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관광두레 그 현장을 가다
섬진강 도깨비 마을 우스깨비터…‘도깨비와 자연이 상생’
자연에 반하고, 사람에 반하고, 음식에 반하고, 미실란 밥까페 ‘반하다’
현재 전국에는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법인체를 만들어 숙박, 음식 등 관광사업을 경영함으로써 지역 일자리와 소득을 직접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관광두레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관광두레가 37개나 된다.
정부는 주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로 발굴된 공동체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관광 트렌드에 맞춰 식음, 체험, 로컬여행, 먹거리 기념품 등 다방면에서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각종 어드바이스를 해주는 프로듀서(PD)를 두고 있다.
관광두레PD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과 함께 관광두레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담당 지역의 주민 관광사업을 조직, 발굴, 육성하는 미션을 수행한다. 사업의지를 가진 공동체를 발굴, 육성하는 조력자(Facilitator)가 되고 이 공동체의 사업이 잘 진행될 있도록 각종 멘토링과 교육을 연계하는 코디네이터로서 실질적으로 관광두레를 이끌고 있다.
관광공사 관광두레팀이 곡성 관광두레 마을로 안내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따라 나섰
는데 현지에 도착하여 홍수진(42) PD의 안내로 곡성의 관광두레를 둘러보고 나니 곡성관광두레는 정 많고 순진한 시골처녀를 만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순박한 느낌이 들었다.
하기야 홍수진 PD역시 부산 아가씨였다가 14년 전 이곳에 놀러 왔다가 남편 만나서 터 잡고 살고 있다고 하니 곡성에는 어떤 마력 같은 것이 있나 보다.
곡성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상영된 영화 ‘哭聲’이 뜨면서 곡성군이 이 영화로 마케팅 전략을 잘 짜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사실 곡성은 영화 ‘哭聲’을 찍기 전부터 태극기 휘날리며, 아이스케키, 스카우트 같은 영화부터 토지, 서울, 경성스캔들 같은 드라마를 촬영한 지역이기도 하다.
곡성군에는 죽곡면(竹谷面) 원달리(元達里)에 있는 태안사를 비롯, 증기기관차 타기, 레일바이크 체험 같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고, 참게 탕, 은어 같은 먹거리도 풍부하다. 그동안 개발이 늦어지고 교통이 불편하여 잘 알려지지 않던 지역 때문에 오히려 지금은 자연이 잘 보존 되어 있어 힐링하기에 좋은 고장이다. 때문에 침실습지 같은 곳은 강변에서 유일하게 국가지정습지로 지정받기도 했다.
특히 섬진강, 대황강(보성강)을 끼도 있는 곡성은 토질이 좋아 전국에서 생산되는 토란의 70%를 차지할 정도다.
미실란 밥까페 ‘반하다’ 곡성군 제1호 농가맛집으로 지정
곡성 관광두레에 참여하고 있는 사업체는 ‘섬진강 도깨비 마을(체험)’외에도 ‘섬진강 두꺼비(주민여행사)’, ‘반하다 농업회사법인(식음)’, ‘수상한 영농조합(관광 기념품 먹거리)’ 등 4개 주민공동체 사업체가 참여하고 있고, 이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참여 인원은 24명에 이른다.
금강산도 식후경처럼 처음 안내된 곳은 밥까페‘반하다’였다.
‘반하다’는 곡성의 건강한 기업 ‘미실란’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아름다운 사람들(美)이 희망의 열매(實)를 꽃피우는 곳(蘭)이라는 ‘농업회사법인(주)미실란’은 남원에서 구레를 잇는 17번국도, 곡성 읍 못 미쳐 왼쪽에 폐교된 옛 곡성동초등학교를 인수하여 차린 회사이다.
곡성읍 장성리에 있던 곡성동초등학교는 1998년 2월에 졸업생을 배출한 뒤 문을 닫은 후 상당기간 사용하지 않아 쓰레기더미만 쌓여가는 버려진 땅이었다. ‘미실란’을 이끌고 있는 섬진강 박사농부 이동현 대표는 “2006년 5월에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완전 폐허였죠. 운동장에는 잡초가 우거졌고, 폐타이어 등 온갖 산업폐기물이 묻혀 있었고, 교실의 나무 바닥이 푹 꺼진 곳도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운동장에는 잔디가 깔려 있어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 충동이 일정도로 깨끗이 정돈이 되어 있다. 거미줄로 엉켜있던 교실은 훌륭한 전시공간으로 탈바꿈 돼서 그림이나 서예 같은 작품전도 열리고 있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이동현 대표는 서울대 농생물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큐슈대학교에서 생물자원개발관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들고 2003년에 귀국한 뒤 이듬해 9월에 순천대 연구실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2005년 농업회사 법인 ‘미실란’을 창업했다.
