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물, 음수사원(飮水思源)의 정신<上>

남태우 교수 칼럼

불타는 물, 음수사원(飮水思源)의 정신<上>

 

남북조(南北朝)시대, 북주(北周, 556〜581)에 유신(庾信, 531〜581)이라는 문인(文人)이 있었다. 자(字)는 자산(子山)이다. 신야(新野, 지금의 하남성 내)사람으로, 양(梁)나라에서 어사중승, 우위장군 등의 관직을 지냈다. 궁정체(宮廷體) 시문에 능하였으며, 작품으로는 애강남부(哀江南賦), 고수부(枯樹賦), 원가행(怨歌行)등이 있다.서기 554년, 그는 양(梁)나라 원제(元帝) 소역(蕭繹)의 명을 받들어 서위(西魏)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장안(長安)에 도착하였다. 유신이 고국을 떠나와 있던 동안, 양나라는 서위에게 멸망되고 말았다. 유신은 당시 문단에서 그 명망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서위의 군주는 그를 강제로 장안에 잡아두고 대관(大官)으로 삼았다. 유신은 고향을 떠나 북조에서 28년 동안 머무르며 고향을 매우 그리워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런 마음을『유자산집(庾子山集)』7권의 <징주곡(徵周曲)>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과일을 먹을 때는 그 열매를 맺은 나무를 생각하고(落其實者思其樹),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네(飮其流者懷其源)”(1) when you drink from the stream, remember the source. 2) When you drink water, think about its source-never forget where one’s happiness comes from.)

이는 과일도 물도 그 본향이 있기 마련이어서 ‘근본을 잊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이를 ‘음수사원(飮水思源)’ 또는 ‘음수지원(飮水知源)’이라고도 한다. 유사한 말로 ‘보본반시(報本反始)’, 즉 출생하거나 자라온 근본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보답하라는 의미이다. ‘보본반시(報本反始)’는『예기(禮記)』 <제통(祭統)>에서 제사의 의의에 대해 ‘제사는 죽은 이를 계속 공양함으로써 효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는 외물(外物)이 밖에서 이르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것이며, 근본에 보답하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報本反始)’라고 한 데서 기원한다. <교특생(郊特牲)>에서도 ‘만물은 하늘에 근본하고 인간의 조상에 근본하니, 이것이 조상신을 상제(上帝)에게 배향(配享)하는 이유이다. 교제(郊祭)는 크게 보본반시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를 미루어보면 ‘보본반시’의 ‘본(本)’은 ‘하늘’을 의미하고 ‘시(始)’는 조상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가지 한자성어 모두 ‘근본을 잊지 말라’는 경구적 의미를 담고 있다.옛날 중국의 상류사회에서는 주연(酒宴)을 베풀 때 반드시 냉수부터 준비하고 마셨다고 한다. 만약 주빈이 손님에게 먼저 냉수 한 잔을 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큰 모욕을 주는 것이나 진배없는 것으로 여겼을 정도였다. 기록에 보면 ‘야인(野人)’에게는 술부터 권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야인’이란 우리말로 ‘상것’ 또는 ‘오랑캐’를 일컫는다. 속 터놓고 함께 무슨 이야기든 함께 할 수 없음을 말한다. 이런 주법(酒法)은 황실에서 비롯한 것이다. 황제가 신하에게 만찬을 베풀 때 먼저 내리는 것이 ‘현주(玄酒)’였기 때문이다. ‘현주’는 언뜻 술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인데, 실은 청수(淸水), 즉 맑은 물을 뜻하는 말이다. 현주는 술의 근원이 물임을 강조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물의 빛이 검기 때문에 ‘현(玄)’ 자를 붙인 것이며, 태곳적에는 술이 없어서 제사를 지낼 때 술 대신 물을 썼으므로, 제사나 의식에 쓰는 물을 말한다. 술도 옛날에 자가용(自家用)으로 빚을 수 있을 때는 맨 처음 노란 청주(淸酒)를 떠서 제주(祭酒)를 봉(封)하고 난 뒤에 손을 대접하곤 했으나, 자가용 주(酒)가 없어진 뒤는 술을 사온 것은 부정하다고 예설(禮設)에 있는 대로 냉수를 청주 대신 ‘현주(玄酒)’라고 쓰는 법이 있었는데, 이것은 신을 속이기 쉽다는 것보다 그들의 신에 대한 관념이 ‘양양히 그 위에 계신 듯’ 하다는 말로 보면 된다. <예기(禮記)> <향음주의(鄕飮酒義)>에 이르기를, “준(尊)에 현주(玄酒)가 있으니, 백성들에게 근본을 잊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다(尊有玄酒 敎民不忘本也).”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註)에 이르기를, “옛날에는 술이 없었으므로 물을 가지고 술 대신 예를 행하였다. 그러므로 후세에서는 이를 인하여 ‘물’을 일러 ‘현주’라고 하였다.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예가 생겨난 유래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였다. 또 <예기> <예운(禮運)>의 주에 이르기를, “매번 제사를 지낼 적마다 반드시 ‘현주’를 진설하여 놓기는 하나, 실제로는 ‘현주’를 가지고 잔에 따르지는 않는다.” 하였다. 이를 보면 ‘현주(玄酒)’는 술이면서 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시공간적 상황에 따라 그 기능성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술이 없을 부재한 경우에는 술의 대용으로 사용되었을 알 수 있다. ‘현주(玄酒)’란 제사에 올리는 ‘정화수(井華水, Aqua Pura)’로 무술(제사 때에 술 대신으로 쓰는 맑은 찬물. 현주(玄酒))라고도 한다. 옛날에 술이 없을 때는 물을 사용했는데, 후세에 그 전통을 이어 근본을 잊지 않게 한다는 뜻에서 ‘현주’라고 하였다. 현주는 언뜻 술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인데, 실은 청수(淸水), 즉 맑은 물을 뜻하는 말이다. 현주는 술의 근원이 물임을 강조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정화수(井華水)’는 첫새벽에 처음 길어 올린 맑고 깨끗한 물로 ‘정안수(正眼水)’라고 하며, 맑음의 상징이다. 부정한 것이 개입되지 않은 청정한 즉 화학적인 맑음보다는 신앙적인 맑음이 강조되는 상징이다. ‘정화수’는 성질은 평(平)하고 맛은 달며[甘] 독은 없다. 몹시 놀라서 9구로 피가 나오는 것을 치료하는데 입에서 냄새가 나는 것도 없애고 얼굴빛도 좋아지게 하며 눈에 생긴 군살과 예막(瞖膜)도 없애며 술을 마신 뒤에 생긴 열리(熱痢)도 낫게 한다. 정화수란 새벽에 처음으로 길어온 우물물을 말한다. 정화수에는 하늘의 정기가 몰려 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보음(補陰)약을 넣고 달여서 오래 살게 하는 알약을 만든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매일 이 물에 차를 넣고 달여서 마시고 머리와 눈을 깨끗하게 씻는데 아주 좋다고 한다. 이 물의 성질과 맛은 눈 녹은 물(雪水)과 같다. 정화수는 약을 먹을 때나 알약을 만들 때에도 다 쓰는데 그릇에 담아 술이나 식초에 담가 두면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소망을 담아 기원을 바랄 때 올리는 헌주의 또 다른 상징이다.

