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가 누군지 알아”

김원하의 취중진담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필자가 어렸을 적에 “헛 가다 부리지 마라”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헛 가다‘의 어원은 ‘헛’은 헛제삿밥의 헛처럼 참되지 못한 것을 뜻하고 ‘가다’는 일본어 가다(肩:어깨)를 뜻하나니까 힘도 없는 사람이 힘 센 것처럼 폼을 잡고 설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풀이된다. 이 말 역시 일본의 잔재다. 요즘 젊은이들은 거의 모르는 말일 것 같다.

갑자기 ‘헛 가다’란 말이 생각난 것은 요즘 유튜브 쇼츠에 지나치리만큼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내용을 가지고 여기저기서 우려먹는 것을 보고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역시 헛 가다를 부리는 사람들의 상투적인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개그를 칠 때 “너! 내가 누군지 알아”하면 ‘네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라고 응수한다.

쇼츠(Shorts)를 제작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작가가 있을 터, 처음에 국회의원들을 주인공으로 제작하여 국회의원들을 골탕 먹이니 재미있어 조회 수가 많이 나온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나 이 지역 국회의원이야, 나랏일 하다 보니…” 그렇게 헛소리 치다가 개망신을 당한다.

군부대 위병소에서 민간인은 출입할 수 없다고 근무자가 말하자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대대장 사모”라며 문 열라고 고함을 치는 장면을 사단장이 쳐다보다가 혼내는 장면을 보면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낀다.

뿐인가 돈 많고 권력 있는 학부모가 자기 아이의 담임선생한테 “너! 내가 누군지 알아”하면서 큰소리치다가 교장 선생님께 혼나는 장면, 동네 건달이 작은 식당을 찾아 “너! 내가 누군지 알아” 하며 문을 닫게 해주겠다고 공갈치는 장면에서 역공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면 고소하다.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국회의원이 서민들에게 “너! 내가 누군지 알아”하며 甲질을 하면 乙입장의 국민은 설설 기어야 하는데 오히려 을이 갑(국회의원으로 설정)에게 호통을 친다. 결국엔 갑의 잘못이 드러나 갑이 꽁지가 빠지게 줄행랑을 친다는 것으로 결말이 나온다. 이를 보고 힘없는 서민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에 쇼츠를 찾아보게 되는 것인데 최근에는 엉뚱한 내용에다가 “너! 내가 누군지 알아”를 붙여 재미가 반감된다.

필자도 하도 궁금하여 인터넷에 들어가 “너! 내가 누군지 알아”를 검색해 봤더니 허보희 란 분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책을 ’책보자기‘란 출판사에서 2013년 1월에 발행했다는 것. 주로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책이라고 했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요즘 전개되는 의미와는 영 딴판의 내용이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를 외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너 내 말 한마디면 넌 당장 해고야”라고 큰소리친다. 정확한 통계는 없어도 이런 허접한 공갈로 해고를 당한 사람이 있을까?

쇼츠는 2020년 9월 인도를 시작으로 다음 해인 2021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쇼츠는 일반 영상과 달리 자동으로 반복재생이기 때문에 조회 수를 쉽게 올릴 수 있다. 이것으로 구독자와 조회 수를 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예 Shorts 전용 채널을 만드는 유튜버도 보인다.

쇼츠에 익숙해지다 보니 1분 이상의 영상물 시청을 꺼리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옛날 허름한 집들로 마을이 형성되었을 때 어느 술주정뱅이가 밤늦게 대포 한잔 걸치고 “야 인마 내가 누군 줄 알아, 내가 이래 봬도 마~” 허공에 소리칠 때가 들리는 것은 개 짖는 소리뿐이었다.

지난 1월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국민 갑질 인식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3.8%가 ‘우리 사회에 갑질이 심각하다‘고 답변했다. 4명 중 1명(26.9%)은 지난 1년간 갑질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가장 큰 원인으로 권위주의 문화(40.7%)를 꼽았다.

이 통계를 봐도 사람들은 거의 갑질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군림해서 큰소리치고 살고 싶을 것이다.

우리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갑질은 2014년 12월 5일 뉴욕발 대한항공 일등석에서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가져다준 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난동을 부린 데 이어,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 중이던 항공기를 되돌려 수석 승무원인 사무장을 하기(下機)시킨 갑질이 아닐까.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로 윗사람에게는 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아랫사람들에게 자주 쓰는 대표적인 표현이 아닐까. 옛말에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했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멍멍

<삶과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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