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백관이나 사신들만이 즐겨 마실 수 있도록 제한하는 특별주 ‘법주(法酒)’

박록담의 복원 전통주 스토리텔링(36) 溫故知新

 

 

문무백관이나 사신들만이

즐겨 마실 수 있도록 제한하는 특별주 ‘법주(法酒)’

 

 

“조선(朝鮮) 말엽(末葉) 중종 대(中宗 代)에

궁중(宮中)과 조정(朝廷)의 문무백관(文武百官)이나,

외국(外國) 사신(使臣)들만이 즐겨 마실 수

있도록 제한하는 특별주라는 것이다.”

 

 

 

처음 술을 공부할 때 “우리 술을 빚는 일련의 과정을 어떻게 표현하지?” 하는 고민에 빠졌었다. 전국의 민가를 돌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통해서 가문비법의 가양주들을 섭렵하게 되었는데, 사람마다 “술 담근다”, “술 만든다”, “술 빚는다”, “술 닦는다”, “술 내린다” 등 각각의 표현들을 써 혼돈스러웠다.

“왜 한 가지 일을 두고 저마다 다르게 표현하지?” 하는 의문과 함께 이 땅의 양주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가양주라고 하지만, 술을 빚는 용어조차 통일이 안 되어서야! 그간 학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지?” 하는….

그러다가 우리 술 빚는 법에 대한 단초를 찾게 된 것이 경주최 씨 가문의 ‘교동법주(校洞法酒)’를 찾아 주품명에 얽힌 유래와 현장에서 술을 빚는 과정을 목격하고서 나름 우리 술 빚는 법에 대한 정리를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법주’를 비롯하여 고서에 수록된 수백 가지 주품명에 따른 주방문을 분석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를 살펴보니, 전통주는 이양주(二釀酒)가 주류를 이루고, 탁주(濁酒)나 증류주(蒸溜酒)보다는 청주(淸酒)가 압도적인 비율로 나타나고 있으며, 밑술과 덧술을 빚는 데 따른 어떤 원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이를 두고 ‘주방문(酒方文)’이라고 하며, 주방문에 기초한 대표적인 술로 ‘법주(法酒)’ 또는 ‘방문주(方文酒)’가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주방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방문주’편에서 언급하였으므로 여기서는 ‘법주’에 한하여 설명과 함께 주품명에 따른 의미를 부여하기로 한다.

경주 지방에서 빚어지고 있는 ‘교동법주’의 유래는 “조선 중종 대에 궁중과 조정의 문무백관이나, 외국 사신들만이 즐겨 마실 수 있도록 제한하였던 술로, 궁중의 사옹원(司饔院)에서 빚었던 특별 주였는데, 이를 현재 ‘교동법주를 빚고 있는 최경(중요문형문화재) 선생의 선대(先代) 최국선 공께서 가양주로 전승하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경주 교동법주’의 가양주 전승 유래에 따르면 ‘법주’는 “궁중의 술(법온, 法醞)”이라는 뜻이 있고, 다른 설로는 “이름 있는 절간 주변에서 빚어지고 있는 술을 모두 ‘법주’라고 불러왔다.”고 하였으므로, ‘법주’는 과거 고려시대부터 대량생산을 하여 왔던, “사찰에서 빚는 법식(法式)대로 빚는 술”이라는 뜻도 있다.

따라서 주방문에 의한 ‘법주’는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법주’의 주방문을 수록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헌 기록은 조선시대 후기의 서유구에 의해 저술된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이다.

그런데 <임원십육지>의 주방문을 보니, 중국 문헌인 <제민요술(齊民要術)>의 ‘우법주방(又法酒方)’을 전제한 것이다. <제민요술>에는 기장으로 빚는 ‘서미법주방’을 기본으로 하여 대들보 밑에 놓고 발효시키는 ‘당랑법주’, 주재료를 멥쌀로 빚는 ‘갱미법주’, 나병을 만들어 띄운 누룩으로 빚는 ‘식경법주’, 그리고 별법(別法)의 ‘우법주방’ 이 있다.

