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쟁이여 기침을 하자

◇발효식품의 ‘모닥불’

오늘처럼 추운 날은 백석의 모닥불이라는 시가 생각이 난다. 어디 모닥불뿐이랴. 여우난골 족, 국수 등 추운 눈과 그 안에서 공생하는 가족과 마을의 따스함이 문득 그리워진다.

백석의 모닥불은 모닥불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은 우리네 삶을 공시적이면서도 통시적으로 입체감 있게 보여준다.

하얀 눈을 맞으며 한옥마을을 지나가다가 나는 백석의 모닥불처럼 관광객들이 둘러서서 치즈를 사가는 것을 보았다. 외국인 신부에 의해 보급된 치즈는 임실의 명물이 되었고, 이제는 한옥마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문화상품이 되었다. 이 벽안의 외국 신부는 우리가 잃어버린 유목의 삶, 한 조각을 우리에게 선물해준 것이다.

한반도와 만주에 정착하기 전 우리민족은 유목을 했다. 우유를 짜서 마시고 요구르트를 만들며, 치즈를 만들어 저장했다. 그러다가 만주지역에 정착하며 농경의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척박한 땅 만주는 콩의 원산지이다. 우리민족은 우유 대신 콩을 활용해 두유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요구르트 대신 순두부를 만들고 치즈 대신 두부를 만들어 단백질을 보충했다. 그리고 당대에 두장(豆醬)문화를 가장 발달시켰다. 두부 및 장과 함께 콩나물을 길러 먹었는데, 콩나물은 전주음식의 양대 산맥인 국밥과 비빔밥을 탄생시킨 식재료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고기의 단백질을 활용한 육장을 만들었으나 후대에 두장문화를 받아들인다.

두장문화의 핵심은 메주를 만드는 것이다. 도톰하게 만든 메주는 방안에서 곰팡이가 피게 잘 띄운다. 요 메주와 술을 만드는 전통누룩은 생김새부터 닯았다. 누룩과 메주는 생김만 닯은 것이 아니다. 메주에서 나온 간장은 청주와 닯았으며, 된장은 걸쭉한 막걸리와 또 닯았다.

뿐만 아니라 메주의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나 누룩을 통해 쌀의 전분을 분해하는 효소도 비슷한 곰팡이를 활용한다.

곰팡이를 활용한 이러한 발효제(누룩 등)는 꼭 술이나 장에만 국한되어 활용되지 않고 폭 넓게 사용되었다. 가령 우리나라 서북쪽의 김치나 식해류에는 식물재료에 동물재료+곡물+누룩을 함께 넣었다. 이를 통해 동물속의 단백질(아미노산)이 가진 감칠맛을 살리고 곡물의 단맛으로 김치나 식해류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 제주도의 경우 술에 돼지고기 등을 넣는 것도 같은 맥락이며 일본의 스시(에도) 또한 비슷한 예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고추장이나 일본 메주는 전분질 원료인 쌀(밥)과 누룩을 넣어 발효를 시킨다. 그러면 누룩에 의해 쌀이 삭는다. 그래서 일본 된장(미소)은 우리와 다르게 단맛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고추장은 맵지만 달착한 맛을 함께 지니고 있다.

만주에서 중국으로 전파 된 두장문화와 반대로 우리나라의 전통누룩은 중국에서 건너왔다. 전통누룩은 메주처럼 크고 넓적하여 병국(餠麴, 떡누룩)이라고도 불린다. 병국은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전해졌다. 일본서기에도 백제사람 수수보리가 일본에 술을 전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은 분명 대륙에서 술을 배웠겠지만 그들의 삶과 토양에 맞는 술빚기 방식을 개척했다.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은 일본에서는 우리처럼 두툼한 병국을 만들 수 없기에 흩임누룩(입국)을 개발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본 메주가 주먹보다 작은 것도 아마 같은 이유일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을 구비 도는 물줄기처럼 동양 3국의 발효음식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 왔다. 우리나라의 발효음식이 최고일 것도 없이, 민족마다의 특수성이 반영되고 인류보편의 지혜가 함께 녹아 있는 것이다.

