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⑪)

남태우 교수의 특별기고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⑪)

마리 앙트와네트 수밀도잔

18세기 당대 프랑스 최고의 미인으로 칭송되었던 루이 XVI세(Louis XVI, 1754-1793)의 왕후 마리 앙트와네트(Marie Antoinette, 1755~1793)의 우아하고 풍만한 유방을 본 뜬 술잔이 3대 유방형 술잔의 막내 격이다. 그녀는 수밀도형 술 잔 뿐만 아니라 바스트 109㎝, 웨스트 58㎝라는 육체를 가져 자기의 요염스럽고 아름다운 유방을 석고로 떠서 백금제 과일접시로도 만들었다.

                    Marie Antoinette’s Sèvres porcelain breast cup

            A modern day copy of Marie Antoinette’s famous Sèvres breast cup

그녀의 백치미 중 하나인 유방 테스트에서 항상 우승을 차지한 본인의 유방을 본떠 술잔과 그 술의 안주 접시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방인(오스트리아 왕조의 여인)으로서 루이 XVI세의 사랑을 얻기 위한 강렬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유리나 도자기로 된 술잔에 비해 유방형의 샴페인 술잔은 거품과 향기가 빨리 없어지고 손 온도에 의해서 샴페인이 데워지는 홈이 있어 꼭 잔대를 받쳐 사용해야 했다.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루이 XVI세의 술잔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유방을 본떠 만든 것으로, ‘미로의 비너스’의 유방과 더불어 미인 콘테스트의 기준이 되고 있으며, 100만 달러의 보험금이 걸렸던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의 유방이나 풍만한 젖가슴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의 유방도 이에는 못 미쳤다.

                                                       (Sophia Loren)

 

 

 

 

 

<Marilyn Monroe>

성애의 상징인 유방에 대한 찬미를 절정에 이르게 한 주인공은 18세기 프랑스 절대주의 왕정의 꽃인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다. 어느 날 호화로운 베르사이유 궁전에 모인 귀부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방을 심사했는데, 부인들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만장일치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유방을 최고로 선정했다. 왕비는 일등상을 탄 고귀한 경연을 기리고 그 영예를 영구히 기념하기 위해 세계 제일이라는 자신의 유방을 직접 석고로 떠서 예술적인 모형으로 만드는 것을 허용했다. 조각된 숫양의 머리에 유방 모양의 과일 그릇을 얹은 에로틱한 장식품은 곧 왕비의 별장인 트리아농 궁의 명물이 되어 호색한들의 눈을 더할 수 없이 즐겁게 했다. 저 아득히 먼 헬레네의 신화가 마침내 현실로 되살아나는 순간이 오게 된 것이다.

 

 

 

<Marie Antoinette breast cup(17688)>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루이 16세의 왕비로 간택되어 베르사유궁에 들어온 것은 그녀가 14세 때이며 그의 남편은 황태자로 15세 때였다. 그녀는 18세에 왕비가 되었고 21세에 임신할 때까지 7년 동안 루이 16세는 몸의 병 때문에 왕비를 처녀의 몸으로 그대로 있게 했다. 물론 병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7년이라는 긴 세월을 처녀로 지내게 했던 것이 나이 어린 왕비의 정신적인 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된다.

왕비는 무료한 생활에 한계를 느껴 쾌락을 얻기 위해 밤이면 마차를 몰고 젊은 족속들과 어울려 극장과 도박장을 출입하기 시작했고, 이에 싫증을 느끼고는 보석과 값진 장신구를 사들이는데 열중했다. 나중에는 1년에 무려 100벌의 옷을 만들게 했고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등 새로운 장신구에도 눈을 돌리는가 하면 연극, 경마, 무도회를 매일 밤 열고, 베르사유 궁전 안에 ‘꿈의 궁전’이라는 작은 별장을 짓고 매일 밤 친구들과 고관대작의 부인들을 불러들여 연회를 열었다. 당시 귀부인들 최대의 관심사는 누구의 유방이 가장 아름다운가에 있었다. 그래서 여인들이 모이면 서로의 유방을 겨루는 ‘유방 콘테스트’를 열곤 했는데 1위는 언제나 앙투아네트 왕비가 독차지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무료함을 달래는 길은 이렇게 새로운 쾌락을 발굴하는 길이었는데 루이 16세는 남성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어 부인 옆에 오지 못했기 때문에 왕비의 낭비와 사치를 방관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전해들은 앙투아네트 왕비의 오빠인 요셉 2세는 매우 걱정이 되어 빈에서 일부러 파리로 와서 루이 16세를 설득해 외과수술을 받게 했으며 그 결과 사나이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왕비는 비로소 결혼 7년 만에 남편과 동침할 수 있었으며 그 다음날 왕비는 어머니인 오스트리아의 여왕 마리아 테레사에게 기쁨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루이 16세의 병이 고쳐짐에 따라 부인과의 결혼생활도 원만해졌고 왕비는 임신이 되었다.

