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푸는 여자

밥 푸는 여자

이 영 식

신사동 먹자골목

중년 여자가 밥을 푸고 있다

식당가 촘촘한 맛집 틈에

가정식백반이라니!

밥주걱 하나로 노 젓듯 건너는

노역의 하루, 단순하다 못해

몽매蒙昧해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중세 풍 그림 속 농부 같은

밥 푸는 여자가 좋다

쌀 한 섬 번쩍 들어 올릴 듯

굵은 허리와 팔뚝

아기 열 명쯤은 키워낸 듯한

넉넉한 가슴이 좋다

묵은지처럼 축 쳐진 날

가정식백반 집에 간다

꾹꾹 눌러 담은 밥 인심 같은

고향냄새 맡으러 간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어무이 같고

누부야 같고 촌닭 같은

밥 푸는 여자가 좋다

밥통 앞에 푸짐한 엉덩이를 내려놓고 밥 푸는 여자를 보면 마음이 따듯해진다. 네온불빛이 접수한 신사동 먹자골목 세련된 군상들 틈에서 중세 고전풍 그림 속에서나 볼 듯 굵은 허리와 두툼한 팔뚝의 여자가 밥통을 끼고 앉아 밥을 푸고 있다. 도시의 화려함에 취해 잊고 살았던 고향냄새가 단숨에 밀려와 오래전 기억 속의 촌닭들을 불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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