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국은 협동조합 ‘광풍’, 하지만 현실은?

일반인…정부지원 받을 것으로 ‘잘못 알아’
기재부…‘예산지원 없으며, 자주․자립․자치만’ 강조
지자체…발길 돌리는 민원인 볼 때 ‘마음아파’

경제에 관한한, 지금까지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아니 뛰쳐나올 생각은 고사하더라도, 바깥세상을 내다보려 하지 않았다. 우물 주둥이를 통해 보이는 작은 경제만이 전부인줄 알고, 또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대기업들은 개구리들이 서로 뭉쳐 밖으로 뛰쳐나갈까봐 노심초사하며,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이라는 잘못된 논리로 이들을 현혹시켰다.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돈’이 최고요, 진정한 가치라고….
하지만, 대기업들의 그러한 주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우물 안 개구리들도 ‘돈은 넘쳐나는 데, 중산층은 무너지고,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는 이상한 현실’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부 특정 주주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기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돈’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어떻게 하면 함께 공존공생할 수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협동조합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협동조합이 자리를 잡은 외국에 비해, 국내 현실은 이제 걸음마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첫 발걸음을 떼려는 일반인의 관심은 뜨겁기만 하다.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민원인과 각 지자체 담당자 사이에선 어떤 얘기가 오고 갔는지,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민원실, 협동조합 민원으로 북새통
협동조합기본법이 지난해 12월 본격 시행된 이후, 전국 곳곳에서 협동조합 설립 신고가 잇따랐다. 협동조합에 대한 일반인의 뜨거운 열기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3월 전국 17개 시·도 협동조합 담당자와 직접 통화를 시도했다. 답변 수위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협동조합과 관련해 적게는 수십 통에서 많게는 수백 통이 넘는 전화가 연일 쇄도해 업무 자체가 마비될 지경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하루에만 50건이 넘는 협동조합 설립문의 전화가 온다”며 “여기에다 직접 찾아오는 민원인까지 응대하다 보면 퇴근 시간에는 완전히 파김치가 된다”라고 밝혔다. 그 관계자는 또 “골목상권 깊숙이 침투한 대기업 틈바구니 속에서도 일어서보겠다는 경제적 약자들의 의욕을 꺾지 않기 위해서라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신청부터 인가까지의 전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일부 지자체 담당자 가운데는 혼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짜증 섞인 어투가 나올 때도 있었다고 실토하는 공무원도 있었다. 이번 협동조합 현황 실태 조사를 위해 전국 17개 시·도 담당자와 직접 통화를 한 결과, 현장 실무자들은 협동조합기본법에 대해 충분히 숙지를 한 후 민원 상담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협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지한 후 대응하고 있어 민원인들의 설립문의 전화 중 상당수가 실제 신청으로 이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협동조합에 거는 일반인의 기대 역시 남다르다. 하지만 또 다른 일각에선 낙수효과, 고환율정책, 부자감세 등 정부의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이 소상공인, 자영업자, 서민들의 생활고를 가중시켰으며, 그 결과 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대안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서울․전남…열기 더 뜨거워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이후 지난 1월 31일까지 전국적으로 350건이 접수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사회적협동조합이 29개 중 4건, 일반협동조합이 320개 중 226건이 각각 설립인가를 마무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협동조합 설립 열기는 5월에도 식지 않고, 이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사회적협동조합의 경우 5월 31일 기준으로 76건이 신청, 37건이 설립인가를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일반협동조합(표 참조)은 5월 31일 기준으로 1272건이 신고, 1169건이 수리를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월 박원순 서울 시장이 10년간 협동조합 수를 8000개까지 확대하고 경제규모를 지역내 총생산(GRDP) 5% 규모인 14조 3700여억 원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한 탓인지 타 지역에 비해 신고 건수가 401개로 월등히 높았다. 특히 서울시는 협동조합 상담 전담팀을 꾸릴 정도로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른 지역의 경우 일자리 창출과나 경제관련 담당직원 한 명이 전화 상담이나 방문 민원 업무를 처리해야 되는 현장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광주시를 포함한 전남북도의 협동조합 열기도 타 지역에 비해 높았다. 3개 지자체는 일자리 창출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몇 년 전부터 다양한 시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광주시는 지난 2008년 노동부 주관의 ‘예비 사회적 기업 발굴을 위한 일자리 창출사업’에 응모해 전국에서 3번째로 많은 1058명을 배정받아 국비 312억 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3개 지자체의 그러한 노력들이 협동조합 설립 붐과 맞물렸기 때문에 타 시․도에 비해 협동조합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이 높게 나온 것 같다”언급했다.
천혜의 관광자원과 풍부한 특산물을 자랑하는 제주도의 경우 신청숫자가 많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13곳이 신청해 11곳이 수리됐다. 6곳만 신청해 5곳이 인가를 받은 세종시를 제외한 나머지 시도의 경우에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서울시, 재정지원 물꼬 터
17개 시․도의 협동조합 담당자는 조합 설립에 따른 정부의 지원여부를 묻는 민원들이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 민원인 중에는, 조합 설립 이후에도 예산 등 정부의 지원이 없을 것이라는 담당자의 답변에 대해 “그러면, 정부에서 아무 지원도 해주지 않는데 왜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냐”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하지만 관련법을 제대로 인지한 민원인은 신청 방법과 준비 서류에 대해 가장 많이 질의했고, 설립 이후 판로 확보 등을 통한 경영 정상화 방안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민원인도 있었다.
이와 관련,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부푼 마음에 설립 신청을 하러 왔다가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다는 얘기를 듣고 발길을 돌리는 민원인을 보았을 때 가슴이 아팠고”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17개 시․도는 ‘예산지원이 전혀 없다’는 기획재정부의 애당초 입장과 달리 협동조합 생태계 조성과 활성화를 위한 행․재정적 지원 내용까지 담은 조례를 준비 중인 지자체도 있다. 바로 서울시의회가 가장 먼저 칼을 뺐다.
서울시의회 재정경제위원회는 지난 3월 6일 박양숙(민주통합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서울특별시 협동조합 활성화 지원 조례안(제정안)’을 가결시켰다. 특히 이번 조례안은 개별 법률로 설립된 8개 협동조합과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한 자발적․자생적인 협동조합을 모두 아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행․재정적 지원을 포함한 종합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담고 있어 향후 협동조합의 성장과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서울시는 내다봤다.
서울시의 이번 조례가 통과됨에 따라 그동안 ‘예산지원 절대불가’라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던 기획재정부도 “직접 지원이든 간접 지원이든 지자체가 결정할 부분이며 법적으로 못박은 것은 아니다”라고 한 발 물러난 입장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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