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과 팩트
권 녕 하(시인·문학평론가)<한강문학/발행인>
막걸리는 청탁(淸濁)이 잘 섞이도록 뽀얗게 흔든 다음, 쿨럭쿨럭 따라 마신다. 보편적으로 양재기 또는 막사발에. 말복 전날 밤이다. 강원도 평창에서 반가운 손님이 왔다. 인사동 단골집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흔들 께!”
“병권을 달라고?”
“서울~ 인사동식으로 먼저!”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뒤집어서 거꾸로 마구~ 흔들어댔다. 마주 앉은 일행은 의자를 뒤로 빼고는, 곧 눈앞에서 벌어질 불행스런 사태를 예견한 듯 표정까지 일그러진다. 그런데 막상 병권을 잡고 흔들던 사람은 천연덕스럽다. 막걸리 통 밑바닥을 살살 간지럽히며 19금 패설(稗說)을 주문처럼 외우더니, 정말 깔끔하게 병뚜껑을 딴다. 거품? 까딱없이 평온하다.
“물리학에서~ 양자는 벼룩처럼 튀는데 규칙도 없어 보여. 막걸리도~ 엔트로피를 통제할 수 없을 때 넘치지. 무질서하게 되면.”
“아냐~ 정신을 빼놓으면 돼. 정신 차리기 전에 뚜껑 따고, 넘치기 전에 술잔에 따르면 돼. 속도 문제야! 거 봐! 얘도 빙빙 돌리고 흔드니까 어지럽나봐. 여자처럼!”
《삼국사기》신라본기, 선덕여왕(善德女王) 636년 여름 5월, 선덕여왕이 세 가지 일 ‘지기삼사(知幾三事)’를 알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태종(이세민)이 보내온 모란꽃씨 서 되(三 斗)가 향기 없는 꽃을 피울 것을 미리 알았다는 것과 옥문지(玉門池) 개구리가 시끄럽게 운다고 백제군이 침략해온 것, 그리고 언제 자신이 죽을지를 미리 알았다는 것, 세 가지다. 물론《삼국유사》에도 같거나 흡사한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내용을 풀어보면, ‘향기 없는 꽃씨 서 되’라니! 그리고 ‘옥문이란 여자의 생식기이니, 남자의 생식기가 여자의 생식기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게’된다는 말과 뒤따르는 ‘여근곡(女根谷)’ 이야기, 아울러 “나를 낭산(狼山) 남쪽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다는 것, 즉 지기삼사(知幾三事)는 왜 ‘셋’이고, 왜 전부 ‘생식’과 ‘죽음’, ‘씨’, ‘생명’, ‘사내(전쟁)’, ‘죽음’ 등에 관련된 이야기인가?
아버지 진평왕을 끝으로 성골 남자의 씨가 말랐던 신라는 위 두 사서의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그런데《화랑세기》에는 성골(聖骨)의 代를 잇기 위해, 선덕여왕이 씨내리 사내를 공식적으로 셋이나 거느렸다는 ‘삼서지제(三壻之制)’제도에 관한 기록(필사 발췌본)이 있다. 그랬는데도 선덕은 자식이라곤 낳아보지도 못했다고 돼 있다. 사내들만 진땀 흘리며, 불임여성을 상대로 헛고생(?) 했다는 의미이다. 설화는 역사적 사실이 변형되어 전설로 전해진다. 또한 모든 설화, 신화는 완전한 창작은 없다. 보고 듣고 느낀 충격적인 사실들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신화, 설화로 생명력을 이어간다.
출간 연도순으로 보면, 《화랑세기》(신라, 김대문), 《삼국사기》(고려, 김부식), 《삼국유사》(고려, 일연) 순이다. 따라서 누가 참고삼았고, 누가 베껴 썼고, 누가 옮겨 썼으며, 누가 패러디 했고 누가 표절했는지, 묻지 않아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사서의 진위여부를 따지기 전에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먼저 쓴 사람이 나중에 쓴 것을 베낄 수는~ 없다. 죽어도 못한다. “소설책을 썼다”는 둥의《화랑세기》에 관한 진위논쟁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고려시대 사서 두 개의 기록 중에서 진위여부를 알기 힘들었던 알쏭달쏭한 부분’을 밝혀내는데, 오히려《화랑세기》가 증언해주고 있는 실제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상적인 이성(理性)은 진위여부 보다는 기득권 지키기 혹은 세력다툼의 냄새가 짙다고 느껴진다. 이런 실정임에도, 그래도 표절하고 우기고 베껴먹으려면 제대로, 똑바르나 할 것이지, 어설프기는 꼭 우겨대는 꼴하고는,〈이발학원〉연습생이 쥐 뜯어먹은 것처럼 깎아놓고, 빡빡 우기는 꼴이다. 이 말은 신라, 고려 때가 아니라, 21세기에 적용한 말이다.
말복 날, 청탁(淸濁)을 뒤섞으며, 국태민안과 민족정기 발현을 위하여, 안주삼아 한 말(言)이다. 문명, 문화, 종교, 전통, 철학, 과학 등이 전파되는 매개체, 즉 전달수단은 말(言)이 기본이다. 말은 정신(精神) 그 자체이다. 대화를, 말을 할 때 술(酒)이 필요할 때가 더러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