마치 빙 둘러 앉아 함께 모닥불을 쪼이는 것처럼 말이다.

 

◇밀 막걸리는 서자(庶子)가 아니다.


한옥마을이 활성화됨에 따라 인근의 막걸리집도 장사진을 이룬다. 막걸리만 시키면 안주가 거하게 나오는 전주의 막걸리집은 전국에 크게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런데 요 막걸리가 과연 우리 전통술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막걸리에 사용되는 누룩 때문이다. 현재 막걸리에 사용되는 누룩이 전통의 누룩이 아니라 일본에서 건너온 흩임누룩(입국)이라는 것이다. 일견 맞는 이야기이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우리의 막걸리가 흩임누룩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반이다. 그전까지는 흩임누룩을 허용하기는 하였으나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60년에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미국산 밀가루로 술을 빚게 했다. 그때까지 재래누룩과 쌀로 술을 빚었던 양조장들은 밀가루에 익숙하지 않아서 제대로 술맛을 낼 수가 없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밀가루에 적용할 수 있는 일본식 흩임누룩을 보급하게 되었다. 여기에 일본에서는 소주를 만들 때 쓰는 곰팡이인 백국균을 파종하여 막걸리를 만들었다. 백국균은 산미가 있어, 텁텁하면서도 신맛이 도는 새로운 밀가루 막걸리가 탄생한 것이다.

(일본 막걸리는 쌀에 균을 입히는 방식이며 우리 막걸리처럼 백국도 사용하지 않는다.)

분명 일본식 제조방식을 도입하였지만 당시의 현실과 조건에 맞춘 최선의 선택이었다. 쌀 막걸리가 다시 부활하는 1980년대까지 밀가루 막걸리는 우리 민족과 애환을 같이 했다. 그리고 전주에서는 쌀 양조에 제한이 풀린 지금도 막걸리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다. 막걸리집에 가면 쌀로 할 것인지 밀로 할 것인지를 꼭 물어본다. 쌀은 깔끔하지만 단조로운 느낌이 있고, 밀은 깔끔치는 않지만 텁텁함이 주는 중층스러운 맛과 산미가 맛의 풍부함을 더하고 있기에, 술꾼들에게 인기가 많다.

새터민들이 늘어남에 따라 다문화사회를 살아야할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는 포용력이다. 이러한 포용력은 가난했던 조국의 과거를 보듬는 일에도 적용이 되어야 한다. 국수적인 전통의 잣대로 무조건 지금의 막걸리를 배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제 나라가 부강해졌으니 그에 걸맞게 우리 막걸리를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만의 균주를 개발하는 일이다.

 

◇나고야 의정서를 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관련한 교토의정서는 알아도 나고야 의정서는 안 들어 봤을 것이다. 2010년 나고야에 모인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생물 유전자원을 활용하는 나라는 유전자원 제공국가에 미리 승인을 얻어야 하며, 그에 따른 이익도 배분해야 한다고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2011년 2월 1일부터 각국의 서명을 거쳐 50개국이 비준하면 발효가 된다. 따라서 앞으로 유전자원에 대한 소유의 문제와 정립의 문제에 국익이 달여 있다.

전라북도는 최근 발효와 미생물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식품산업의 원천기술이랄 수 있는 미생물을 규명하고 원천기술을 확보하려 많은 투자를 준비 중이다. 도가 추진하는 미생물종가 프로젝트나 2012년 대선공약인 미생물융복합과학기술원 건립 등은 국가식품클러스트를 끼고 있는 전북이 유전자원과 그 산업에 대해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토대는 막걸리를 만드는 한국형 균주 개발에 탄력을 가져올 것이다. 현재 막걸리 생산에 대부분 쓰이는 일본 원산의 백국균(아스파질러스 가와치)은 꼭 대체 미생물을 전북에서 개발하고 활성화시켰으면 한다.

환경과 문화적 토양이 비슷한 동양 3국은 그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효식품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되면 서로의 변별점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이익관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산업공학적인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또한 예향 전북의 장점을 살려, 문화예술과 결합한 스토리텔링과 문화산업화가 함께 병행되는 것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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