황제가 연회에서 ‘청수’ 즉 물부터 마시게 한 까닭은 두 가지로 풀이된다. 첫째는 황제 앞에서 술에 취해 실수하지 않도록 술 깸을 미리 다짐하는 것이고, 둘째는 술의 근원이 물임을 일깨우는 뜻으로 ‘짐이 곧 국가’임을 상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의 위엄과 존숭을 잃지 말라는 계율이 담겨져 있다. 모두 ‘음수사원(飮水思源)’의 철학을 주법에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황제가 ‘음수사원’을 강조하면서 현주를 내리는 본심은 다름 아닌 ‘배신’이 아닌 ‘충성’에 있음을 말하는 셈이다. 맑은 물같은 정신으로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라는 암묵적 지시이다. 아무튼 술의 근원이 물이라는 생각의 틀은 동서와 고금에 변함이 없다. 물맛에 따라 술맛이 좌우되는 이치는 술과 물의 관계를 웅변해 주고도 남는다.물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물 ‘양수(陽水)’이며, 도 다른 하나는 사람이 볼 수 없는 물 ‘음수(陰水)’라고 한다. 음수는 허영이 창창하며 밝히지 않은 곳이 없고, 관섭하지 않는 곳이 없으며, 형상을 보려야 볼 수 없고 들으려야 들을 수 없으며 천지 공간에 가득 혼연(渾然)한 큰 기운을 지칭한다. 즉, 공기를 말함이다. 일체 생명이 공기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양수에 관하여는 관심이 있지만 음수에 대해서는 무관심 한 것이 일반적이다. ‘불타는 물(burning water)’로서 물만 보는 것은 ‘양수’에 해당되며 ‘불타는 물’로 인식한 것은 ‘음수’라고 하겠다.

 

사람이 모(母)체에서 태어날 때 음수를 접하면 울음이 터지고, 죽을 때는 육신과 음수가 분(分)이 되면 죽는다. 육신이 공기 호흡을 못하면 죽음이다. 죽을 때의 고통은 심한 것이라고 한다. 만물 중 오직 사람만이 기회가 있어 가장 신령하다고 하지만 물에 고마움을 전혀 모르고 있다. 세상 이치는 양과 음의 두 인자가 요합하여 자기 운동과 자기 발전을 도모하여 보전한다. 사람이 공기를 호흡하는데도 거력(去力)과 흡력(吸力)작용을 하게 된다.이상과 같이 물에 관한 사례를 나름대로 표현 했지만 한 세상 사람들이 물에 관한 근원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자연의 이치, 하늘의 이치는 물샐 틈 없이 면말 하지만 사람들은 부지불식(不知不識)이다. 풍우상설(風雨霜雪)이 그때를 잃지 않고 그 차례를 변치 아니하니 만약 이것을 어긴다면 큰 재앙이 일어난다. 그래서 수억 년간 조금이라도 변함없으며 앞으로도 불변할 것이다. 이에 따라 인간 생활에도 원리원칙이란 말을 하게 됐다. 다시 말하자면 상고(上古)때부터 춘추가 서로 하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성하고 쇠하면서 그 자리를 옮기지도 않고 가려듣지도 않으니 하늘 조화의 자취가 분명하다. 때문에 물의 근원을 알게 되면 천지 이치를 알게 되고, 천지 이치를 알면 엉뚱한 짓을 못한다.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이 천지 이치를 돌보지 않고 자행자지 하는 언행은 삼가야 할 것이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을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들이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중앙대학교(교수)▸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헌정보학과 박사▸2011.07~2013.07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2009.07 한국도서관협회 부회장▸2007.06~2009.06 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2004.01~2006.12 한국정보관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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