그러나 왕비의 사치와 낭비벽은 점점 더 심해만 갔다. 그래서 후세 역사가들은 단지 원만한 결혼생활을 할 수 없었던 것만이 왕비의 사치와 낭비벽의 원인이 아니라 그녀의 성격상 문제 혹은 어려서부터의 엄격한 종교교육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고도 주장한다. 하여튼 그녀는 혁명 전 귀족문화를 대표하는 향락생활을 주도했다. 그래서 당시 프랑스의 혁명 세력에서는 왕비를 ‘적자부인(赤子婦人)’이라고 비난했고 혁명이 성공되자 왕비를 단두대에 올려놓고 처형했던 것이다.
왕비가 남긴 유방 잔 앙투아네트 왕비는 비록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녀가 남긴 것이 있다면 그녀의 유방이다.
즉 이 유방의 잔은 앙투아네트가 결혼하고 7년간의 처녀생활을 할 때 욕구불만이 최고도에 달했을 20세 무렵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반구형의 잔은 젖꼭지를 밑으로 한 유방을 세 마리의 산양의 머리로 잔을 떠받들고 있는데 숫산양은 남성 욕망의 심벌로 이를 본 프로이드 박사는 처녀처(處女妻)의 욕구불만이 잘 나타나 있다고 평했다고 한다. 이 유방 잔의 모양은 상당히 예쁜 것으로 매우 건강하고 혈기가 넘치는 유방으로 표현되었는데 특히 유두부의 표현은 의학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7세기와 18세기 로코코 시대에는 궁정귀족계급 숙녀들 사이에 ‘루베’라는 것이 유행했다. ‘루베’란 곧 ‘아침 만남’을 뜻한다. 숙녀들은 침대에서 일어나 잠옷 차림 그대로 남성들을 맞는다. 남성들은 그런 그녀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또 여성들은 자신이 목욕하는 광경이나 화장하는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당시의 ‘루베’란 곧 여성들이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매력적으로 비치게 하여 남성들의 환심을 사려 한 일종의 품평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녀들은 옷을 걸친 거추장스러운 모습 대신 섹시한 잠옷과 화장하지 않은 매끈한 얼굴로 남성들을 유혹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아침부터(!)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가 일어났을 수밖에….

호색녀로 이름난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녀의 친구들 역시 이러한 루베를 몹시 즐겼다. 고관대작들을 루베에 초대해 목욕탕에서 갓 나온 알몸이나 침실에서의 벌거숭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남성들의 성욕을 돋웠다. 1630년대 영국 찰스 2세의 궁정에서도 마찬가지 풍경이 벌어졌다. 공작부인들의 ‘루베’에는 십여 명의 귀족이나 신사들이 마치 ‘비밀 쇼’에라도 입장하듯 길게 늘어서서 자신의 입장 순서를 기다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상쾌한 하루의 출발지점인 아침은 이처럼 섹스를 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시간이기도 하다. 옷도 입지 않고 있을뿐더러 전날의 피곤이 충분히 풀렸기 때문에 정력 또한 가장 왕성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 반응을 연구한 미국의 마스터즈 박사는 여성이 극치감을 느낄 때, 전신적인 반응과 더불어 유방에도 변화가 오는데 우선 유륜이 수축되면서 마치 휴지를 구겨놓은 듯 우글쭈글해지고 충혈이 오며 충혈이 극도에 달하면 유륜이 자적색(紫赤色)으로 변하고 유두는 돌출되면서 발기하고 경화된다고 했다. 즉 이러한 변화는 유방 밑에 있는 윤상((輪狀)의 불수의근(不隨意筋)이 성적인 흥분으로 수축되기 때문에 보이는 현상인데 이런 변화로 아직 젖을 먹인 경험이 없는 유방은 원래의 크기의 1/4~1/5 정도는 더 커진다는 것이다.

앙투아네트의 유방 모양의 잔에는 이런 것이 세세하게 표현되어 있지는 않으나 유륜과 유두부는 상당히 유사한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마스터즈(Masters) 박사의 여성이 극치에 달했을 때의 유방이 그대로 표현된 그림이 있다.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가 그린 <파도와 여인(The Woman in the Waves)>(1868)을 보면 파도가 잔잔히 일고 있는 물속에 여인이 양쪽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있어 가슴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유방이 뚜렷이 표현되었는데 유륜의 수축충혈, 유두의 돌출, 유방 전체의 팽만 등은 마치 마스터즈 박사가 보고한 유방의 변화와 일치된다.

