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몰래 홀짝홀짝…알코올중독자 10명 중 6명
“술병 숨겨본 적 있다”… 몰래 술 마신 장소 1위 집 63%
옷장, 서랍장, 싱크대, 변기통 등 집안에 숨겨
김OO씨는 얼마 전 아내 이OO씨를 직접 병원에 데려가 각종 검사를 받았다. 최근 횡설수설하거나 멍할 때가 잦아 걱정되었던 아내가 기절해 쓰러져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함께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하지만 MRI 검사까지 마쳤음에도 아내의 몸에는 이상이 없었다. 담당 의사는 간 수치가 무척 높게 나타났다며 아내의 음주 문제를 의심했다. 그는 아내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믿기 어려웠지만, 계속된 의사와 남편의 추궁에 이 씨는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혼자서 술을 마시곤 했다고 토로했다.
이 일로 김 씨는 아내로부터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그러나 며칠 못가 이 씨는 다시 몰래 술을 마셨고, 이후 술병을 숨기고 찾는 숨바꼭질과 부부싸움이 반복됐다. 그제야 김 씨는 아내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알코올전문병원을 찾게 됐다.
이 씨처럼 술병을 숨기거나 몰래 술을 마시는 일이 반복된다면 알코올중독일 가능성이 높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이 지난 9월 5일부터 2주일간 입원 환자 2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62%(135명)가 ‘술을 숨긴 적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술을 몰래 마신 적이 있다’고 답한 환자는 무려 77%(168명)에 달했다. 술을 숨어서 마신 장소는 집이 63%(137명)로 가장 높았다.
술을 숨긴 장소 ▲장롱/옷장 ▲냉장고 ▲책상/서랍장 ▲싱크대 ▲화장실(변기통) ▲침대 ▲베란다 ▲가방 ▲차 안 ▲직장 ▲신발장 ▲주머니 순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빈 화분, 계단, 주차장, 창문 뒤, 우편함, 쇼핑백, 쌀통, 장독대, 공원 등 다양한 대답이 뒤를 이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허성태 원장은 “혼자 또는 몰래 술을 마시며 특이한 장소에 술을 숨기는 행동은 알코올중독의 특징 중 하나”라고 설명하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자신의 행동이 문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술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알코올중독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허 원장은 “보통 스트레스 해소나 기분 전환을 위해 가볍게 한두 잔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점점 내성이 생기다 보면 더 많은 양의 알코올을 섭취해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며 “이러한 알코올의 효과를 약물처럼 받아들이게 되면 상습적인 음주와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신의 음주 문제나 음주 행위의 심각성을 부정하거나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 변명과 핑계를 대는 건 알코올중독자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증상이다. 문제는 몰래 술을 마시고 술병을 감추는 등 방어적인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문제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심각한 상태에 이른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허성태 원장은 “특히 여성들은 사회적인 편견이나 주위 시선 때문에 문제를 감추려는 경우가 많은 데다 대부분 집에서 혼자 몰래 술을 마시기 때문에 함께 사는 가족들조차 문제를 알아채기 쉽지 않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허 원장은 “몰래 술을 마시는 상황이라면 이미 술에 대한 자제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사소하더라도 음주 문제가 엿보인다면 미루거나 방관하지 말고 가까운 알코올 상담센터나 전문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일 술병을 숨기거나 버린다면 알코올 중독자는 술을 손에 넣기 위해 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며 “가족들의 잔소리나 걱정이 늘수록 죄책감이나 자기에 대한 연민과 후회가 커져 다시 술을 마실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