이동현 대표는 ‘식약동원(食藥同原)’ 즉, 먹는 음식과 약은 근본 뿌리가 같다는 뜻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친환경(유기농, 무농약) 현미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토종미만을 오색발아현미의 원료로 하여 유기농 발아 오색미를 내놨다. 오색미는 국내 여러 기관에서 최고 품질을 인정을 받은 발아현미, 발아찹쌀현미, 발아적미, 발아흑미, 발아녹미 등이다.
이 같은 오색미를 더욱 개선하기 위해 미실란과 붙어 있는 1,200평 논에서는 91개의 벼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그동안 12년 동안 278종의 벼품종이 이 대표 손에 의해 연구 개발되어 이웃 선도농가에 보급되고 있고 일부는 가공식품으로 시중에 내놓고 있다.
농촌진흥청과 공동으로 연구하여 출시되고 있는 제품은 ▴수라가자 백미와 현미▴발아현미▴발아녹미▴발아적미▴발아흑미▴발아찹쌀현미▴발아오색미 등이다.
이 같은 오색미를 가지고 발아오색미숫가루, 적미통차, 흑미통차, 현미통차 같은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반하다’의 백미(白眉)는 이 대표의 부인 남근숙 씨가 차려내는 밥상이다. 밥 카페 ‘飯하다’로 명명된 식당에서는 이 대표가 연구 개발한 오색미와 발아된 각종 쌀로 차려낸 요리가 일품이다.
특히 흑미 두부요리, 발아현미 누룽지와 미실란 텃밭에서 친환경농업으로 키운 야채로 만든 야채샐러드, 발아오색현미밥은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런 덕택에 2015년 10월에는 농촌진흥청이 곡성군 제1호 농가맛집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식당에 딸려 있는 카페에서는 유기농 커피를 맛볼 수 있다.
2015년 무주에서 개최한 ‘2015 관광두레 전국대회’에서 창업사례가 소개되면서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금나와라 뚝딱, 은나와라 뚝딱’…<도깨비 방망이>
기자가 보기엔 곡성관광두레 가운데 관광성이 가장 높은 곳이 ‘섬진강 도깨비 마을(촌장 김성범, 56)’ 같았다.
혹부리 영감님 맘씨 좋은 영감님/ 아이들이 놀려대도 웃음으로 대답했네/ 어느 날 산속에서 길을 잃고 무서워/ 목청 높여 노래할 때 그 소리 하도 좋아/ 도깨비들 샘이나 혹부리를 떼어 갔네/ 도깨비 방망이 요술 방망이/ 혹 떨어져라 뚝따닥뚝 딱딱
박수진 씨가 쓰고 김애경 씨가 곡을 붙인 <도깨비 방망이>이란 동요다.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도깨비 방망이’이에 대한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다. 실체가 있건 없건 도깨비는 착한 사람(나무꾼)은 방망이를 얻어 부자가 되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설화 속에 ‘도깨비 방망이’이를 모티브로 해서 조성된 마을이 ‘도깨비 마을이’이다. 이제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불러들이는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도깨비 마을도 2014년부터 ‘곡성 관광두레’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도깨비 마을은 이렇게 시작된다. 1370년경 조선 초 병조판서를 지낸 마천목이 어린 시절 섬진강 줄기 냇가에 독살(돌담을 쌓아 고기를 잡던 전통 어구)을 치려했으나 물살이 세게 흘러 독살을 치지 못하고 돌아가려던 찰나에 파란 빛을 뿜는 돌 하나를 주웠다. 이 돌이 도깨비들의 대장이었다. 마천목이 집으로 돌을 들고 오자 부하 도깨비들이 대장을 내놓으라고 쫓아 왔다. 그러면서 대장을 돌려주면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마천목은 독살을 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는데 도깨비들이 밤새 독살을 칠 수 있도록 해서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데 바로 지금의 도깨비 마을 입구에 그런 이야기의 배경지가 있다.
현재 도깨비 마을 촌장 김성범 씨가 18년 전 이 같은 도깨비 전설에 매료되어 이곳에 터를 잡고 도깨비 전설을 자연과 상생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을 입구 깎아지른 언덕위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마천목이 독살을 쳐서 고기를 잡았다는 지점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설자의 설명이 그럴듯했다.
전망대 입구에서 시작된 오솔길을 걷다보면 별별 도깨비를 만난다. 도자기 형태로 만들어진 도깨비는 같은 형태가 없이 1000여기에 달한다고 했다. 모두가 그럴듯한 이유를 달고 있다. 어떤 도깨비는 익살스럽고 해학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도깨비들은 이곳을 찾는 이방인들에게 매 고비마다 수수께끼를 냈다. 문제를 풀어가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이 이정도인데 어린이들에게는 어쩌랴.
