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노래를 다시금 이어가며

김상돈의 酒馬看山(16)

끊어진 노래를 다시금 이어가며

 

병신년(丙申年) 끄트머리에서 뒤를 본다. 되짚어 보기 싫은 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옳고 그름이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엮어져 있다. 어느 것이 더하고 덜했는지 헤아리려 든다. 복잡하다. 아니 어지럽기조차 하다. 자연(自然)은 그대로인데 굳이 따질 일은 무언가? 취옹(醉翁)의 마음과 뜻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지나온 한해도 물과 불의 만남처럼 함께 뒤섞여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려니 접어둔다. 한결 차분해지고 결기가 가라앉는다. 불의 노래가 물의 노래로 바뀌는 것이다.

오랫동안 이 핑계 저 핑계로 손을 놓았다. 다시금 코딱지 같은 글을 쓰자니 내자(內子)가 한사코 말린다. 연식(年式)도 깊어가고 솜씨도 마냥 그 수준인데, 머리 싸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건강에도 좋을 게 없다며 편히 살라고 한다. 그럴 요량이면 차라리 막걸리 한사발이 훨씬 더 득이 될 거라 덧댄다. 주변이 이러니 책상머리를 차고앉아도 뒤가 근질근질하다. 아주 진심은 아니겠지만, 그냥 흘려듣고 무시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세월의 무게(?)가 사리분별을 좌우하는 형편이다.

그래도 코의 간질거림을 참을 수 없다. 코딱지가 있는데, 그냥 두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코딱지는 콧물의 결정체다. 콧물이 굳어서 코 속에 들러붙어 있는 것이다. 손을 쓰지 않고는 떼어낼 수 없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참다가도 어느 시점에 가면 저절로 손이 가게 마련이다. 손을 놓고 있는 가운데 콧물이 코딱지가 되어 이제는 아주 신경 쓰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떼어 내야 직성이 풀릴 정도다. 병신년(丙申年) 한해를 실하게 묵혔던 딱지인 것이다. 코딱지를 제거하는 데는 새끼손가락이 효율적이다. 다른 손가락은 규격에 맞지 않거나 비효율적이다. 또한 새끼손가락은 약속의 의미도 담고 있다. 그동안 주마간산(酒馬看山) 격으로 달려온 길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달리는 말(走馬)이 아니라 술 취한 말(酒馬)일지라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한 몫을 한다.

이래저래 끊어진 노래를 이어가려니 힘이 든다. 그 옛날 방앗간의 원동기를 다시 돌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앞뒤도 구분이 안 되고 치열함도 떨어진다. 눈은 침침하고 손가락은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깃털처럼 가벼운 글도 천근만근의 무게로 내리누르는 것이다. 탄력이 붙고 시동이 걸리려면 다소간 시간이 필요하리라. 휴필(休筆)의 안타까움이다.

중국 금나라의 시인이자 역사가인 원호문(元好問,1190~1257, 字 裕之, 號 遺山, 太原 출신)은 멸망한 나라의 유민으로서, 운필(運筆)의 어려움을 이렇게 읊조린다. “가늘디가는 붓을 들고, 힘을 다해도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노쇠하여 더디어짐을 스스로 아쉬워하지만 걱정과 두려움을 누구에게 들려줄까. 뒤척이고 또 뒤척여도, 날은 아직 밝지 않았는데, 컴컴한 창가에 간간히 빗소리만 울린다.”

징기스칸이 세운 원나라에 조국이 무참히 짓밟히게 되면서 벼슬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부인과도 일찍이 사별했고 형도 몽골군과 싸우다 전사한다. 그는 술을 즐겨했다. 술은 그의 몇 안 되는 친구이자 삶이었다. 여러 편의 음주시(飮酒詩)를 남겼고, 민간에서 유실되었던 양조방법을 되살린 ‘포도주부’(葡萄酒賦)도 쓴다.

당시 남송은 문화 대국이었던 반면,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는 그야말로 문화 불모지였다. 천재시인 원호문의 붓은 망국(亡國)을 기록하는 붓이 된다. 야사정(野史亭)을 지어 말년을 보내며 금사(金史)의 기초가 되는 ‘중주집’(中州集)을 펴냈다.

술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한 원호문은 이미 15세에 문재(文才)를 드러낸다. 그의 시집 매피당(邁陂塘)에 실린 안구사(雁丘詞)는 기러기의 애틋한 정(情)을 세사에 빗대어 노래한 것이다. ‘세상 사람이여! 정이란 무엇이 길래 이토록 생사를 가름하느뇨? 하늘을 나는 그대들은 지친 날개로 추위와 더위를 얼마나 겪었던고? 기쁨과 즐거움에 따라오는 이별의 고통 속에서 헤매는 홀로 남은이여. 앞서간 그의 이야기 아스라이 만리 구름으로 겹쳐지고 온 산이 그 빛을 서서히 잃을 때, 홀로 선 그림자는 누굴 찾아 날아갈거나?…(問人間 情是何物 直敎生死相許, 天南地北雙飛客 老翅幾回寒暑, 歡樂趣 離別苦 是中更有癡兒女, 君應有語 渺萬里層雲 千山幕景 隻影爲誰去….)

안구사의 애틋한 한 구절처럼 한 해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매사가 가고 오는 것이지만 유산(遺山) 원호문(元好問)의 안구사는 신필(神筆) 김용(金庸)의 대하소설 ‘신조협려'(神鵰俠侶)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물의 노래와 불의 노래도 다시금 이어질 것이다.

 

글쓴이 김상돈 : 물과 불을 넘나들면서 명정(酩酊) 40년을 살았고, 한양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마치고 나서 신문사 정치부 기자와 국회 입법보좌관, 정당 부대변인, 공기업 이사, 대학교수 등을 두루 거친 뒤 지금은 4.19혁명 정신을 계승발전 시키는 모임,『사단법인 4월회』사무총장과 『KAIMA』전무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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