특히 ‘우법주방’은 ‘서미법주’의 변형인데, <임원십육지>에서는 이를 인용 ‘법주방(法酒方)’으로 기록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한제국 말기의 기록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도 ‘법주’를 수록하고 있는데, <임원십육지>의 기록을 한글로 번역하여 전제한 것에 불과하다.

한편 1982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출간한 <한국민속대관(韓國民俗大觀)>에는 주방문 없이 ‘법주’에 대해 “이 술은 언제 어떻게 이름 붙여졌는지 확실하지 않다. 이름 있는 절간 주변에서 빚어지고 있는 술을 모두 ‘법주’라고 불러왔다. 그 중에서도 신라 고도(古都)인 경주의 ‘법주’가 특히 유명한 것이었다. ‘법주’를 ‘법식대로 만든 술’로 보는 사람도 있다. 경주 지방에서 전해지고 있는 ‘법주’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조선 중기 중종 대에 궁중과 조정의 문무백관이나 외국 사신들만이 즐겨 마실 수 있도록 제한하는 특별 주라는 것이다. 그 제조법 역시 구구해서 알기 어려우나, 다음과 같은 것도 전래되고 있다. 찹쌀에 국화와 솔잎을 따서 빚어 넣고, 백 일 동안 땅에 묻어 숙성시키므로 ‘백일주’라고도 불렀다.”고 하여,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는 ‘경주 교동법주’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법주’는 주품명이라기 보다는 “궁중이나 절간에서 술을 빚는 법식”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기록에서 보듯 <임원십육지>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법주’ 역시 철저하게 중국식 양주기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는데, 그 특징이 밑술을 빚는 방법을 덧술과 2차 덧술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또한 고두밥을 쪄서 끓는 물을 적당량 합하고, 고두밥이 불으면 식혀서 누룩이나 밑술과 합하여 안치는 방식이며, 횟수를 더할수록 쌀 양을 같은 비율로 가져가기도 하고 늘려 나가기도 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법주’는 ‘서미법주’를 비롯한 중국의 양주기법이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던 것이지만, 이미 고려시대 때부터 사찰을 중심으로 민간에서도 술 빚는 법이 체계를 이루기 시작했고, 중국식 양주기법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만의 양주기술이 정착되었다는 것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법주’를 빚을 때는 신국(神麴)이 아니더라도 좋은 누룩을 법제를 많이 하여 사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어떤 원료가 되었든 세미(洗米)를 잘해야 한다. 그것이 기장과 같은 잡곡일수록 세미의 중요성은 강조된다.

특히 <임원십육지>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법주방’에 근거하여 기장쌀로 술을 빚고자 할 때는 덧술 간격을 7일 이상으로 길게 가져가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기장쌀과 같이 잡곡 쌀로 고두밥을 만들어 빚는 경우, 덧술 간격이 짧아지면 자칫 잔당(殘糖)이 많아져서 2차 덧술을 삭이지 못하거나 산도가 높아져서 산패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주’가 이 땅에 도입되어 정착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음주문화는 ‘법주’를 ‘황주(黃酒)’처럼 오랜 시간 숙성시켜 마시거나, 술을 채주하여 마시는 중간에 계속해서 덧술을 하여 빚는 문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 法酒方(고려대본) <林園十六志>

◇술재료 ▴밑술:기장 1석, 초맥곡가루 1석, 끓여 식힌 물 1석. ▴덧술:기장 1~2석, 끓여 식힌 물 1석. ▴2차덧술:기장 2~3석, 끓여 식힌 물 1석

◇밑술 빚는 법:①볶은 보리로 만든 초맥곡가루 1석을 햇볕에 말리어(2~3일간 법제하여) 준비한다. ②술 빚는 날인 2월 2일에 물 1석을 솥에 끓여서 차게 식힌다. ③기장 1석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는다. ④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내고,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⑤고두밥에 물 9말 5되와 초맥곡가루 1석을 한데 섞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⑥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남겨 둔 물 5되로 손과 그릇을 씻어 술독에 붓고, (덥지도 차지도 않은 곳에서) 10일간 발효시킨다.

