풀지 못하는 업계 풍토 때문에 기인하고 있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프랑스처럼 술을 취급하는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대접을 받으려면 많이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당경쟁을 할 것이 아니라 베푸는데 방점을 둔다면 우리도 대접받으며 살 수 있겠죠”
◇ 지방정치의 꿈 접지 못하는 이 대표
이희권 대표는 충남 서산 출신이다. 서산에서 초·중학교를 나오고 서울에서 상업고등학교를 나왔다.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정치와 관련된 신문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현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과 정당생활을 하게 된다. 아직도 이 대표는 지방정치의 꿈을 접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제가 광성주류를 인수 한 것이 1996년 입니다. 벌써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주류도매업도 경영 하면서 제가 살고 있는 금천구 구의원 선거에 나가서(2002년과 2006년) 아쉽게도 떨어졌고,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 시의원에 출마했지만 역시 당선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선거에도 역시 도전 할 것입니다.”
이 대표는 이 대목에 대해서 “정치가 목적은 아닙니다. 지방정치에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지난 번 선거에 나가서 저는 ‘당선되면 세비를 환원해서 불우 이웃돕기에 쓰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보다 투명하고 지역민들이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제 꿈입니다.”
이 대표는 현재 사단법인 민족통일협의회 금천구 회장과 충청포럼 금천지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경기남부지방종합주류도매업협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이 대표의 주장을 가식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대표처럼 욕먹을 각오를 하고 과당경쟁을 타파하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선다면 언젠가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도 나타날 것이다.
자리를 뜨면서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어떻게 주류업계 포럼이나 회의 때 사회를 맡게 되었나요?
“제가 당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당에서 하는 세미나나 포럼 같은 데서 사회를 보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아마 그런 때 참석하셨던 우리 업계분이 저를 추천하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거래처 그리고 동종업계에 계신 분들에게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희망찬 2016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국내는 물론 전 세계는 경제적면에서 총체적 난국((perfect storm)으로 어렵다고 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모두가 일신하여 시장 질서를 지키고 배려하는 마음을 배가 시킨다면 어려움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특히 주류업시장은 여러 요인으로 주류소비가 감소하는 추세라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콩 한쪽도 나눈다는 심정으로 이웃과 동종업종에 배려하는 마을을 가진다면 모든 것을 슬기롭게 이겨 낼 것이라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