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읽고 나서

시 한 편 읽고 나서

 

이 영 식

 

쌀 ‘미(米)’자 속에는

여덟 ‘팔(八)’이 두 번 들어있다지요

논 갈고 볍씨 뿌리고

모내기하고 병충해 막아주고

햅쌀 한 톨이 반짝이며 태어나기 위해서는

농부의 손이 여든여덟 번 오간다지요.

그러니, 나는 한 수저의 밥을 떠먹으며

땀과 눈물이 밴 농부의 노역을,

그 갈기진 손을 맛나게 씹고 있는 거지요

 


귀한 글 ‘시(詩)’자 속에는

말씀을 모시는 내시가 산다지요.

제 불알 뚝 떼어 던지고

시를 신으로 모신 채

벼랑 끝 소나무처럼 붙어산다지요.

그러니, 나는 한 편의 시를 읽고 나서

아, 쉼표마저 생략한 호흡 속에

여든여덟 번은 오고 갔을

고독한 마음자리를 생각합니다.

 


살얼음 짚는 글발의 보폭으로

또 하나, 모난 사랑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 인터넷을 열어보면 세상에 흔한 게 시인 거라. 시집 한 권 구입 않고 저작료도 물지 않고도 시는 무한 유통되고 있는 거라. 시인이 밤을 하얗게 새워 쓴 시가 손가락 클릭 하나로 오고 간다. 물론 시가 작은 돌멩이 하나 옮기지 못하는 無用의 놀이 이기는 하지만 한 편의 시가, 한 행의 시 구절이 한 인생을 바꾸기도 하는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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