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등비빔밥과 술쟁이

유상우 에세이

 

황등비빔밥과 술쟁이

 

 

황등비빔밥을 전문으로 하는 연두상회를 열다

익산에는 황등시장이 있다. 시장에는 맛있는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전주의 남부시장에는 콩나물국밥과 비빔밥이 있다. 장꾼들은 바쁜 일상에서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장국밥으로 하루의 허기를 달랜다. 혹은 이것저것 나물과 반찬을 넣고 밥을 비벼 후딱 한술을 뜬다. 그것이 전주의 대표적인 음식인 콩나물국밥과 비빔밥이다.

황등시장도 많은 장꾼들이 시장을 중심으로 활동을 했을 것이다. 또한 익산 황등은 화강암을 재료로 대리석을 만드는 공장이 여럿이다. 이러한 석재공장의 일꾼들도 고단한 노동을 한 그릇의 밥으로 달래야 했다. 황등육회비빔밥은 황등시장의 장꾼들과 석재공장의 일꾼들이 즐겨먹던 음식이다.

황등시장에는 몇몇 식당이 황등육회비빔밥을 팔고 있다.

이 비빔밥의 특징은 먼저 밥을 지어 차게 식혀서 국물에 토렴을 한다. 토렴이란 뜨거운 국물에 밥을 여러 번 넣었다 뺐다 반복하는 작업을 말한다. 토렴을 하게 되면 찬밥이 국물을 빨아들여서 국물 맛이 밥에 그대로 옮겨가게 된다. 그리고 밥을 비비게 되면 밥이 뭉치지 않고 따로따로 놀면서도 조화로운 맛을 지니게 된다.

이는 막걸리를 빚을 때 밥을 차게 식혀서 누룩과 버무리면 한두 시간 후에 고두밥이 물을 빨아들여서 빡빡해지는 것과 같다. 고두밥은 물을 빨아들이며 물속에 녹아들어간 누룩의 효소도 함께 몸속에 흡수하여 당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전주비빔밥과 다르게 밥이 비벼져서 나온다. 전주비빔밥은 각종 야채와 고기 등을 부채꼴 모양으로 얹어서 손님들이 비벼 먹을 수 있게 나오지만 황등비빔밥은 야채와 밥을 토렴하여 한차례 비빈다. 그리고 거기에 파채와 소스 그리고 육회로 버무린 양념을 얹어서 낸다. 파채가 제법 많이 들어가서 맛이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이 특징이다.

황등비빔밥을 전문으로 전주한옥마을에 식당을 열었다.

식당일은 낯설고 힘든 일의 연속이다. 술쟁이에게 식당은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이러한 낯설음도 처음이니까 그러하리라.

 

전주 삼천동 막걸리골목

막걸리골목으로 유명한 전주 삼천동은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삼천동은 3개의 천이 흐르는 삼천에 자리하고 있다하여 붙은 지명이다.

유년 시절 3개의 천 각각에서 물놀이를 하고 지냈다. 방학이 끝나면 마치 토인처럼 온몸이 까맣게 그을려서 급우들이 놀래기도 했다.

이달(6월) 15일에 삼천동 막걸리골목을 활성화하기 위한 간담회가 열린다. 발제를 맡아서 이것저것 생각들을 해보곤 한다.

재밌는 것은 내가 장사를 직접 해보니 그들의 고민이 나와 같다는 동병상련이다. 경기는 어려워지고 막걸리의 수요는 급감하면서 상인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들의 일이 그래서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바로 나도 어려운 환경에서 연두상회를 어떻게든 잘 운영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런 일이 들어오면 여러 아이디어들을 잘 조합하고 피티를 잘 만들어서 이야기를 해드렸지만 지금은 그들의 심정을 알기에 참으로 조심스럽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넓고 길게 보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깊은 강이 멀리 흐르듯 우리의 토양이 얕으면 오래가지 못한다.

삼천동의 막걸리골목은 그 주제가 막걸리이다. 따라서 좋은 막걸리가 있어야 한다. 그동안 전주막걸리골목의 번성은 막걸리가 그 중심이 아니라 안주가 중심이었다.

그러서 장기적으로는 좋은 막걸리를 만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작년에 전주의 막걸리시장을 장악한 한 업체가 원산지를 속여서 전주막걸리의 명성에 큰 흠집이 났다. 이는 주조장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막걸리골목의 어려움으로 바로 전이가 되었다.

중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마치 식당에서 주인이 음식을 알지 못하면 주방에 휘둘리듯이 막걸리 집에서 좋은 막걸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필연적으로 이러한 결과가 생긴다.

삼천동은 전주 최고의 농업지역이다. 신시가지가 여러 지역에 생겨서 전주의 기온이 지금은 대구와 맞먹지만 아직도 삼천동 일대는 삼천이 가져다준 풍요로운 땅이 펼쳐져 있다. 이러한 농업을 기반으로 전주기접놀이 등의 마을공동체문화가 생겼으며 지금도 전주기접놀이는 전승되고 있다.

크게 보면 삼천동의 농업지역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 술은 필연적으로 농업이다. 농업과 연결되지 못하면 생명력이 떨어진다.

삼천동만의 막걸리를 만들 수 있는 쌀과 밀을 심어야 한다. 아니 이미 쌀은 재배하고 있기 때문에 겨울 휴경에 밀을 심어서 누룩을 만들면 된다.

그리고 막걸리골목이 연합체 혹은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자기들이 팔 술을 자기들이 디자인하여 각자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술은 천편일률적으로 똑같고 안주의 차별화만 생각한다면 막걸리골목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현재 막걸리도매상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주의 막걸리 판매량이 2015년에 비해 무려 70%가 급감했다고 한다. 심각하다.

여러 문제가 있을 것이다. 경제난, 술의 소비패턴 변화, 원산지 문제 등등….

살아남아야 한다. 이는 절박한 문제이며 우리 삶을 지속시키는 전제조건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심이 있어야 하고 차별화된 자기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술은 지역민들이 사랑하는 술이다. 지역의 술이 다른 곳으로 유랑하지 않고 오롯이 지역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세월과 함께 한다면 갈수록 그 가치는 올라간다. 문화와 교육 등은 농업에 깊은 뿌리를 둔 술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덧입혀 질 수 있다.

문득 나는 멀리 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 되묻는 요즘이다.

긴긴 세월을 견딜 수 있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되돌아보니 뒤통수가 가렵다.

머리 긁적이며 골목식당에서 혹은 주점에서 묵묵하게 쟁반을 나르고 술병을 나르는 분들에게 따스한 인사 건네고 싶다. 그리고 아침이면 졸린 눈을 비비고 출근해서 파김치가 되어 술잔을 부여잡은 직장인들에게도 손을 내밀고 싶다.

*황등육회비빔밥 사진은 지식백과 사진을 참조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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