 

 

 

 

The Woman in the Waves(1868)/ Gustave Courbet

쿠르베라는 화가는 사실주의 화가로 있는 그대로를 묘사한 화가이며 자기가 보지 못한 것은 결코 그리지 않았던 화가이다. 그래서 그는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미녀의 그림은 그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고 보면 그림의 모델은 상당한 성적인 흥분의 절정에 달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의 유방은 마치 앙투아네트의 유방을 간접적으로 묘사한 듯 하여 유방 잔의 실물을 보는 듯하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유방만 호사한 것이 아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두 유두에 황금 링을 걸고 다녔는데, 그 유방이 너무 예뻐서 안토니우스가 그녀의 유방을 본떠서 황금의 술잔을 만들어 여기에 술을 따라 마셨고 한다. 이뿐 아니라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왕비였던 메살리나는 유방을 황금 빛깔로 색칠했다고 하듯이 오랜 옛날부터 유방에 문신을 하고 화장을 하거나 장식품을 다는 것이 유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방의 수난사도 만만치 않다. 유방에서 벗겨낸 피부로 책을 장정했는데, 두 유두가 알맞게 책표지의 특징 있는 모양을 만들어 내도록 했다고 한다. 또 고대 종교의 참회의식으로 유방을 가시쇠사슬로 묶어 죄이거나 바늘, 못, 가시 등으로 유방에 고통을 가해 참회시키던 적도 있었다. 혹은 러시아의 스코프첸 종파의 여성들은 육욕을 억제하기 위해 시뻘겋게 달군 가위로 유방을 손상시키거나 아예 제거했다고도 한다. 마치 활을 쏘고 창을 던질 때 방해되지 않게 오른쪽 유방을 불로 태워서 없앴다는 아마존 여인들을 연상시키는 행위를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했던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동양에서는 유방의 분비물을 ‘불로장생의 복숭아’, ‘흰 눈’, ‘산호의 액’이라 부르면서 정력제로 여겼던 적이 있었다. 이것을 먹어 단전에 이르면 능히 비위를 기르는 정신에 이로우며, 그것은 위로 꽃의 연못까지 이르고 아래로 신비의 문에 화답하기 때문에 몸의 온갖 기운이 증강하고 발전된다고 신봉했었다. 특히 “아직 아이를 낳은 적이 없고 가슴에서 젖이 나온 일이 없는 여자라야 제일 이롭다.”고 했을 정도이니, 이것은 또 하나의 유방의 수난사가 아닐 수 없었다.

와인은 유럽 등지에서 오래전부터 미용과 건강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과거 로마 시대의 여자들은 레드 와인을 입술에 발랐고, 레드 와인의 찌꺼기로 피부를 가꿨다고 한다. 특히, 프랑스 루이 XVI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위해 베르사이유 궁전의 욕조에 최고급 와인을 넣은 호화스러운 목욕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3,000년께는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이미 와인을 양조했는데, 기원전 14세기의 이집트의 왕 아크나톤(Akhnaton)의 아름다운 왕비였던 네퍼티티(Nefertiti)는 와인을 기초 향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도 와인의 미용적인 효과가 알려지며 와인은 화장품으로까지 개발된 뒤 널리 판매되고 있다. 여기에 치명적인 여성의 젖가슴을 본 뜬 잔으로 마신다는 것은 호사의 극치이다.

철학자 헤겔은 유방의 미는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균형에 있다 하고, 큰 유방에의 선망은 다산을 바라는 주술적 잠재 원망에 기인한다고 했다. 방랑 끝에 형님을 찾아가 구걸하는 흥부에게 놀부가 물었다. 그동안 애를 몇이나 두었느냐고…, 스물넷이라고 하자 흥부 여편네를 연상하고 “고년 젖통이 엉덩이만 하더니…”하고 다산을 큰 유방에 합리화 한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논란과 화젯거리를 만드는 여성의 신체부위가 있다면 단연 가슴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다. 트로이 전쟁을 촉발시킨 헬레나의 경우,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녀의 젖가슴을 본떠 포도주 잔을 만들었다고 하고, 프랑스의 마리 앙뜨와네트 왕비도 귀부인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젖가슴으로 선정(?)되어 이를 기념하려 직접 자신의 젖가슴을 석고로 떠서 전시했다고 한다. 중국의 절세미인 양귀비는 현종으로 하여금 세자의 여인을 빼앗게 만든 동양 최강(?)의 경국지색이었다. 그녀의 매력은 바로 아름다운 가슴에 있었다고 하는데, 클레오파트라의 코처럼 양귀비의 가슴이 1인치만 적었더라도 비극으로 끝나진 않았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유방은 여성의 성적 매력을 나타내는 핵심이며, 자신감, 모성으로서의 아늑함 등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여성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 필자 남태우 교수 경력:▴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오픈엑세스포럼회장▴한국 문헌정보학교수협의회장▴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한국도서관협회장▴중앙대학교 명예교수(현재)▴현재 건전한 음주문화 선도자로 활동하고 있음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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