◇ 덧술 빚는 법 : ①술 빚기 하루 전인 2월 11일에 물 1석을 솥에 끓여서 차게 식힌다. ②기장 1~2석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는다. ③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내고,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④ 고두밥에 물 9말 5되를 한데 섞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⑤ 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남겨 둔 물 5되로 손과 그릇을 씻어 술독에 붓고, (덥지도 차지도 않은 곳에서) 8일간 발효시킨다.

◇2차 덧술 빚는 법 : ①술 빚기 하루 전인 2월 19일에 물 1석을 솥에 끓여서 차게 식힌다. ②기장 2~3석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는다. ③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내고,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④고두밥에 물 9말 5되를 한데 섞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⑤. 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남겨 둔 물 5되로 손과 그릇을 씻어 술독에 붓고, 덥지도 차지도 않은 곳에서 발효시킨다.

*방문에 “볶은 보리 누룩가루 1석을 햇볕에 말리어, 끓인 물 1석과 메기장 1석을 합쳐서 잘 섞는다. 2월 2일에 물을 길어서 미리 끓여 식혀 둔다. 밑술을 빚은 후 10일 만에 덧술 한다. 그 사이에 개나 쥐가 가까이 오지 않도록 한다. 그 후 8일이나 6일에 덧술 하여도 괜찮다. 어느 날이든 꼭 짝수 날에 덧술 하고 홀수 날에는 하지 않는다. 2월 중에는 덧빚음을 끝내도록 한다. 언제나 물을 미리 끓여서 그대로 두었다가 덧빚음을 끝낸다. 그 물 5되로 손을 씻고 술 항아리를 씻도록 한다. 술쌀의 양은 볶은 누룩의 섞임을 보아서 정한다.”고 하였다. <제민요술>의 ‘우법주방(又法酒方)’을 인용하였다.

<원문> 法酒方/焦麥麴末一石曝令乾煎湯一石黍一石合柔令甚熟以二月二日收水卽預煎湯停之令冷初酘之時十日一酘不得使狗鼠近之後或八日六日一酘會以偶日酘之不得(隻)日二月中節酘令(足)常預煎湯停之酘畢以五升洗手湯其米多少依焦麴殺之. <齊民要術>.

 

<원문> 법주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복근 보리누룩가루 한 섬을 볏헤 여 말리고 는 물 한 섬에 지장쌀 한 섬을 합하야 익게 하고 이월 이일에 물을 기러다가 먼저 려 식거든 처음 우더풀 제 열흘 만에 한 번 더프되 개와 쥐를 갓가이 하지 말지니 그 후에 여드레나 엿세 만에 한 번 우더프되  맛는 날에 더플 것이요 이월 중절(中節)에 우덥는 것이 족한데 항상 미리 는 물을 두엇다가 우덥기를 맛칠 제 닷 되로 할것이요 쌀의 다소는 복근 누룩을 의지하야 취기나니라.

 

<원문> 법주(法酒) <韓國民俗大觀>/이 술은 언제 어떻게 이름 붙여졌는지 확실하지 않다. 이름 있는 절간 주변에서 빚어지고 있는 술을 모두 법주(法酒)라고 불러왔다. 그 중에서도 신라(新羅) 고도(古都)인 경주(慶州)의 법주(法酒)가 특히 유명한 것이었다. 법주(法酒)를 법식(法式)대로 만든 술로 보는 사람도 있다. 경주지방에서 전해지고 있는 법주(法酒)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조선(朝鮮) 말엽(末葉) 중종 대(中宗 代)에 궁중(宮中)과 조정(朝廷)의 문무백관(文武百官)이나, 외국(外國) 사신(使臣)들만이 즐겨 마실 수 있도록 제한하는 특별주라는 것이다.

그 제조법 역시 구구해서 알기 어려우나, 다음과 같은 것도 전래되고 있다. 찹쌀에 국화와 솔잎을 따서 빚어 넣고, 백일동안 땅에 묻어 숙성(熟成)시키므로, 백일주(百日酒)라고도 불렀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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