약 1㎞쯤 걸었을까.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현대식 체험관이 나타난다. 여기에선 인형극이나 또는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과 진짜 보물스런 도깨비들을 만난다. 그 가치가 사뭇 높아 보인다.
이런 도깨비 형상은 김 대표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서 나왔고, 숲놀이터 둥둥 나무집 등은 관광두레 멘토링 덕분에 탄생되었다. 더불어 지난 7월8일에는 섬진강 도깨비마을 우스깨비터 오픈식도 가졌다.
김성범 촌장을 처음 대했을 때 장발은 했지만 참으로 해 맑다. 56살이라는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동안이다.
광주일보 신춘문예 출신의 동화작가이자 세무사, 조각가, 동요작곡가, 요들송 가수 등 팔방미인인 김 대표는 “지역 관광두레 사업이 보다 발전하려면 정부가 더 관심을 가지고 육성발전 시켜야 한다”면서 “두레사업은 일반적인 관광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여자 다섯이서 수다 떨다가 ‘수상한협동조합’ 창립
여자 셋이 모여서 수다를 떨면 접시도 깬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 다섯이 모여서 수다를 떨다가 내친김에 ‘수상한영농조합’을 만들어 냈다.
곡성에 있는 수상한영농조합이 창립하게 된 동기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질 때 푸른 토란잎을 임시 우산 삼아 달리던 모습이 아련해질 때 여자 다섯은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토란을 가지고 뭔가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토란을 원재료로 관광두레 전문가 지원을 통해 토란만주, 토란슈, 토란잎과자 등이 개발되었다. 토란은 말 그대로 땅속의 알이란 뜻으로 추석 같은 명절에 귀하게 먹는 식재료 중 하나다. 이 좋은 식 재료로 1차 개발에 성공한 제품이 토란푸딩이다. 지난 5월 하순에 개최된 ‘2017 곡성 세계장미축제’에 시식용으로 2,000개를 제공한 결과 모든 이들이 엄지척. 이를 더욱 개발하여 우스깨비터 오픈식에서 시식용으로 제공하자 모든 이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자랑이다.
곡성의 토란이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곡성과 토란을 연계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은 편, 그래서 생겨난 것이 ‘곡성토란웰빙식품명품화사업단’이다. 토란 음식 보급화를 목표로 수상한과 뜻이 통해 MOU를 체결했다.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기자가 수상한 집단(?)을 찾은 날 이들은 토란잎 과자 만들기 체험을 처음 시도 했다.
밀가루와 쌀가루에 찻잎과 크로렐라를 넣어서 만든 반죽으로 토란잎 형상으로 밀어서 구우면 바삭한 식감의 과자가 된다. 체험 비를 얼마로 할지 등 이들은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다.
이를 놓고 한 바탕 수다가 오가지 않을까?
‘섬진江 두꺼비’…“곡성으로 놀러 오라”고 합창
섬진강(蟾津江)의 蟾자는 두꺼비 섬자다. 이를 풀어서 만든 주민여행사가 ‘섬진江 두꺼비’다.
여행사는 5명의 주민이 참여하고 있고, 여행사를 이끌고 있는 이는 추선호 씨다. 자칭 타칭 두꺼비라고 부른단다.
이들은 ‘1933 오후’라는 독특한 북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1933이란 곡성역이 그 해에 생겨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오후란 이름을 덧붙인 것은 11시에 문을 열고 20시에 닫기 때문이라나.
여기선 책을 사기도 하고 읽기도 하는 시골 책방이다. 여기서는 핸드드립 커피도 마실 수 있고, 전통차도 판다. 한편에서는 바느질 공예의 소품도 판다.
그러면서 객지 사람들에게 여행안내도 한다. 느긋하다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곡성에 거주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
먼 옛날 왜구들이 섬진강을 타고 쳐들어왔을 때 난데없는 두꺼비들이 몰려와 울어 대는 바람에 왜구들이 날 살리라고 도망쳐서 붙여진 이름이 섬진강. 지금 ‘섬진江 두꺼비’들은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곡성으로 많이들 오라고 목청을 높여 울어댄다.
“곡성으로 놀러 오세요”
주민여행사 섬진강두꺼비가 추천해서 비봉산방에서 맛본 약선음식 ‘효우반’은 토란을 주재료로 한 요리인데 서울에선 맛보기 힘든 요리로 일품이었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것은 김종권 씨가 운영하고 있는 ‘독도사진전시관’이었다. 죽을 고비를 마다 않고 독도에가서 사진을 찍기를 수십년, 정말로 역사적 가치나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데도 정부가 이를 뒷 받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맨날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칠 것인가?
글· 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