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색고구마막걸리를 만들어낸 당사자를 꼭 만나리라 벼르고 있었는데, 별 노력 없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경기도농업기술원 강희윤(35) 박사. ‘2009년 전통주 품평회’가 열렸던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지인(知人)의 소개로 인사를 나눴다. 그 지인은 한 달 전 이 코너에 소개된 적 있는 경기도농업기술원 이대형씨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지금의 막걸리 인기가 얼마쯤 더 갈까요?” 하고 물었다. 곧바로 “올해 안에 끝나진 않을까요?”라고 재차 물었다.
“그건 절대 아녜요. 제가 봤을 땐 3년 정도는 무난할 것 같아요. 절대 급하락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지금 막걸리 열풍이다 뭐다 말들이 많지만 아직 그 인기의 정점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생각돼요. 3년쯤 되면 비로소 정점에 올라서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최소 3년이라는 얘기다. 정점에 이른 3년 이후 내려가는 속도에 따라 5년을 더 갈 수 있고 10년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일본에서의 막걸리 인기가 우리에게 역수입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요. 그게 기분 나빠 ‘그럼 우리 스스로 한 번 만들어보자’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거죠. 지방 양조장마다 힘내고 있고, 여러 대중매체에서도 막걸리에 대한 기사를 1주일 간격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지금 양조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전후(戰後) 세대가 많아요.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라는 얘기죠. 나누는 것에 익숙합니다. ‘저쪽에서 물을 타니 나도 물을 타야 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갖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강 박사는 이런 때일수록 좋은 점은 좋은 대로 인정하면서 업계 간 감정적인 싸움 같은 건 절대 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3~4년 전의 막걸리 붐도 언뜻 생각났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때도 막걸리의 인기는 지금에 못지않았는데요, 생각보다 빨리 사그라진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확실히 그때도 인기였지요. 그런데 그때는 막걸리 열풍이라기보다 저렴한 술집, 즉 비교적 값이 싼 막걸리집이 인기를 얻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 그에 비해 지금은 막걸리라는 품목이 유행인 거죠. 그러니 비교가 되지 않아요.”
강 박사는 나름의 방법도 제안했다.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 예쁜 용기가 필요하다면 여러 업체들끼리 컨소시엄을 구성해 같은 모양과 규격의 용기를 만들고 라벨만 다르게 붙이는 방법도 생각해볼 만해요. 시간과 비용적인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될뿐더러 내 라벨, 내 제품에 대한 자부심도 더 커질 수 있거든요.”
강 박사는 한 가지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사실 자색고구마막걸리를 만든 건 저희가 처음이 아닙니다. 원래 전주와 해남에도 자색고구마막걸리가 있었어요. 물론, 저도 개발하는 도중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냥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도 될 법한데, 그는 그러지 않는다. 굳이 처음인 척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8월 시작한 자색고구마막걸리 연구?개발은 20개월 만인 올 4월쯤 마쳤다. 즉, 기술이전을 받은 주류제조업체에서 이 막걸리를 생산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모든 일들이 쉽게 풀리진 않았다.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선 자색고구마로 탁주(막걸리)는 물론, 약주와 소주의 제품화가 모두 가능했다. 이중 약주를 들고 경기도내 여러 주류양조장을 다니며 기술이전 받을 것을 요청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 군데서 연락이 왔다. 그게 바로 배혜정누룩도가다. 그들은 기술이전을 받는 대신 막걸리로 만들겠다고 했다. 당시 국내에선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의외로 일본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게 주효했다. 마침내 경기도농업기술원과 배혜정누룩도가는 지난 6월 24일 협약식을 가진데 이어, 7월 말부터 일본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앞서 밝혔듯, 자색고구마막걸리는 한?일 정상회담 때 건배주로 사용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 보도가 나간 후 여기저기서 강 박사를 찾는 전화가 빗발쳤다. 그는 이틀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휴대전화만 받았을 정도로 정신없었다고 했다. 유명세를 치른 셈이다.
강희윤 박사는 올해 안에 ‘율무막걸리’와 장뇌삼을 원료로 한 ‘산양산삼주’도 추가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강희윤 박사는 ‘자색고구마막걸리’를 개발한 장본인이다. 이 막걸리가 며칠 전 한?일 정상회담 때 건배주로 사용되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강 박사 뒤로 쌀 모양의 돌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