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마지막 금-토요일을 기억하세요”


그리 어린 나이가 아니라면 해마다 ‘10월의 마지막 밤’을 기억한다.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 탓에 그날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매년 10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과 토요일을 잊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다. 양일 간 서울 북촌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우리 전통주 시음행사 때문이다. 오래 이어져 온 까닭인지 초청받아 찾는 사람들보다 지나가다 들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살짝 오르는 취기(醉氣)는 모두를 반갑고 사랑스러운 친구로 만든다. 이곳에서 7년째 술 빚기 시연과 시음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남선희(41)씨 “처음 해엔 5명으로 시작했지만, 올해에는 28명이 참여했다”며 기뻐했다.

행사 이틀째(10월 31일)의 북촌문화센터. 이날 비가 주룩주룩 내렸지만 모두의 얼굴은 화창한 날보다 더 밝았다.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처마 밑으로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은 특별한 진행이 없어도 알아서 시음하고 웃고 떠들었다. 간간이 보이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 빨간 저고리를 입은 남선희씨를 손짓으로 부르며 사진 한 장 찍자고 했다. 인터뷰는 4일 후 같은 장소에서 이뤄졌다.

술과 북촌문화센터 ‘좋은 인연’
남씨는 그녀의 아버지 덕에 술과 인연을 맺었다. 정성 듬뿍 담긴 맛난 음식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 그러니까 남씨 할머니의 맛을 늘 그리워했다. 어느 날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그녀는 직접 만들어보기로 작정했다. 누룩을 사러 간 시장에서 알려준 내용과 할머니가 전화로 일러준 것 등을 더해 처음 만들어봤지만 보기 좋게 실패, 이후 묘한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수소문해서 전통주 빚는 법을 알려주는 한 교육기관을 찾아냈다. 써먹을 만큼 배웠을 즈음, 뭐라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주부의 입장이었지만 술과의 인연을 취미생활로만 썩히기엔 너무 아까웠다. 갈망이 깊어지면 길도 보이는 법일까? 2002년 어느 날, 그녀는 개소(開所)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북촌문화센터 앞을 지나다, 이곳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전통 강좌 프로그램 모집 중’이라는 광고를 보게 됐다. 번뜩 “이거다!” 싶었다. 부랴부랴 관련 서류를 작성해 제출했고, 다음 해인 2003년부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저는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을 믿어요. 제가 경험했으니까요. 사실 전 여기 와서 많이 컸거든요. 공부한 것도 많고요. 수강생 시절에는 시키는 것만 하면 됐는데, 반대로 가르치는 입장이 되니 생각보다 걸리는(장애요소) 게 무척 많았죠. 독자적으로 모든 걸 나 혼자서 해결해야 했으니까요. 뒤늦게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지금도 하고 있으니 정말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남씨는 “전공분야도 아닌데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분명 행운”이라고 했다. 가르치는 일은 어렵지만 이 일을 통해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다는 그녀는 이를 ‘기분 좋은 스트레스’라고 해석했다. 수강생들보다는 조금 먼저 술을 안 것일 뿐, 오히려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더 많은 걸 배운다고도 했다.
욕심 내지 않고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욕심 내지 않겠다는 남씨는 북촌전통주문화연구원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아는 바를 서로 공유하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모두의 공간이라는 얘기다. 앞서 말한 우리술 시음행사에 이곳 수강생뿐만 아니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전시?참여가 가능토록 한 것도 그 같은 마음 때문이다.
“우리 수강생들에게서 듣는 말 중 정말 반가운 건 ‘우리 남편이 이제 바깥 술을 마시지 않아요’ 할 때예요. 그럴 땐 제가 다 고마워요. 사실 그런 수강생들이 스스로 술을 빚을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 필요해요. 아주 클 필요는 없지만 여긴 너무 좁거든요. 그런 용도로 사용하면서 한편으론 우리술 문화를 알리는 장(場)을 만들어 내는 게 제 목표예요.”
항상 에너지 넘치는 남씨이니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수고하시란 말을 하면서 “저 역시 글로써 많은 지원을 하겠다”고 덜컥 약속해버렸다.

북촌문화센터의 전통주 교육과정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말하자면, 전통주 기초반은 3개월 과정으로 열린다. 고두밥 찌는 법이나 누룩 만드는 법 등 우리술 빚는 법에 대해 모두 배울 수 있다. 매년 3월~5월, 6월~8월, 9월~11월 이 3기간 중 아무 때나 고르면 된다. 여기서 더 배우고 싶다면 고문헌에 나오는 전통주들을 재연해보는 고급과정을 욕심내 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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