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빈 술병』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육정균
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詩人/부동산학박사
내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 1월 중순 새롭게 부임한 공기업 성격의 회사는 설립 27년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인 듯하다. 그래서 때론 9회 초 투아웃 후 투 스트라익에서 9말을 맞아 1점 차 점수에서 2점 이상 따라붙어 승리의 기반을 만들어야만 하는 구원투수로서, 아니 외상의 숫자가 307, 360, 376, 401로 늘어감에 따라 극단의 외상환자를 반드시 살려내야 하는 외과의사 이국종 교수처럼 사활을 건 사투를 벌인다 해도 과히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허나, 말 못할 내외적 환경에서의 당면한 일의 어려움보다도 더 힘든 것은 내적 환경과 구성원 간의 심리적 요인들이었다. 어쩌면 분자의 질량과 원소가 다른 물과 기름처럼 쉽사리 노력으로 결합되고 융합될 줄 알았던 내적 융합은 가령, 여전히 술을 과하게 먹고 아내 앞에서는 갈지자를 걸으면서도 술을 조금도 마시지 않았다고 우기는 주당처럼 땅바닥이 일어서고, 전봇대가 달려오고 해서 내가 좀 기우뚱 했을 뿐이라는 듯 진전이 없었다.
소위 공직이란 온실로 분류되고, 그곳에서 종사하는 공무원이란 온실 속의 화초로 불린다. 온실 속의 화초가 1월의 찬바람 속 꽁꽁 언 허허벌판, 동면의 언 광야로 뛰쳐나와 야생의 언덕에 서서 추위에 견디다 못해 겨우 찾은 안락의 동굴에서 따스하게 그들만의 질서로 불을 피우고 그들만의 문화와 위계질서를 갖고 사는 어느 사회의 틈바구니에 봄바람에 흩날리는 송홧가루(pine pollen)처럼 끼인 주제에 리더를 자처했으니 곱게 적응될 리가 만무했을 것이다. 결국, 나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보다도 더 어색한 폼으로 처참하게 구겨져야 했다. “그래도 내가 여러분의 새로운 지도자다. 모두 다 나를 따르라” 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조직에서의 역할과 일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갈등과정을 거쳐 내재되어 갔다.
서로가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온통 다름의 차이는 몇 번의 큰 갈등과 스트레스를 거쳐, 연속성을 가진 스트레스 내성으로 다가왔다. 내 몸은 스스로 “주인님 제발 저를 살려 주세요”하며 내면에서 외치고, 그 비명은 끝내 “저 좀 살려 주세요”라는 목소리로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밤새 수많은 생각과 분노, 엉클어진 사고의 홍수는 수면장애, 불면으로 이어지고, 며칠 째 변비와 며칠 째의 설사가 이어지자 그간 여러 번 마주한 의사들은 위든 장이든 모든 속의 장기들의 균형((balance)이 깨졌단다. 또한 깊어진 스트레스 내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심근경색 등 심장질환의 원인으로 돌연사할 수 있고, 그것보다 안타깝게도 뇌졸중 등 중풍 등으로 이어져 살아도 10년이나 20년을 누워서 온 가족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를 만들어 가족 전체를 고생시킬 위험요인도 내재하니, 절대적으로 마음을 비우고 살라!”는 경고까지 주는 한의사도 따끔한 침 끝으로 발가락을 후벼 파며 강조하였다. 그렇다. 내 지금 상태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면 가족복지가 엉망이 되는 것이다.
결국 나에겐 이번 4월이 말 그대로 평생의 삶에서 겪지 못한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 T.S.엘리엇 (T.S.Eliot : Thomas Stearns Eliot)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5월의 희망을 역설적으로 노래하였는데, 나는 그것과 정반대로 말 그대로 가장 잔인한 계절을 보냈다. 내가 절망의 끝에서 그래도 희망의 꽃씨로 직원들에게 나누어 준 사랑은 바로 앞을 다투어 피어나는 봄의 매화와 목련에 이어 흐드러진 벚꽃과 불그레 수줍은 철쭉에 이은 푸르른 녹음의 함성보다도 더 뜨거운 5월의 희망이었다. 나는 거침없이 직원들에게 T. S. 엘리엇(황동규 역, 민음사)의 『황무지』를 프린트해서 나누어 주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 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느다란 생명을 키웠다.」
『황무지』전단 일부 –
T.S. 엘리엇은 서양 문명의 퇴락과 현대 생활의 퇴폐를 고발하는 『황무지』에서 자신의 무의식에 자리한 억압된 욕망을 시를 통해 치유했을 뿐이라는 고백이지만, 433줄의 시는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무의식의 텍스트가 되어 당시까지의 낭만주의에 반기를 들며 모더니즘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은유와 상상력으로 자연 현상을 모방한 시대에서 알레고리를 이용한 자연 현상의 거부나 조작이 가능한 시대로 말이다. 유럽인, 백인, 기독교 중심적인 틀을 보유하면서도 모순과 자가당착이 가득한 전위적 예술의 지평을 넓혔다.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21세기 전환시대와 비슷한 수많은 중첩과 콜라주로 인한 하이퍼텍스트를 닮은 『황무지』가 20세기 ‘한 편의 시’라는 영광의 자리에 앉아 희망을 노래하듯, 5월의 어느 날 저녁, “직원들과 소주 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차피 난 가장 독한 칠성 주를 마셔야 하지만, “위기인 회사에서 힘들어도 최선을 다하자, 일찍 일어나는 새가 새벽을 먼저 볼 수 있고, 모이를 더 많이 먹을 수 있듯이 새벽을 밝히고, 새벽을 달리는 많은 사람들처럼 항상 새벽처럼 깨어나 좀 더 일할 수 있는 것에 작은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고 희망을 전하고 싶은 지지배배 봄새이고 싶어서이다.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